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민둥산에 산림애호, 자력갱생만큼 공허하다

한국 해안가에서 발견된 북한 ‘산림애호’ 구호판.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서해5도 지역 조사를 목적으로 백령도에 갔다가 기상 악화로 며칠째 발이 묶였다. 배가 뜨지 않으니 오도가도 못한 처지가 되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세찬 바람과 집채만 한 파도가 금세라도 섬을 집어삼킬 듯 사나웠다.

북한 황해도 지역과 불과 10여km 사이에 있으니 종종 북한 생활쓰레기가 많이 밀려온다. 특히 바람과 파도가 거센 날이면 더욱 양이 많다. 해안가 쓰레기더미를 뒤지던 중에 ‘산림애호’라고 쓴 붉은색 구호판을 발견했다. 북중국경에서 압록강 너머 보이는 북한마을과 산 위에 주로 설치해 놓은 선전구호다.

약 1,400km에 이르는 북중 국경을 달리면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북한의 민둥산이다. 산에 나무는 모조리 베어내고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에도 밭을 일구었다. 그런 황폐한 산 위에 덩그러니 ‘산림애호’라 쓴 큰 선전구호판이 참 생뚱맞다는 느낌이다. 산림복구가 최대의 애국사업이라며 ‘온 나라를 수림화, 원림화하자’는 선전구호는 그래서 더욱 공허하다.

북중 국경지역에서 포착된 ‘온 나라를 수림화·원림화하자’ 구호판.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땔감용으로 나무를 다 베어내고 조그만 뙈기밭 겨우 일구어 근근이 살아가는 상황에서 산림을 보호하자는 구호는 모순이다. 산림애호 푯말을 보면서 문득 김정은이 이번 8차 당대회에서 강조한 3대 구호가 떠올랐다.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이라는 3대 구호는 지금의 북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백성을 하늘과 같이 여긴다는 이민위천을 외치면서 정작 먹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외부세계와 철저히 고립된 채 여전히 자력갱생만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에 산림애호 선전구호판을 달아놓은 것과 똑같은 모순적인 현실이다. 자력갱생은 결코 북한이 경제난을 해결하는 전략이 될 수 없다. 외딴섬처럼 세상과 단절된 채로는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산림애호를 외쳐대도 정작 가꿀 나무 한 그루 없는 상황에서 자력갱생은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황폐하고 헐벗은 민둥산만큼이나 북한 주민들의 생활 역시 고달프다. 정권에 충성을 다하라는 일심단결로는 지금의 위기를 헤쳐갈 수 없다. 인민을 하늘과 같이 여긴다면 지금이라도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면 될 일이다. 그것만이 진정한 인민애호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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