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모든 통신연락선 폐쇄” 초강수…대남 비난으로 결속 나서

대북전단 빌미로 연일 남한 때리기…경제적 어려움 속 내부 주민 다잡기에도 활용

경기 파주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연락사무소 ‘남북직통전화’를 통해 우리측 연락관이 북측과 통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통일부 제공

북한이 9일 12시부터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 채널을 완전히 차단·폐기한다고 밝혔다.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연일 규탄하고 있는 북한은 남북 당국 간의 모든 연락채널을 포함해 정상 간 핫라인까지 끊겠다는 강수를 두며 대남 비난과 압박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북남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리는 조치를 취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6월 9일 12시부터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유지해 오던 북남 당국 사이의 통신연락선, 북남 군부 사이의 동서해 통신연락선, 북남통신시험연락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통신은 해당 보도에서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전날(8일) 대남사업 부서들의 사업총화 회의에서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릴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앞서 김여정 담화(4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5일)를 통해 탈북민들의 대북전단 살포와 우리 정부의 대응을 비난하면서 남북관계 단절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앞선 김여정의 담화에서 남북 연락사무소 철폐가 거론된 바 있으나, 북한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남북 간의 모든 연락채널을 끊겠다는 강수를 던졌다.

현재 이를 두고서는 대북전단 대응 문제를 빌미로 ‘하노이 노딜’ 이후 누적돼온 남측 정부에 대한 불만과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남북 간 연락 기능은 남북·북미관계 선순환을 위한 남북협력 증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실현해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결국 북한이 남북 간 모든 통신연락선 차단·폐쇄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은 대남 압박의 수위를 한층 높이면서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나가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초부터 독자적인 남북협력 공간을 구축하겠다며 대북 유화 메시지를 보내고 있던 우리 정부로서는 상당한 충격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북한이 추가적인 강경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남북관계 발전을 목표로 추진해온 정부의 남북협력사업 동력도 상실될 위기에 놓였다.

실제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들을 심의했다”며 “이번 조치는 남조선 것들과의 일체 접촉공간을 완전 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의 행동”이라고 밝혀 단계적인 움직임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앞서 김여정은 담화에서 우리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응분의 조처를 하지 않을 시 연락사무소 철폐,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기상악화로 연기했던 육해공군 합동 해상사격훈련이 오는 11일 실시될 예정이라는 점에서 북한이 다음 단계의 ‘대적사업’으로 적대행위 중지를 명기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고 대남 군사도발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자멸을 재촉하는 천하 역적 무리들에게 무자비한 철추를 내리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남조선 당국과 탈북자 쓰레기들을 단죄·규탄하는 청년학생들의 항의 시위행진이 7일과 8일 평양시와 각 도에서 있었다”라고 밝혔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현재 북한은 이번 사안을 내부 결속용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남북 간 모든 연락채널을 차단·폐기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대외용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북한 주민들이 접하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도 게재됐다.

신문은 또한 이날 1면 ‘계급교양은 끊임없이 심화시켜야 한다’는 제목의 논설에서 “지금 우리 인민은 탈북자 쓰레기들이 저지르고 있는 반공화국삐라 살포와 이를 묵인하고 있는 남조선 당국의 처사에 치솟는 분노와 혐오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투철한 계급의식과 계급교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밖에도 신문은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남측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의 기사들을 여러 면에 걸쳐 싣고 항의 군중집회와 시위행진이 열렸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신문은 지난 6일부터 관련 보도를 지속 내보내며 연일 대남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는 대북제재와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속 침체된 내부의 분위기를 한반도 긴장 상황으로 반전시켜 체제 결속을 다지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한편, 통일부 당국자는 9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통신연락선 차단·폐기 공포에 “남북 간 통신선은 소통을 위한 기본 수단이므로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며 “정부는 남북 합의를 준수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기본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북한이 통신연락선 차단 기점으로 언급한 이날 오후 12시 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과 통화 연결을 시도했으나, 북측이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측은 앞서 이날 오전 9시 정기적인 연락사무소 개시 통화에도 응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