[권은경 칼럼] “망명과 북송” 22년 전 악몽 재연되지 않기를 

/그래픽=데일리NK

러시아의 알렉세이 나발니는 2010년부터 푸틴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고위급의 부정부패를 고발해 온 인물로 2020년 여름, 비행기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로 쓰러졌다. 독일 베를린의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받고 회복했다. 나발니는 독일로 망명할 수 있었지만 귀국을 결정했고, 이듬해 1월 중순 러시아로 귀국해 공항에서 바로 체포됐다. 이미 2014년 사기죄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적 있었는데, 귀국 후 공판이 있었고 집행유예가 취소되고 실형으로 전환 판결을 받았다. 나발니는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고 사법 절차에 소요된 일수를 제외한 나머지 2년 6개월의 실형을 살고 있다.

2021년 8월, 뉴욕타임즈는 나발니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발니가 24시간 통제 받고 취침시간에는 한 시간 간격으로 잠을 깨우는 수면 고문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나발니는 2013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약 30% 득표율을 기록한 인기 정치인으로 푸틴의 유력한 야당 경쟁자가 될 수 있을 인물이다.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NSA가 도청과 사찰 등을 통해 무차별적 정보수집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후 자국 내에서 처벌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로 망명했다. 국제적인 인권단체들과 시민권 운동가들은 미 정보기관의 불법 행위를 폭로한 내부고발자로 스노든을 높게 평가하지만 동시에 국가를 배신한 자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2010년 줄리안 어산지는 2009년부터 1년간 미군 정보 분석가인 첼시 매닝이 제공한 자료들을 위키리크스에 공개했다. 이 자료들은 아프간 전쟁 일지, 이라크 전쟁 일지, 미 국무부 비공개 외교 문서 등 미국 정부의 전쟁 범죄와 외교적 비리 관련 내용들이었다. 이에 미 정부는 위키리크스 대상 범죄조사를 시작했다. 어산지는 2012월 6월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망명 요청을 하고 대사관에서 생활했다. 2019년 에콰도르의 정권이 교체되면서 어산지는 대사관 건물 밖으로 끌려나갔고 바로 영국 경찰에 체포됐다. 현재 영국 지방 법원에서 미국 송환 여부에 대한 재판 준비 중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 VOA(미국의 소리 방송)가 북한 적군와해공작국 소속 최금철 소좌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영사관 모처에 감금돼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최 소좌가 체포돼 감금된 것은 9월 20일이었고, 이미 그보다 석 달 전부터 모스크바 유엔 난민기구에 망명 신청을 준비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최 소좌는 북한의 대외 사이버 전을 담당하는 적공국의 해외 활동에 관여했기에 해킹과 반탐 활동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각기 다른 성격의 사건들로 최금철의 사례와 비교할 대상들은 아니다. 하지만 일반 나라들의 망명 관련 사건처리 절차나 이를 대하는 국제적 국내적 태도 등을 살펴 보고자 나열했다. 비교할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최금철 사례에는 위 언급한 사례들 중 가장 불리한 환경과 정황 요소들이 가득하다. 최금철의 신분은 민간인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과 안보를 우선시 해야 하는 군 정보계 소속이다. 스노든의 경우는 정보요원이었지만 임무를 방기하고 국가 기밀을 폭로한 이유로 국제적으로 논란이 크게 일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하지 않는 한 스노든은 무사하다. 2020년 말 스노든은 러시아 국적을 신청했다고 알려졌다.

위키리크스를 설립한 어산지는 민간인이지만 비공개 자료들을 노출시켜 미국에 군사적 외교적 망신과 손실을 안겼다. 미국으로 송환돼 재판을 받을 경우 미국의 방첩법 위반으로 180년 형을 선고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어산지의 운명은 미국 송환을 결정할 영국 지방 법원의 재판에 달려 있다. 미국과 영국 같은 국가에서 법절차를 무시한 자의적 판단이나 결정의 가능성은 없다.

독일 망명 기회가 있었던 나발니는 유력 야당 정치 지도자로서 정치적 판단을 하고 본국으로 제 발로 돌아가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북한이라면 정치범 관리소로 사라졌겠지만, 수감 중 미국의 뉴욕타임즈와 서면 인터뷰까지 진행하고 고문과 비인간적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국제적으로 폭로했다. 국내에서는 나발니 체포 후 대규모의 석방 요구 시위가 러시아 주요 대도시에서 벌어져 3천 명 이상이 체포되기도 했다. 나발니의 이후 행방은 국내외적 관심의 대상이다.

아무래도 북한 사람의 망명 시도 건의 유사한 선례를 찾는다면 북한 사례 외에는 없는 듯하다. 1990년대 말 탈북민 7명이 러시아 유엔 난민기구에서 난민 자격을 인정 받았지만 2000년 초 북한으로 넘겨진 사건이 있었다. 그 중 당시 18세였던 김은철 씨는 북송 이후 요덕 정치범 관리소의 혁명화 구역인 서림천에서 3년간 죽을 고생을 하고 해제되었다. 이후 북한에 환멸을 품고 다시 탈북하여 다행히도 한국에 정착했다. 김은철 씨는 요덕에 함께 수감됐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수감 7개월이 지나 아사한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요덕 관리소로 들어갔지만 다른 구역으로 보내졌는데 완전통제 구역으로 갔는지 끌려가 처형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증언했다. 결과적으로 김은철 씨는 탈북 동료 6명의 행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정치범 관리소로 들어간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단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최금철 소좌는 언급된 다른 사례들과 달리 중대한 반국가 또는 국가기밀 누설 관련 행위를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사례들과 비교해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북한’이다. 정치범 관리소가 아직도 운영 중인 나라, 국내외적 구제 시스템의 접근성, 언론과 접촉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반국가 범죄로 간주된 사람에 대한 법적 절차에서 자의적(arbitrary) 또는 즉결(summary) 집행이 관행인 나라, ‘북한’의 관할권 내에서 벌어진 사건이란 점이다. 김은철 씨는 난민 지위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당국이 북한으로 보내지 않으니 북한 대사와 면담을 일단 하라고 강제해서 북한 대사와 접촉할 수 밖에 없었다고 얘기했다. 결과적으로 일행 모두 북으로 송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금철 소좌를 위한 ‘지푸라기’를 찾는다면 ‘난민협약 제33조’와 유엔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ICCPR) 12조가 아닐까 싶다. 난민협약은 “생명이나 자유를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곳으로 난민을 추방하거나 송환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ICCPR 12조는 ‘이동과 거주의 자유’에 대해 명시한 조항인데,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고,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보건, 도덕 또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제한을 둘 수 있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든 사람은 어떠한 나라에서든 자유로이 퇴거할 수 있다”고 돼 있으며 자국을 떠나는 것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명시한다.

최금철의 경우는 사건의 중대성이나 국제적 관심에서나, 인물의 지명도, 국제적 영향력,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 등 처한 모든 환경을 봐도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인간 최금철의 존엄성과 생명과 인권의 가치가 다른 누구와 비교해서 더 가법거나 덜 중요하게 다뤄도 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난민 신청을 기다리던 최금철 씨는 난민협약에 따라 보호받아야 마땅한 존재이다.

난민 자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북송된 김은철 씨가 요덕 수용소에 들어간 것이 22년 전의 일이다. 22년 전 김은철 씨의 악몽이 재연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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