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8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거둔 결실
2025년 4월 3일, 제58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대한민국을 포함한 47개 이사국은 유럽연합(EU)과 호주가 공동 제출한 북한인권 결의안(A/HRC/58/L.2)을 표결 없이 컨센서스로 채택하였다. 특히, 이번 결의안은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여에 대한 우려를 새롭게 반영하였다. 북한이 4월 28일 매체를 통해 러시아 파병 사실을 공식 인정한 점은 국제사회의 선제적 문제 제기와 강력한 결의가 일정한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다.
북한인권 결의에 억류자 문제와 강제노동 문제에 관한 문구가 강화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오랜 기간 해당 의제에 집중해 온 북한인권시민연합 등의 NGO활동과 서울유엔인권사무소가 발간한 두 건의 주요 보고서가 결실을 맺은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유엔 인권 메커니즘과 연계된 이 같은 활동들은 국제적 이슈화 및 후속 조치 유도에 중대한 기여를 하고 있어 시민사회의 주목을 항상 받고 있다.
또한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 대응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23년부터 통일부가 매년 발간하고 있는 ‘북한인권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국제사회에 명확히 전달하고 있으며, 이번 결의 직후에는 국민의 힘 김기현 의원 등 10인이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 채택을 환영하고 이행을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을 발의하는 등 국내 정치 차원의 후속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 북한의 대응과 내부 인식
2024년 11월 15일,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무참사가 공개한 북한 외무성-재외공관 간 외교전문 12건에 따르면, 북한 해외공관은 김정은에게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논의 상황을 직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문건 중 일부는 2016년 북한이 인권결의안 표결 요구를 포기한 이유가 일부 국가들의 소극적인 태도와 외교적 압박 상황 때문이었음을 확인해 준다.
북한은 “적들의 끈질긴 정치경제적 압력, 회유책동으로 우리를 지지동정하던 발전도상나라들 적편으로 기울어지는 상황 조성, 일부 나라들 우리 입장에 공감 약속하고도 적편에 넘어간 관계로 우리와 마주 앉는 것 꺼려하면서 인권문제 아닌 다른 문제 토의에도 적극성 보이지 않고 있는 등 전반적 쌍무관계 발전에 부정적 영향 미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는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북한의 대외관계에 실질적 부담을 초래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2014년 COI 보고서 발간 직후 북한 당국이 발표한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 역시, 북한이 국제사회의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체 인권 입장’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전략을 채택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비록 그 내용이 비현실적이고 왜곡된 것이라 하더라도, 대응 자체가 국제적 압력의 효과를 반영한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를 의식하여 제정한 일련의 법령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법령명 | 제정연도 | 제정 배경 | 특징 |
구타행위방지법 | 2021 | 외부 압박 및 사회 내부 문제의식 반영 | 폭력 억제 법제화 시도, 실효성은 미지수 |
아동권리보장법 | 2014 | COI 보고서 후 국제사회 대응 차원 | 아동권 강조, 이행 부족 |
여성권리보장법 | 2010 | CEDAW 심의 비판 대응 | 여성 보호 명시, 실질 조치는 미흡 |
장애자보호법 | 2003 | 국제기구 협력 과정에서 이미지 개선 필요성 | 장애인 권리 명시, 차별 실태는 여전 |
긍정적 파급 효과의 기회
북한 사회 내부로의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나 관찰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로 2021년 11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789호로 제정된 「구타행위방지법」을 들 수 있다. 최근 들어 제정된 일련의 북한의 법령은 당국의 통치의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았는데, 구타행위방지법의 제정은 관행적 폭력에 대한 내부 문제의식과 국제사회의 시선이 반영된 종합적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법이 실질적으로 국가 기관의 폭력을 억제하는 목적으로 제정되었거나, 인권 보호를 실현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할 것이라 믿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보여주기식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추가적인 조사와 지속적인 질의를 통해 실효성을 검증하고 압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 법의 제정 자체가 주민 사회 내 인권 의식 향상과 사회적 교양의 단초가 될 가능성은 주목할 만하다. 북한 주민 다수가 과거에는 구타 등 국가폭력을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던 태도를 보였던 점을 고려하면, 외형적이더라도 법률상 구타를 금지하는 규범이 제정된 것만으로도 일정한 인식 전환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인권 차원의 법제화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노릴 하나의 기회가 된다. 추후 아동,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호 조항의 추가, 국가 기관의 구타, 고문 금지를 명시하는 방향으로 법제 개선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인권 침해 근절을 위한 계속된 질의
인권 침해에 관한 책임 규명은 세 가지 핵심 축을 기반으로 한다. 첫 번째는 책임성으로, 당국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두 번째, 답변 가능성, 즉 당국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 정당한 사유를 제시해야 하며, 마지막은 집행 가능성으로, 당국은 시정 및 구제 조치를 모니터링하고 제공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인권 결의의 채택과 이행 촉구는 단순한 상징적 의미를 넘어, 북한이 국제법상 부담하는 인권 보호 의무를 상기시키고 이를 외부적으로 점검하는 수단이 된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가입국인 북한은 국내법보다 상위의 국제법적 책임을 지니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지속적 질의는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도록 압박하는 수단이다.
실제 북한 당국은 국제사회의 지속적 질의와 비판에 대해 왜곡되고 제한적이나마 반응하고 있다. 우리의 질의가 계속되는 한 일정 수준의 대응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제적 감시 체계의 작동이 북한 내부 및 대외정책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사회와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압박이 국제적 감시망을 형성하는 반면, 이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정책 대응은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북한 사회 내외부에서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다각적 정책 운용 등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지속적, 구조적 접근이 긴 호흡 속에서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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