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며칠간 머물렀던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의 하늘은 유난히도 흐리고 무거웠습니다. 전쟁의 포화가 여전한 그곳에서 마주한 포로수용소의 외벽은 차갑고 거칠었습니다. 하지만 그 견고한 콘크리트 담장에 조용히 두 손을 얹은 저희 방문단 일행의 손끝은 너무도 떨려왔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차마 마주하기 힘든 현실이 바로 그 벽 너머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왜 이 먼 이국땅에서 총을 들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사지로 내몰린 두 명의 북한군 포로들. 그 수용소 안에는 백평강, 리강은(가명)이 외롭게 갇혀 있었습니다.
키이우 전역을 돌아보며 목격한 북한제 탄도미사일 파편과 노획된 무기들은 한반도의 비극이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님을 뼈아프게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꽃다운 청년들의 생명까지 총알받이로 던져버린 북한 정권의 잔인함에 가슴이 메어왔습니다. 더욱이 최근 러시아의 북한군 포로에 대한 소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는 소식은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만약 그들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마주할 운명이 얼마나 참혹할지,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물론 3대가 멸족을 당하는 가혹한 처벌을 피할 수 없기에, 그들은 강제북송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으로 손목을 물어뜯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했습니다.
이 절망의 문턱에서 대한민국 민간 방문단이 우크라이나 전쟁포로처우조정본부(POW)를 찾은 것은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번 방문단은 특히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었던 탈북민들로 구성되어 그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그들 중에는 과거 탈북 과정에서 차마 아들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아파하는 한 어머니도 계셨습니다. 그녀는 수용소에 갇힌 두 명의 북한 청년들을 보며 잃어버린 아들을 떠올렸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서 우리 청년들이 헛되이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청년들을 살리기 위한 눈물의 여정에 동참하신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두 청년이 갇혀 있는 포로수용소 벽에 손을 얹은 채, 끊어질 듯 떨리는 목소리로 북한군 포로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습니다. “강은아, 평강아… 꼭 살아서 곧 만나자.” 차가운 콘크리트 벽을 타고 흐르는 어머니의 애절한 외침은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심장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삼엄한 콘크리트 외벽은 차갑고 거칠었지만, 저희는 마음을 담아 벽 너머의 청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탈북민들이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정성스럽게 써 준 150여 통의 편지와 에스더기도운동본부(대표 이용희)에서 마련해 준 인도적 지원품과 영치금까지 전달했습니다.
이번 방문 일정 중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은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포로처우조정본부(POW)와의 면담 결과입니다. 포로 문제를 전담하는 그 기관으로부터 “북한군 포로들을 절대 강제북송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단호하고도 확실한 구두 약속을 받아낸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정부는 먼저 사선을 뚫고 나와 이 자리에 선 탈북민들을 향해 “자유를 찾아온 그 용기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며 깊은 경의를 표했습니다. 특히 조정본부 측은 현재 운영 중인 투항 독려 프로그램인 ‘나는 살고 싶다(I Want to Live)’ 프로젝트를 향후 탈북민 단체들과 함께 공동으로 전개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저희는 이에 그치지 않고 현지 국회의원들과의 간담회, 시민사회단체와의 세미나, 그리고 국제적십자사(ICRC) 방문 등 밤낮없는 일정을 이어가며, 갇혀 있는 청년들이 하루빨리 자유민주주의의 품으로 안전하게 입국할 수 있도록 모든 통로를 두드렸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중심에 위치한 마이단 광장(독립광장)에는 수만 개의 작은 깃발과 빛바랜 사진들이 끝없이 꽂혀 있었습니다.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그곳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눈물을 삼키며 ‘기억하는 자의 몫’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피어나는 그 숭고한 정신을 바라보며, 저는 이번 민간 방문단 일행과 함께 그들의 싸움이 단순한 영토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자유와 인권의 싸움’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선을 넘어 이곳까지 흘러 들어온 북한 청년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인류 보편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자 같은 피를 나눈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눈물겨운 책무입니다. 수용소 담장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이 청년들이 이곳에서 마주한 진실이 훗날 한반도의 자유와 통일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게 해달라”고 드렸던 간절한 기도는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품어야 할 고뇌이기도 합니다.
담장 너머의 북한 청년들을 살려내는 일은, 어쩌면 2,600만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의 봄을 전하는 가장 큰 첫걸음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 청년들이 다시 사지로 내몰리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의 따뜻한 품으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때입니다. 그날 우크라이나 포로수용소의 차가운 담장에 얹었던 저희의 손은, 외로운 청년들을 결코 혼자 두지 않겠다는 대한민국과 자유세계의 가장 간절하고 끈질긴 그리고 반드시 지켜져야 할 약속이어야 합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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