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월 28일부터 소집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5차 회의가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되었다. 통상 4월 정기회의만 개최되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가을회기가 열린 데다가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과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 국면 등과 맞물려 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회의의 하이라이트는 대의원이 아닌 김정은이 직접 참석하여 대내외 정책 전반과 관련한 시정연설을 한 점이다.
그는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당면 투쟁방향에 대하여>>제하의 연설을 통해 이른바 “우리 국가제일주의 시대, 부흥강국의 위대한 새시대”의 의의와 성과를 강조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서의 일대쇄신과 투쟁을 강조하였다.
총론적 평가
이번 회의의 개최 배경과 주목되는 점은 ▲경제발전 5개년 계획 등 8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정책의 중간 점검 ▲대남-대미 정책과 관련한 메시지 발송 ▲인사개편 등의 3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경제발전 5개년계획(2021~2025) 등 각 분야 정책관철 상태 중간점검과 관련 해서는 코로나19, 대북제재 장기화, 자연재해의 3중고가 지속되고 있지만, 올해 초 8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핵+자력갱생의 정면돌파전 2.0’의 노선을 당분간 끌고 나가도 되겠다는 내부 판단이 섰음을 시사해 준다.
“김정은 동지께서는 총체적으로 우리식 사회주의는 부단히 강화되는 주체적 력량(역량)에 의거하여 더욱더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자기의 발전궤도를 따라 줄기차게 전진하고 있음을 당당히 자부할 수 있다고 언명하시였다….국가 방위력을 강화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최우선적인 권리이며 우리식 사회주의의 존립과 발전은 국가방위력의 끊임없는 강화를 떠나서 절대로 생각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공화국 무력을 백방으로 다지며 국방공업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여….”(2021.9.30 조선중앙통신)
다음으로 대남-대미 메시지는 문재인 정부 압박·길들이기를 통한 이남제미(以南制美) 전술로 요약할 수 있다. 즉 “민족자주-근본문제 해결입장 견지”를 촉구하면서 “망상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라. 남조선에 도발할 이유도 없고 위해를 가할 생각도 없다” “향후 남북관계는 남조선(남한)의 태도여하에 달려 있다” 등으로 임기 말 성과 창출에 목말라 하는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고 유혹하여 핵보유국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인정받으려는 저의가 보여진다. 물론 남남갈등-한미이간도 자연스럽게 노리고 있다.
특히 10월 초 통신선 재복원 조치는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본격적인 대화와 교류‧협력을 위한 시그널이라기보다는 김정은 제의의 상징성(선의)를 홍보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더욱 흔들고 원포인트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고 평가된다.
“김정은 동지께서는 경색되여있는 현 북남(남북)관계가 하루빨리 회복되고 조선반도(한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온 민족의 기대와 념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일단 10월 초부터 관계 악화로 단절시켰던 북남통신 련락선(연락선)들을 다시 복원하도록 할 의사를 표명하시였다.”(2021.9.30 조선중앙통신)
한편 바이든의 대북정책을 “교활하다”고 폄훼하면서 대미정책 연구‧검토를 지시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역할 변화를 지속해서 압박하면서 바이든과의 협상을 모색 (우위 점유)해 나가려는 전술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셋째, 인사 개편은 8차 당대회 이후 숙청, 해임되었던 자리를 공식적으로 메꾼 조치이며, 주목되는 인물은 김여정과 최선희이다.
김여정은 대외-대남문제를 총괄하는 그의 위상에 맞게 국가 직책을 부여해준 것이고, 김여정이 전면에 나섬에 따라 최선희는 자연스럽게 실무자 위치로 돌아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최선희는 국무위원직에서는 물러났으나 외무성 제1부상 직함을 가지고 막후에서 김여정을 도와 대미전략 수립을 총괄할 것이다.
김정은 시정연설의 노림수
이번 회의의 백미는 김정은 시정연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득 떠오른 생각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인조의 삼전도 치욕”이다.
요즘 한국의 전통놀이를 소재로 한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 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호랑이를 소재로 한 재미있는 전래동화도 참 많다.
그래서 인지, 김정은 연설을 보며 마치 전래동화 속의 호랑이가 머리를 계속 맴돌았다. “음흉한 호랑이가 산속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팔, 다리를 하나 주면 살려주겠다고 속여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먹다가 끝내는 통째로 잡아먹는다”는 아기는 어릴 적 우리들의 애간장을 태웠었다.
그런데 오늘 김정은이 동생 김여정이 최근 담화를 통해 군불을 때놓은 한미합동 군사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 ‘근본 문제’, 즉 대북 이중기준과 적대시 정책 철회를 정식으로 요구하면서 통신선 재복원이라는 당근을 슬쩍 끼워넣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의 위협, 공갈보다는 10월 초 통신선 재복원이 갖는 의미 즉 향후 남북관계에서의 장미빛 전망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아마 모르긴 해도,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성과 창출에 목을 매는 임기 말 문재인 정부도 이에 초점을 맞추어 이번 연설의 의미를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우리는 전래동화 속의 할머니 꼴이 될 것이다.
김정은은 핵·미사일 강국으로서 우리를 핵 인질로 계속 삼을 것이고, 요구의 강도를 계속 높여 나갈 것이다. 우리를 내세워 미국 바이든 정부를 움직이려 할 것이다.
남남갈등과 한미이간 책동을 더욱 노골화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무릎을 꿇는 것을 넘어 피가 나도록 기어나가는 꼴, 마치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 수치스러운 예법)를 한 인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김정은은 그들의 선전대로 핵 대결에서 승리한 위대한 영장이 될 것이고, 미국과는 핵보유국 자격으로 군축 협상을 시도하려 할 것이다.
결어
미몽, 집착에서 깨어나야 한다. 북한은 치밀한 계획·전략전술이 있는데, 우리는 소망만 있는 듯하다. 김정은 남매가 하는 행동의 반의 반만이라도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 이건 대결적 태도가 아니라 주권국가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이고, 외교이고, 전략전술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북한 문제는 한 정권의 문제만이 아니다. 자유 대한민국의 국운과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과제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어느덧 거의 막바지 수준에 와 있다. 이번에 김정은의 핵개발 야망·술수에 걸려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김정은의 노림수는 문재인 정부를 좌지우지하여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미국을 자신의 운동장, 협상틀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전술(以南制美;이남제미)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등 단기적·가시적 성과에 집착하여 우리의 안보 자주권과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장기적·전략적 관점을 가지고 북한을 당당히 상대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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