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 北, 은행정상화·핀테크로 유휴자금 흡수 노린다

제도 및 기기 개선 동시에 꾀했다...주민 불신 해소가 관건일 듯

북한 조선 중앙은행
북한 조선중앙은행. /사진=서광 홈페이지 캡처

북한에서 은행은 주민들이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기관 중 하나다. 지난 2009년 단행된 화폐개혁으로 인해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이 때문에 돈주로 불리는 재력가들은 국돈(북한 원화)이 아닌 외화(달러, 위안)로 자산을 유지하려 한다. 이는 비단 돈주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에게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심지어 일부 주민들은 북한 돈을 ‘풀처럼 가치가 거의 없다’고 비꼬기도 한다.

북한 당국 입장에서 자국 통화 대신에 외화가 통용되는 ‘달러라이제이션’ (dollarization) 현상이 달갑지 않다. 주민들이 국돈을 계속 기피한다면 통화정책을 이용한 경기 부양을 할 수 없게 뿐더러 경제 시스템이 물가 및 환율의 변동성 등에 의해 갑자기 불안해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주민 생활의 불안이 가중되면서 통치기반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북한 당국은 금융 제도를 개선해 달러라이제이션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015년 제3차 전국재정은행일꾼대회에 ‘재정은행사업에서 전환을 일으켜 강성국가건설을 힘있게 다그치자’는 제목의 서신을 보내 “재정은행 사업은 화폐자금을 수단으로 하여 나라의 살림살이를 계획적으로 꾸려나가며 국가경제기관, 기업소들의 관리 운영을 규제하고 조절 통제하는 중요한 경제사업이다”며 “나라의 재정토대를 튼튼히 다지고 화폐유통을 공고히 하여 당의 선군혁명영도와 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을 재정적으로 믿음직하게 담보하는 것이 재정은행 부문 앞에 나서는 총적 과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북한 당국은 무리한 화폐 개혁으로 인해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던 2009년의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낮은 강도의 자본 흡수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18년 11월에 촬영 된 라선(나선)국제상업은행 외관. / 사진=데일리NK 내부 소식통 제공
중앙 및 시중 은행 기능 정상화 시도

북한 전문매체 NK경제가 공개한 ‘경제연구 2020년 제1호’에 실린 ‘현시기 중앙은행의 대부업무정보체계를 개선하는 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라는 제목의 소논문은 “전국적인 화폐유통실태를 장악할 수 있는 자료수집 기능을 중앙은행 대부업무정보체계에 반영해야 한다”며 “노동 보수 등을 통해 유통계에 들어가는 현금 양과 생산물 유통에 동반되는 화폐거래량, 저금 및 대부량 등을 정상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논문은 “국정 가격 수준의 변화 정도, 시장가격의 변화 정도가 실시간으로 반영돼 화폐의 안정성 보장 정도를 파악해야 한다”면서 “여러 경제 수학적 수법들을 적용해 수집된 자료들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부업무체제 개선을 통해 주민들이 이용하는 현금 흐름을 파악·분석하고 이를 경제정책에 활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북한은 은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개인대출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돈이 필요한 주민들은 할 수 없이 사(私) 금융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고리대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 당국이 사금융으로 몰리는 주민들의 수요를 공금융으로 돌리면서 내화까지 통제할 수 있도록 대부 관련 시스템 개선을 준비하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이와 관련, 일반적으로 각국의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과 통제 기능을 담당하고 일반 금융업무는 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의 중앙은행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서비스도 일부 제공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시중은행도 주민들의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금리 예금을 선보이는 모습을 보인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월 평안남도 일부 지역에서 주민 세대별로 북한상업은행 통장을 개설토록 강요하고 연 10%의 이자를 약속했다고 한다.

본지 역시 지난 2019년 일부 북한 상업은행들이 10%의 고금리 예금을 홍보하면서 주민들의 유휴 자금을 흡수하려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관련기사 북한, 유휴자금 확보 주력?… “상업 은행 10% 고금리 홍보”)

그러나 여전히 많은 주민들은 북한 당국이 제시한 10% 이자를 과연 받을 수 있을 지, 혹은 원금은 보전 가능한 지에 대해서 많은 의구심을 품고 있다.

북한 전성카드. /사진=서광 홈페이지 캡처
北, 신속성·정확성·투명성·편리성 앞세운 전자결제카드 통해 유휴 자본 흡수 시도

북한 당국이 은행 기능을 정상화해 주민들의 유휴자금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화폐개혁 이후 당국과 당국이 운영하는 은행에 대해 여전히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민들의 유휴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북한 당국이 주목하는 분야는 핀테크다. ‘금융정보화’를 통한 신속성, 정확성, 투명성, 편리성을 앞세워 주민들의 자본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주민들은 북한판 핀테크라고 불리는 ‘전화돈’을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다. 2010년경부터 운영된 북한의 전화 통화 시간 충전용 서비스인 ‘전화돈’이 어느 순간부터 소액결제, 간편송금 등에 활용돼 온 것이다. 금융 서비스의 부재를 ‘전화돈’이라는 나름의 핀테크 수단으로 대체해왔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지난 7월 돌연 전화돈 현금화 금지조치를 내렸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은 전화돈이 차지하고 있던 송금·결제 역할을 은행 전자결제 카드로 대체하려고 시도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국가 무역 은행들이나 주요 지방은행들에 (체크) 카드와 연동해 사용해 사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면서 북한 당국은 지난 10월 QR코드를 이용한 오프라인 간편결제 기능이 추가된 모바일용 전자결제체제 ‘울림 2.0’을 출시했다.

또한, 북한 선전매체 아리랑 메아리에 따르면 같은 달 조선중앙은행과 평양정보기술국이 공동으로 손전화기(휴대전화)를 이용한 ‘전성’ 전자지불체계를 개발해 도입했다.

주민들이 유용하게 사용해왔던 간편결제 수단인 ‘전화돈’을 갑자기 중단시키고 일사천리로 대안을 제시한 모양새다. 마치 이날을 상당히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러나 상당수 주민들은 어렵게 모은 자본을 당국에 강탈 당할까 우려하면서 당국이 제시하는 모바일 금융 시스템을 외면하고 있다. 금융에 대한 불신이 주민들 마음 속 상당히 깊은 곳까지 뿌리내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 스마트폰
북한의 각종 스마트폰. / 사진=서광 홈페이지 캡처
보급형 스마트폰 공급 확대를 통한 핀테크 확산 전략

전문가들 역시 모바일 기기 확산과 제도권 금융 인프라가 부족을 핀테크 성장의 촉진 여건으로 바라보고 있다. 낙후된 금융 인프라 속에서는 편리성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화돈은 스마트폰이 아닌 피처폰으로도 이용이 가능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만들고자하는 금융생태계에서는 스마트폰이 필수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금융망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스마트폰이 상당히 중요한 상황이다.

실제, 북한 당국은 스마트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확인된 종류만 평양 2426·2428, 철령 201·202, 진달래 6·6㉮·7, 푸른 하늘 S1·S2 등이 있다.

이중 평양 2426, 진달래 6㉮, 푸른 하늘 S1·S2는 북한 내 플래그십(주력) 모델로 평가되는 평양 2425에 비해 성능이 낮은 보급형으로 분석됐다. 평양 2428 역시 혁신적인 변화는 없이 일부 성능만 향상된 수준이었다. 북한 당국이 1년 새 내놓은 스마트폰 9종 중 4종이 보급형, 1종은 일부 개량형인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급형 스마트폰을 주민들에게 공급해 자연스럽게 보급률과 핀테크 이용률을 높이려는 북한 당국의 전략이 차곡차곡 진행 중인 모습이다.

북한 당국이 은행 기능 정상화, 모바일을 활용한 금융 시스템을 제공하면서 주민들의 돈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으나 주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다. 화폐개혁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민들은 당국과 제도권 금융을 불신하고 있다.

10년 전 화폐 개혁 당시 주민들이 강력한 반발을 일의 컸던 만큼 향후 북한 당국은 모바일 결제 시스템 연착륙을 통한 금융 정책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스마트폰 이용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통신망 구축 작업도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은 현재 3G 통신망을 이용하고 있지만 최근 보급되고 있는 스마트폰들은 4G를 수신할 수 있는 단말기다. 통신망만 갖춰지면 즉시 4G 이용이 가능하고 이를 통한 모바일 금융 시스템 활용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관련기사 : 北 LTE 용 스마트폰 잇단 출시…4G 시대 준비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