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서는 2020년부터 신년사가 사라졌다. 그 대신 연말 당 전원회의와 1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정책을 발표하고 예산을 편성하는 《김정은표 신년 정책행보》가 정착되었다. 올해도 지난해 12월 23일부터 27일까지 당 제8기 11차 전원회의, 1월 22일부터 23일까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2차 회의가 소집되어 각각 7개 의제를 다루고 폐막되었다.
이를 계기로 지난 2월 4일 세계 유수의 북한 문제 연구기관인 극동문제연구소가 ‘2024년 북한정세 평가 및 2025년 전망’ 제하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는데, 통상 연말연시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정세전망시리즈와 달리 북한의 2개 큰 정책회의가 끝난 이후여서 보다 실증적 의미가 있었다.
필자도 지난해 말 ‘2025년 북한을 보는 5가지 눈’(2024.12.23.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제목의 글을 기고한 바 있었는데, 오늘 다시 세미나에서 발제한 내용 가운데 핵심 화두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개괄
북한은 지난해 12월 당 전원회의와 올해 1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지난해 내외정세를 “자주세력권과 패권세력권과의 대결”, “적대세력들의 극악한 제재 책동과 전쟁 광증이 극도에 달하고 큰물(홍수) 피해까지 겹쳐 국가의 정상적 발전과 전진에 엄중한 장애가 조성된 해”로 규정하고 “인민대중제일주의, 강군 건설 위업을 구현한 해”로 평가하였다.
이어 ▲올해는 ①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 해방 및 당 창건 80주년, 9차 당대회 의의를 부각하면서 ②경제(지방발전)와 교육 사업 ③최강경 대미전략(세부 내용 미공개) 추진을 강조하였으며 ④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트럼프 제2기 행정부 출범(1.20) 이후 개최되어 주목을 받았던 최고인민회의는 김정은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국방력 강화, 외교 현안 같은 민감 이슈는 의제·연설로 다루지 않고 통상적인 사업총화와 계획추인 중심의 ‘후속 실무회의’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주요 계기와 변수
2025년은 ▲북한의 경제·국방 발전 5개년 계획 마지막 해이자 ▲김정은이 새롭게 주창한 ‘적대적 2국가론’과 ‘지방발전 20×10 정책’ 시행 2년차이고 ▲8·15 광복과 10·10 노동당 창설 80주년이며 ▲제1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해야 하는 해이며 ▲김정은 집권 후 세 번째로 개최하는 9차 당대회(2026.1 예정)를 준비해야 하는 의미 있는 해이다.
이와 함께 외부 변수로 ▲북한의 ‘러-우 전쟁 파병의 명암(明暗)’이 결정되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며 ▲‘러-우 전쟁 조기 종식’을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 제2기 행정부 대북정책 기조도 북한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즉 김정은이 트럼프와 기싸움을 거쳐 대화 재개에 호응할 경우, 북핵 문제를 넘어 정치·군사·경제 등 각 분야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남북관계는 북한의 ①‘적대적 2국가론’의 대한민국 무시·패싱 기조 ②러-우 전쟁 출혈 파병으로 인한 안보 공백 최소화 ③12·3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의 유동성으로 인한 관망 필요성 등으로 인해 큰 변수로 작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한 ▲간부들의 처벌·숙청에 대한 신변 불안감과 장마당·정보유통 통제 강화로 인한 주민 불만 증대도 고려해 볼 수 있으나, 이중삼중의 감시망과 고강도 처벌 장치로 인해 당분간 그 한계는 분명하다.

전망
2024년은 김정은에게 위기-결단의 해였다. 자칫 김정은 정권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도 있는 ‘적대적 2국가론’을 주창하고 선대 지우기, 러-우 전쟁 파병 등과 같은 위험한 승부수를 던졌다. 그렇지만 그럭저럭 버텨오고 있다.
이제 2025년은 젊은 독재자에게는 기회-성과의 해가 될 개연성이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김정은 체제 붕괴·김주애 후계자설과 같은 전망은 점(부분)을 선(맥락)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면(전체)으로 확대 해석한 결과일 뿐이다. 보다 객관적·종합적 진단을 통해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2025년도 북한의 3대 전략전술 방향은 ①‘적대적 2국가론’ 완전 정착 ②러-우 전쟁 파병 성과 거양 ③대미 탐색전 등으로 예상되며, 대한민국 정부는 당분간 무시, 패싱될 것이다. 즉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철회하거나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북핵 문제와 관련 비핵화로 입장을 전환할 가능성도 거의 제로라고 할 수 있다. 핵보유국 법제화, 김정은의 핵 능력 제고 지시,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중·러의 방파제 역할, 러-우 전쟁 파병, 화성-19형 대륙간탄도미사일(‘최종 완결판’ 주장) 발사, 특히 트럼프 제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는 말폭탄과 핵 도발 등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러·중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한 핵 능력 고도화, 러-우 전쟁 성과 확보 및 대미 협상 고지 우위 확보를 위한 기싸움(단, 트럼프와 불필요한 마찰은 회피) → 여건 충족 시 ‘적대적 2국가론’(Korea passing)에 기반을 둔 미·북 군축회담(small deal) 시나리오를 상정하면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 및 유엔사·주한미군 철수 등을 지속 요구해 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의 기대와 달리, 김정은의 최대 관심사는 대내 문제(한류와의 전쟁 및 사회주의에 기초한 정권 공고화)이며 남북 및 미북 대화 복귀는 여전히 후순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올해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10월 당 창건 80주년과 2026년 1월 9차 당대회는 과거 전례나 현재 정세로 볼 때 ‘내부 총동원 태세 구축의 모멘텀’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1월 27일 비서국 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이 “올해를 혁명적 당풍 확립의 해, 전당 강화의 해로 삼아 당내 부패와 규율 위반 행위에 대한 저격전, 추격전, 수색전, 소탕전을 전개해 나갈 것”을 지시한 가운데 온천군 당위원회와 우시군 농업감찰기관을 부정부패 혐의로 본보기 처벌(‘희생양’)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맺음말
이상을 종합해 볼 때, 북한은 《2025년 정비보강 분투의 해, 2026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설정하고 ①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②군의 정신 무장 강화를 통한 전쟁 수행 능력 증대 ③인민대중제일주의(애민지도자상) ④혁명적 기풍 확립을 통한 주민 총동원 정책 ⑤청년세대 사상교양에 박차를 가하면서 ⑥독자노선 정당성 선전 ⑦선대와의 차별화 ⑧김주애 등 로열패밀리 활동 부각 등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국방-경제의 2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빅 모멘텀’(big momentum)을 만들기 위해 9차 당대회를 당 창건 80주년과 결부시켜 조기 개최할 가능성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아무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김정은의 대외정책 전환은 ▲금명간 이뤄지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이며 ▲러-우 전쟁 휴전이 점차 임박해지고 ▲9차 당대회 빅 이벤트 준비를 본격화할 즈음부터 조심스럽게 모색해 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북한은 외형적으로는 국방력 강화, 경제 활성화, 푸틴과의 공조, 트럼프와의 기싸움 등에 주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김정은의 가장 근원적인 내적 고민거리는 《북한판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사회 저변의 도도한 의식변화 흐름》, 즉 개인주의 확산과 외부 정보에 대한 호기심 급증이다”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주민들이 집단보다 개인, 북한(수령)이 아닌 대한민국을 동경하게 되면 핵을 가지더라도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기 때문이다. ▲같은 민족임을 부정하고 ▲통일을 논의하는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 규정하여 ▲주민들로 하여금 대한민국(한류)을 아예 생각지도,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려는 ‘적대적 2국가론’이 그걸 증명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은 긴 호흡을 가지고 국제사회와의 유기적 협조하에 “대한민국이 북한 주민들과 늘 함께 있으며, 자유평화통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점을 북한·국내·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알려 나가면서, 북한 사회 저변에 외부 세계 정보와 인권의 소중함을 전파하는 활동(‘밑으로부터의 변화 유도’)을 한시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