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노 칼럼] 헌법 명칭 변화 정황, 드러나는 김정은 체제의 한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5년 12월 2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석 아래 헌법절 53주년을 기념하는 국기게양 및 선서의식이 전날(27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2025년 12월 27일, 현행 헌법 제정 53주년을 맞아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국기 게양식과 선서식을 진행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행사는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형식으로 치러졌다.

다만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점은, 최근 북한 매체의 보도에서 기존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이라는 명칭이 그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빠진 채 언급되는 경우다. 하지만 공식적인 헌법 명칭 변경 여부에 대해 북한 당국은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러한 표현 변화가 곧바로 체제 노선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자본주의를 선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선중앙통신이 2024년 5월 공개한 조선노동당 중앙간부학교 완공 기념 공연 사진에는 여전히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가 무대 좌우에 걸려 있었다. 또 북한은 2022년 이후 양곡판매소를 각지에 설치해 주요 곡물의 판매와 유통을 국가가 통제하는 체계를 강화해 왔다. 이렇듯 자유시장에 맡겨졌던 유통 영역은 축소되고 있고, 국가 개입은 더욱 촘촘해지고 있다. 현실에서는 ‘탈사회주의’가 아니라, 통제된 형태의 사회주의적 관리가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헌법 명칭을 둘러싼 표현 변화가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은 체제가 자신의 통치 정체성을 새롭게 부각하려는 시도와 무관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 매체에는 2024년을 전후해 김 위원장의 배지와 초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친근한 어버이’로 김 위원장을 찬양하는 노래도 제작됐다. 북한 내부에서는 ‘김정은 혁명사상’을 주제로 한 강연과 학습이 진행되고 있다는 전언도 나온다. 김일성 주석 시기에 확립된 상징과 표현에서 점차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 조정만으로 김정은이 김일성의 카리스마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이 점은 김일성이 사회주의헌법을 제정하던 시기의 배경과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53년 전 북한이 사회주의헌법을 제정한 데에는 남북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김일성의 강한 문제의식이 깔려있었다. 1972년 7월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전후로, 북한 지도부는 체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탈북한 전직 북한 고위 간부의 증언에 따르면, 1972년 5월 말 박성철 당시 제2부수상은 극비리에 서울을 방문했고, 밤거리의 ‘빛의 홍수’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보고를 받은 김일성은 한국의 전력 사정과 산업 기반을 체제 경쟁의 실질적 위협으로 인식했고, 스스로가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던 사회주의를 더욱 철저히 구현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남북공동성명 협의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도 김일성의 현지지도 기록 영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김일성은 양강도와 자강도를 방문해 주민들에게 가구 수에 맞는 찻그릇과 이불이 충분한지를 직접 물었고, 이를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항일 유격대 시절 산속에서 노숙하며 식량 부족을 겪었던 경험이 이러한 집착의 배경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신발과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주민들과 악수하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북부 지역의 열악한 생활상을 잘 알고 있던 이후락은, 양강도와 자강도 주민들조차 이불을 덮고 잘 수 있을 만큼 생활 여건이 개선됐다는 점에 놀라 이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반면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는 성격이 다르다. 2025년 말 김 위원장은 각지에서 준공된 산업시설과 병원, 관광시설의 준공식에 잇따라 참석했다.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도착하는 동선과 시설 주변만 집중적으로 제설이 이뤄졌고, 행사 참가자들은 정장이나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연출된 분위기 속에서 환호했다.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반복적으로 연출됐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가난한 주민의 집을 직접 찾아가 생활을 함께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일성 시대의 이른바 ‘1호 행사’가 주민 생활을 직접 확인하고 부족한 자원을 보완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면, 김정은 시대의 1호 행사는 새로운 시설과 최고지도자의 ‘은혜’를 연결하는 상징 행사에 가까워졌다.

이러한 거리감은 정책 판단에서도 드러난다. 김 위원장은 주민들에게 ‘앞으로는 빵을 먹으라’는 식의 지시를 쉽게 내린다. 그러나 빵 중심의 식생활은 밀가루뿐 아니라 토스터, 버터, 잼, 우유 같은 생활 인프라가 함께 갖춰져야 가능하다. 북한 주민들은 감자와 옥수수를 가공해 술과 전, 국수를 만들어 먹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밀가루 위주의 식생활에는 충분히 적응돼 있지 않다.

헌법의 명칭이나 상징을 조정한다고 해서 주민들의 존경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헌법의 이름과 표현까지 손대야 하는 상황 자체가, 김정은 체제가 느끼는 조급함과 통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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