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칼럼] 지방발전 20×10 정책, 자력갱생이 돼선 안 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가 1월 15일 수도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이날 회의에 참석해 시정연설을 하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 /사진=노동신문·뉴스1

어느 지역이나 불평등은 불만을 낳고 불만은 바로 사회의 불안 요소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사회주의 국가는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주민들의 평등권이 보다 중요시되어야 한다. 북한에서는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가 개최되었고, 이날 김정은 위원장은 시정연설을 통해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매년 20개 시·군을 선정하여 10년간 지방공장을 건설하고, 지역개발 등을 통해 인민 생활의 균형적 발전을 이룩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북한의 지역 불균형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민심 이반이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선대 지도자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해결하려고 했던 과제 중 하나였다. 1962년 김일성은 한 회의에서 지역 간의 발전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시인구 집중화 문제를 지적하고, 지방공업 발전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정일 시대 북한에서는 지역 간 격차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드러났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평양과 같은 경제적 수준이 높은 지역에 비해 외곽 도시와 농촌지역에서 아사자가 많이 발생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김정은 시대에서 지역 불균형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특히 핵개발에 따른 대북 경제제재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겹치던 시기에 자력갱생에만 매달려 지방과 대도시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또한 고난의 행군 시기 배급제가 사라지면서 장마당이 일반주민의 젖줄의 역할을 대신해왔으나, 김정은 위원장이 장마당의 활성화에 제동을 걸고 통제에 나선 이후 장마당도 위축되어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역 균형 발전을 목표로 한 시·군 강화노선과 농촌발전전략을 발표하여 지방발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듯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그 예로 지난 8차 당대회에서 향후 5년 동안 평양시에 매년 1만 세대씩 총 5만 세대를 건설하겠다고 밝힌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번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의 5만 세대 살림집 건설 결속을 재촉하였다.

김정은 시대의 정책을 살펴보면 지방발전과 일반 인민중심의 정책이라기보다는 군부 및 과학자의 특수 계층이나 권력 기반을 이루고 있는 고위층을 향한 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진 듯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역점사업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건설 사업은 주로 평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혜택 역시 평양 거주 시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측을 해볼 수 있다.

평양은 6·25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건설된 계획도시이다. 특히 사회주의 도시계획이론에서 제시한 대로 대도시를 지양하고, 도농 통합형 도시를 추구한 쾌적한 도시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평양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으며, 그 수는 2010년 초에 비해 현재까지 약 10%가량 증가했다. 이것은 김정은 체제가 평양 중심의 권력 지지층 확보 노력을 한 결과라 볼 수도 있다. 북한 특성상 인구통제가 가능한데도 부족한 살림집을 공급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꾸준히 평양지역에 고급 아파트를 건설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1년 3월 23일 평양시 사동구역 송신, 송화지구 1만 세대 살림집 건설 착공식에 참석해 연설했다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그렇다고 김정은 위원장이 지방 균형발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동안 그는 지방공업의 현대화를 위해 화장품, 신발·가방, 식품, 양말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생산시설을 현지지도하며 발전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는 2022년 노동당 창건기념일 많은 일정에도 무릅쓰고 북한 대규모 채소 온실농장으로 알려진 연포온실농장 준공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러한 지방 사업들이 본보기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본보기 사업이 확산되고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1월 15일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지방의 낙후성’을 비판하며 ‘지방발전 20×10 정책’ 추진계획을 밝힌 것 또한 본보기 사업의 지속성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회의적 반응이 팽배하다. 지난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채택된‘경제·핵 병진노선’은 당시 남북한 군사적 불균형을 핵개발을 통해 맞추고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했으나, 오히려 핵개발에 따른 유엔 대북제재로 인해 경제발전의 동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과거와 같은 각자도생 방식으로는 김정은 위원장이 추구하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역발전에 필요한 공장건설은 기본이고 생산에 필요한 각종 원료와 자재의 수급, 그리고 이에 필요한 기술과 에너지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중앙정부는 북한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전기, 시멘트, 철강, 유리, 석탄 등 기초 공급원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북한은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그 공급원이 상당히 부족한 상태에 놓여있다. 핵개발에 따른 대북제재의 영향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북한의 지역 불균형 문제가 지속될 경우 북한 사회주의를 지탱해 온 인민들의 충성도와 사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특히 평양을 중심으로 한 주택건설의 모습은 북한 외곽에서 바라볼 때 일부 계층만을 위한 그들만의 잔치로 비추어질 가능성이 높다. 평양에 거주하는 당과 군부 고위 간부들의 높은 충성심이 아무리 필요하다 하더라도 나머지 2000만 주민들의 묵묵한 지지가 없으면 정권이 유지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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