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 도박을 실패로만 속단(速斷)해서는 안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월 1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1일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무력훈련기지를 현지 시찰하고 전투원들의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김 총비서가 감시대에 올라 훈련강령에 따라 전투원들이 진행하고 있는 대상물 정찰 및 습격 전투 훈련을 봤다”고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이 올해 들어 연이어 무리수를 두더니 결국에는 젊은 피를 제물로 한 악마의 베팅(betting) 도박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선대의 민족과 통일 노선을 부정하는 ‘적대적 2개국가론’을 시발점으로 반인륜적·비정상적 대남 오물풍선 테러, 평양 김정은 집무실 상공 침투 무인기 전단살포 사건 조작 등을 자행하더니, 급기야 러-우 전쟁에 젊은 군인들을 총알받이로 팔아먹는 ‘파병 결정’까지 내렸다.

혹자는 김정은의 파병을 60년대 말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월남전 파병과 비교하며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평가까지 하는데,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루비콘(드니프로)강에 빠졌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듯하다. 김정은이 개발독재-근대화 성공 신화의 대명사인 박 대통령을 벤치마킹하려 할 수는 있겠지만 추구하는 가치, 리더십, 환경 등 모든 것이 하늘-땅처럼 차이가 난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100% 다르다.

따라서 정부를 비롯한 우리 국민 모두가 김정은의 반평화· 반인륜적 행동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명심해야 한다. 김정은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결단했을 리 없고, 이미 주사위가 던져진 이상에 “전쟁은 옳고 그름을 떠나 능력(전략전술)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라는 점이다.

파견 배경

박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안보, 경제발전 등과 같은 가치 구현과 국익 창출을 위해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국민들과 국제사회의 동의하에 당당하게 파병하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국가 또는 가족이 아닌 자기(自己) 잇속을 채우기 위해, 국제사회의 왕따로 전락한 푸틴과의 야합(夜合)으로, 북한 주민과 세계를 기만하며 몰래 군대를 보내는 용병(傭兵) 거래를 하고 있다. 파병을 요청한 미국과 러시아의 국력이 상대가 되지 않는 점도 큰 차이다. 보도에 따르면 베트남전 참전 당시 미국의 GDP는 전 세계 GDP의 40% 수준에 달했으며, 러시아 GDP는 2023년 기준 1.5%에 불과하다고 한다.

김정은이 국제사회 규탄과 제재 강화가 불을 보듯 뻔한 파병을 결정한 것은 푸틴과 이해관계(needs)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①먼저 파병의 모태(母胎)가 된 것은 지난 6월 체결한 이른바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제4조의 “무력 침공을 받은 경우 상호 군사원조를 제공한다”는 규정이다. ②다음으로는 푸틴의 절박함이 제1 동인(動因)이라고 할 수 있다. 푸틴은 전쟁이 어느덧 2년 10개월이 지나고 있고 미국 대선 이후 휴전회담이 예상되는 국면에서 북한의 도움을 받아 승기(勝機)를 빠르게 잡고 싶기 때문이다. ③한편 김정은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집권 이후 올인하고 있는 핵·미사일 노선을 변경하지 않는 한 대북제재가 풀릴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적대적 2개국가론’의 조기 정착을 통한 정권 공고화를 위해서는 모험적 베팅(betting)이 필요했던 것이다.

김정은 체제에 미치는 영향

김정은의 파병이 체제에 미치는 영향은 긍·부정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먼저 긍정적인 면으로는 첫째, 북-러 관계가 한미동맹처럼 피를 나눈 혈맹 수준으로 발전하여 체제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경제제재로 외화난에 시달려온 김정은이 통치자금을 챙길 수 있는 기회의 창(窓)이다. 1만 2000명을 파병한 대가는 연간 약 7200억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파병 규모가 3~10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셋째, 북한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찰위성·핵추진잠수함 등 최첨단 무기 기술 전수로 핵·미사일 능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넷째, 탱크·전투기를 비롯 노후화된 재래식 전력의 현대화도 빼놓을 수 없다. 다섯째, 6·25전쟁 이후 실전경험을 쌓지 못한 군이 현대 정규전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도 큰 보상이다. 여섯째,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북-중 교역액의 경우 27억 2110만달러로 전체 교역규모의 98.3% 수준)를 감소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파병 결정은 명분이 없다. 당당하지 못하다. 오죽하면 북한군이 러시아 군복을 입고, 러시아제 총과 신분증을 지니고 싸우는 계획을 수립했을까? 야합, 돈을 노린 용병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다. 예상되는 주요 문제점으로는 첫째, 대북 제재가 강화되어 내핍을 더욱 강요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여 체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러-우 전쟁은 베트남전 같은 게릴라전이 아니라 최첨단 무기가 동원되는 정규전이라서 하루 평균 1400명 이상의 러시아군이 사망하고 있는데, 북한군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셋째, 전장에서의 대규모 탈영 또는 포로가 발생할 경우 북한 체제의 참상이 외부에 알려지고 궁극적으로는 북한 내로 소식이 유입됨으로써 김정은 체제의 불안을 증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넷째, 좀 더 장기적으로는 만약 러시아가 패전할 경우 북한도 공동교전국으로서 ‘전쟁 피해 보상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헤쳐나오기 어려운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갈 가능성이 크다.

맺음말

김정은의 러시아 파병은 일종의 승부수다. 그리고 6월 북-러 조약 체결 후 김정은의 연이은 특수부대 훈련 시찰, 러시아 측과의 다양한 채널에서의 협력 등 나름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행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정부는 일부 민간의 평가처럼 김정은의 리더십과 북한의 저의·능력에 대해 과소평가만 해서는 안된다. 실패는 물론이고 성공(‘푸틴이 원하는 쿠르스크지역 속전속결식 탈환’)까지의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비해 나가야 한다.

또한 러-우 전쟁터는 각국의 복잡한 셈법이 교차하는 무한 국익 경쟁의 장(場)이다. 일각의 우려대로 강경일변도로 접근하거나 남북한 대리전 형태로 발전되게 해서는 안된다. 냉철한 판단에 기초해 당장의 국익은 물론이고 전후(戰後) 한반도 평화, 동북아 및 국제질서까지 고려한 능동적·복합적 대처가 요구된다.

북-러 관계가 혈맹 수준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 틀이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여나 김정은의 도박이 성공으로 연결될 때는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북한의 핵·재래식 전력 증강과 실전경험 축적은 고스란히 우리 안보의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북한 내 급변사태 또는 한반도 내 국지전이 발생할 경우, 러시아가 개입할 명분이 생겼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21세기는 무한속도의 변화, 국익 경쟁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을 비롯 상당수 인사들은 40여 년 전 사고틀에 여전히 갇혀 혹세무민(惑世誣民) 선동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국가안보 앞에서는 이념과 진영이 있어선 안 되는데 말이다. 한반도 평화, 통일한국의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라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며 글을 맺는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본 정론은 필자가 <한선브리프>에 기고한 ‘북한군 러시아 파병이 김정은 체제에 미치는 영향’(2024.10.31)을 기초로 내용을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