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의 반인도범죄를 공식 규명한 지 꼭 10년이 되는 해이다. COI는 2014년, 강제실종을 포함한 북한의 조직적 인권침해가 인도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라고 명시하며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오늘, 피해자들은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이고, 가해자 대부분은 처벌받지 않은 채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최근 『북한 강제실종범죄 조사기록과 책임규명: 이행 점검과 권고사항』 보고서를 발간하며, 이러한 현실을 다시 조명했다.(https://en.tjwg.org/mapping-project-north-korea) 보고서는 TJWG가 지난 수년간 축적해온 조사기록을 바탕으로, 피해자 가족 및 시민사회 단체들이 펼쳐온 애드보커시 성과와 한계를 점검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보고서는 북한의 강제실종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범죄임을 강조한다. 미송환 국군포로, 전시 및 전후 납북자, 북송 교포, 정치범수용소 수감자, 해외 파견 노동자 등 10가지 유형의 피해자가 오늘날까지도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실종이 아닌, 구조적 인권침해의 결과이다.
억압적인 제도와 법이 범죄를 가능케 하다
북한에서 강제실종은 억압적인 법과 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성분 제도의 그늘 아래 차별받고 있고, 이는 정치범의 단죄를 가능하게 하는 북한 사회의 계급적 차별 구조의 기반이 된다. 이러한 제도와 일련의 악법은 우리나라 내부에 적극 공개되어 있지 않아, 우리는 북한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하는데 방해를 받고 있다.
북한 내부에서 주민들은 알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국내법조차 열람할 수 없으며, 국제 인권 조약을 공표하라는 요구 또한 무시되어 왔다. 특히 국가보위성은 조사, 기소, 판결, 처형까지 한 기관이 독점하는 구조로 운영되는데, 이러한 운영의 근간이 되는 지침은 북한 내부에서도 외부에도 알려져 있지 않다. 법치가 부재한 상황은 명백하다.
한편, TJWG는 강제실종의 상당수가 중국과 러시아 등 국경 밖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중국 당국은 중국 내에서 발생한 북한 당국에 의한 납치 사건에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며 오히려 중국이 피해자라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납치를 묵인하고, 적극적인 가담자를 처벌하지 않고, 북한 당국의 불법적 활동을 조력하는 일련의 행태로, 북한 내부로 끌려간 많은 주민이 고문당하고,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입증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인 실체 규명에의 다각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국제사회, 침묵 아닌 행동으로 응답해야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제재 조치는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인권침해 근절의 수단이 된다. 이번 보고서에서 가해자의 실명과 소속기관을 문서화하며, 향후 형사기소 및 표적 제재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북한의 강제 실종 범죄에 대한 일련의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범죄에 가담한 가해자들의 행위는 억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더 큰 책임을 가지는 주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진다. 특히, 유엔북한인권 서울사무소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역할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과 러시아의 책임 회피에 대해 유엔 기구들이 지나치게 소극적이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책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인권에 대한 명확한 정책 방향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주요 책임자들의 발언 속 북한에 대한 불명확한 인지와 소극적인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나타난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철저히 북한 주민들에게 향해야 하며, 북한 정권이 다양한 법적, 제도적 수단으로 주민들을 탄압하고 있는 한 협력에의 한계는 자명하다. 진정한 의미의 평화란 남북한 간 시민을 위주로 꾸려지는 안정성이어야만 한다.
우리 정부는 당연히 해야 할 책무부터 점검 이행해야 한다. 강제실종된 국군포로, 선교사, 납북자 문제는 단지 안보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자국민을 끝까지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대다. 남북 관계 개선의 훈풍은 반복되었지만, 북한 내부의 실질적 변화는 없었다. 이제는 명확한 원칙과 전략으로 접근할 때다.
TJWG는 다양한 시민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9만 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북한 당국에 의해 실질적 피해를 입었음을 웹사이트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https://www.tjwg.org/) 국제 및 국가 차원에서의 사실 규명 의지가 부재하면, 일반 시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쉽고 명확하게 이해하기 힘들고, 사회적인 공론화가 부재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정책의 집행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볼 수 있다.
피해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 그것이 정의의 시작이다
많은 조사기록의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민간 단체들의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TJWG는 앞으로 러시아 파병 군인과 중국 등지의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에 대한 초국가적 억압과 강제실종 문제도 추가로 조사할 것이다. 또한 가해 행위에 가담한 관련 기관과 인물 정보를 각국 정부에 제공할 계획이다. 이는 단지 보고서 한 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 지워진 존재를 다시 역사 속에 되살리는 작업이다.
인권은 결국, 존재할 수 없는 존재를 존재하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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