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군관학교 ‘강건군관학교’ 교직원 자녀, 노랫말 바꿨다가…

[북한 비화] 가족지도과 '자식 교양' 지적…해당 자녀·부모 연단에 세우고 대사상투쟁 진행

북한 학생
북한의 학생들이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조선의오늘 홈페이지 캡처

평양시 순안구역에 위치한 군관 양성기관 ‘강건군관학교’는 북한에서 호랑이 군관학교로 소문나 있다. 교직원과 학생들에 대한 철저한 사상 교양으로 군관 양성기지로서의 위용과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 강건군관학교에서 지난 2020년 말 가족지도과 주도로 교직원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40일간의 사상검토가 진행됐다. 사연은 이렇다.

강건군관학교는 연말이면 교직원 가족들의 정치사상 생활과 지원사업 등을 총화하기 위한 가족회의를 조직하고 당일 점심을 다 함께 군관학교 내 식당에서 해결하는 것을 전통으로 하고 있다. 이에 2020년 12월 중순 눈 내리는 어느 날, 백수십 여 명의 강건군관학교 교직원과 그 가족들이 가족회의를 위해 회관으로 모여들었다.

가족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관 관중석에 앉았다. 그리고 곧 회의가 시작돼 강건군관학교 교장, 정치부장, 보위부장, 가족지도과장, 모범적 군인 가족 몇 명이 연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 별안간 어린 남학생 한 명이 연단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영문을 알 턱이 없는 교직원 가족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어린 남학생에게 쏠렸다.

그 남학생은 순안구역 내 초급중학교(우리의 중학교)에 다니는 12세 김철(가명) 군이었다. 강건군관학교 가족지도과 이 소년을 연단에 세운 이유는 가족회의 본 안건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그와 그를 교양 못 한 부모를 비판하는 대사상투쟁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김 군의 양옆에는 강건군관학교 노작강좌 교원(소좌)인 그의 아버지와 부양가족인 어머니가 머리를 숙이고 섰다. 회관에 모인 교직원 가족들은 이들을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가족지도과장이 말문을 열었다.

가족지도과장은 “요즘 초급중학교 학생들 속에서 ‘아버지 어머니 청춘 시절’ 노래 가사가 노골적으로 왜곡돼 불리고 있는데, 이 김철 학생이 최초 유포자임이 판명돼 부모와 함께 연단에 세운 것”이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조직별 사상투쟁 회의에서 비판을 받았지만, 자식 교양 문제를 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시범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대사상투쟁 회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학교, 가정, 사회 초소마다 전후 복구건설 시기 선열들을 따라 배우고 아버지 어머니 시절을 따라 배우라고 교양하고 있는 때에 혁명적 노래를 감히 왜곡해 부르는 것은 위험한 행위”라며 비판토론을 진행시켰다.

5명의 신랄한 비판이 끝난 후 가족지도과장은 연단에 서 있는 김 군에게 “학생 하나의 잘못으로 죄 없는 부모까지 연단에 나서 망신당하니 좋으냐, 앞으로 고칠 수 있겠는지 결의를 크게 다져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군은 “아버지가 청춘 시절 군관학교에서 배가 고파 식당 종업원이던 어머니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정이 들었다는 말을 그대로 가사에 옮겼을 뿐인데 뭐가 사상이 덜 돼먹었다는 건지 모르겠다. 없는 사실도 아니고 있는 사실 그대로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순간 장내에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내내 침묵하고 있던 보위부장과 정치부장이 나서 김 군의 아버지인 노작강좌 교원에게 “자식 교양을 잘하라”고 경고하고는 “앞으로 남편들이 학교 일로 바쁘면 아이들 교양을 담당한 어머니들이 교양 좀 잘하자”며 서둘러 사상투쟁 회의를 마무리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집으로 돌아온 교직원 가족들은 김 군이 왜곡했다는 노래 가사가 대체 무엇이길래 이러는지 궁금해하며 뒷말을 쏟아냈다. 심지어 자녀들에게 김 군이 바꿔 부른 노래 가사를 말해달라거나나 아예 노래를 불러달라는 부모들도 있었다.

일부 가족들은 “들어보니 당을 반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군관학교 시절 배를 곯던 아버지에게 밥을 몰래 감춰다 준 어머니의 이야기인데 그게 무슨 죄가 되느냐”고 말했지만, 일부는 “우리나라에서 가사가 왜곡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반동이다. 김 군이 아직 어려 사상투쟁으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12세 초급중학교 남학생과 그 부모를 연단에 세워 사상투쟁 회의를 진행한 이 사건은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지만, 사상 교양에 힘써 왔던 강건군관학교에는 큰 오점으로 남았다.

‘아버지 어머니의 청춘 시절’ 가사

1절)
나의 아버지 청춘 시절 강선의 로 앞에서 흘렀네
눈 내리는 12월에 쇠물 뽑던 용해공이
나의 아버지였네

2절)
나의 어머니 청춘 시절 해주와 화성에서 흘렀네
첫 열차 떠나보내며 울고 웃던 그 처녀가
나의 어머니였네

3절)
나의 보람찬 청춘 시절 대를 이어 조국에 바치리
그날의 아버지처럼 그 나날의 어머니처럼
아-빛나게 살리

‘아버지 어머니 청춘 시절’ 변형 가사

1절)
나의 아버지 청춘 시절 강건군관학교에서 흘렀네
밥 한 그릇에 목이 메서 식당 여자와 살아야 했던 게
나의 아버지였네

2절)
나의 어머니 청춘 시절 군관학교 식당에서 흘렀네
젊은 학생 밥 시중들며 정들었던 그 처녀가
나의 어머니였네

3절)
나의 숨 가쁜 소년 시절 철길과 논밭에서 흐르네
그 나날의 부모님처럼 살지는 않으리라
아-맘대로 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