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국정원장의 반국가적 행태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사진=연합뉴스

참담한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52년 만에 대북방송을 중단한 국정원의 조치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종석 국정원장이 취임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다. 국정원에서 대북방송을 중단한다는 것은 국가의 책무를 망각한 위법 사항이다. 북한 주민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고립되고 단절되어 있다. 그들이 또 다른 세상을 보는 유일한 창이 바로 대북방송이다. 지금까지 어떤 정권에서도 국정원이 대북방송과 라디오를 중단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초유의 사태다. 대북정보 유입이야말로 북한 사회 내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무기다. 이러한 취지에서 민간단체 역시 어떻게 하면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해 온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평화라고 했다. 북한이 고도의 핵무기를 개발한 상황에서 정말 북한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은 바로 심리전과 정보전이다. 북한당국은 정치사상 교육을 통해 ‘남조선은 썩고 병든 자본주의이며 노숙자 거지가 많다’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어느 날 북한 주민이 몰래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접한 현실은 달랐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무엇보다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외부 정보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들이 결국 독재체제의 균열을 이끌어낼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가 된다. 그런데도 이재명 정부는 출범 후 시행한 조치가 대북전단 금지, 대북확성기 중단 등에 이어 국정원 대북방송까지 중단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가장 혜택을 받는 이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명확해진다.

북한 내부에 외부 정보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건 대략 2010년대라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만약 북한에 유입된 외부 정보가 북한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김정은 정권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다. 급기야 북한당국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라는 것까지 만들어 단속과 통제를 강화한다. 이 법은 한마디로 남한의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는 경우 최고 사형까지 처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외부 정보 확산은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이른바 장마당 세대라 불리는 북한 청년들은 이제 자신들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와는 다른 생각을 한다. 김일성, 김정일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총폭탄’ 세대가 아닌 ‘내가 왜 김정은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가’라는 반문을 품는 세대들이다. 그 사상의 변화는 바로 외부 정보 때문이다.

북한 주민의 알권리를 제고함은 물론 북한 사회 변화를 촉진하는 대북방송을 중단한 저의가 무엇인가. 이종석 국정원장의 안보관, 국가관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함은 물론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치임은 명명백백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통일부의 북한 콘텐츠 개방 조치다. 북한 영화나 만화를 국내에 개방하고 특수자료의 범위를 해제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영화나 만화는 당연히 체제와 정권 선전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방송 교류는 쌍방이 합의한 결과이다. 하지만 지금 통일부가 추진하는 북한 콘텐츠 개방은 우리만의 일방적 조치다. 북한 주민의 알권리는 포기하고, 우리 국민의 알권리라는 얄팍한 포장으로 북한 콘텐츠를 개방한다는 작금의 사태를 대체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북한 주민이 외부 세계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빛과 창이 바로 외부 정보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북한 주민들에게 한 줌의 빛 같은 정보를 접하게 할지 고민하며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 북한 주민에게 진실을 전하는 것이다. 분단국가의 정보기관이 심리전과 정보전을 포기했다는 것, 먼 훗날 역사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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