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0월 7일 최고인민회의(우리의 국회 격)를 개최한다. 이번 회의는 헌법 수정을 통한 영토규정 삽입이 예고되어 있어 내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바, 김정은이 올해 초 선포한 《적대적 2개국가론》의 틀을 9개월여 만에 갖추고 전방위적인 공세를 취해 나가는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북한의 10월 최고인민회의 소집이 갖는 함의’ 글(2024.9.18자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을 통해 “북한이 동 회의를 계기로 ▲대내적으로는 그간 미뤄오던 《적대적 2개국가론》에 대한 선전·교양 활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총동원태세 구축’) ▲대남 면에서는 오물풍선 테러 또는 접경지역 도발을 통해 국론분열을 획책하고(‘전쟁이냐 평화냐의 인지전’) ▲대외적으로는 다양한 핵·미사일 도발 카드(‘대미 압박’)를 총동원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 바 있는데,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다시 한번 김정은 행보를 체크해 볼까 한다.
주요 변수
김정은의 향후 행보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는 크게 체제 운영 목표, 정책 우선순위, 대내외 주요 정치적 계기 등을 꼽을 수 있다.
①체제 목표
북한의 당규약, 김정은 최근 어록 등을 종합해 보면, 김정은의 당면목표는 ▲김씨 일가 영구집권 기반 확보 ▲사회주의 강국 건설이며, 최종목표는 ▲핵을 기반으로 한 한반도 무력 평정-공산주의 사회 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김정은이 《적대적 2개국가론》을 통해 민족을 부정하고 통일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은 “북한이 한류 차단 실패 등 곤궁 국면으로 인해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연방제 포함)을 내려놓은 것이지, 무력적화(평정·편입)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의 핵을 기반으로 한 전(全) 한반도 공산화 목표는 더욱더 노골화되었다.
“주권행사 령역(영역)을 합법적으로 정확히 규정짓기 위한 법률적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반도(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령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2024.1.15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연설)
“핵무기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데 대한…공화국의 핵역량과 이를 국가의 안전권을 보장하는 데 임의의 시각에 옳게 사용할 수 있는 태세를 철저히 완비해야 한다.”(2024.9.9 김정은 정권수립일 연설)
②정책 우선순위
북한의 정책 우선순위는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특히 올해 초 《적대적 2개국가론》 선포 이후 대내>대외>대남 순으로 고착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과거 대한민국 패싱(korea passing) 수준을 넘어 아예 ‘제1주적이자 교전국’ 관계로 급전직하(急轉直下) 되었다.
김정은의 최우선적 관심사는 내부 문제, 즉 자신의 정권 기반 공고화이다. 따라서 권력층 완전 장악, 경제·국방발전 5개년(2021~2025) 계획 수행, 경제난 그럭저럭 버티기, 한류 차단 등이 핵심 목표가 될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은 지난 9월 9일 정권수립일에 “핵능력 강화, 지방발전 총력 경주, 간부와 당원 역할 배가”를 강조하는 연설을 하였다.
대외-대남 이슈는 모두 정권 공고화에 종속되는 것이다. 대외문제는 내부 체제 결속과 한반도 공산화 최종목표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기회의 창(窓) 역할을 수행하며, 대남문제는 주민 대적의식 고취에 적의 활용하면서 대한민국 내 친북·반미정권 수립 유도 공작(工作)의 측면에서 접근할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당분간 러시아와의 전방위적 협력 강화에 가장 큰 주안점을 두고 중국과의 전통적 협력 유지·발전, 한미일 3각 공조 균열, 300억불에 달하는 식민배상금 획득을 위한 일본과의 접촉 등을 모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대한민국 정부는 완전 무시하고 미국과도 서두르지 않으면서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을 위한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③주요 정치적 계기
최고인민회의가 폐막되면 곧바로 당 창건 기념일(10.10)이다. 그리고 한해 과업을 마무리하고 새해 계획을 수립하는 시기로 접어든다. 김정은 치적 선전과 총동원태세 확립 촉구의 최적기이다.
한편 10월 중순부터는 북한이 오물풍선 테러를 하기에 좋은 북서풍이 한반도에 상시적으로 부는 계절이 시작된다. 게다가 미국 대선(11.5)이 예정되어 있고, 2025년이 되면 김정은의 선대 부정-홀로서기 노선이 공식화된 이래 최초로 김정은 생일(1.8)을 맞게 되고 1월 미국 신행정부 출범, 8월 광복 80주년, 10월 노동당 창건 80주년, 12월 경제·국방발전 5개년 계획 종료, 2026년 1월 9차 당대회와 같은 굵직한 정치 일정이 계속 이어진다.
예상 시나리오
김정은은 미중 패권전쟁, 신(新)안보위기, 러-우 전쟁 등의 구조적 환경이 금명간 변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속에서 《적대적 2개국가론》과 《진영외교》의 기조하에서 내부통제 강화, 남남갈등 유도, 대미압박 등 정세 조작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정찰위성·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7차 핵실험, 전방위적인 오물풍선 테러, NLL 인근 군사 충돌과 같은 강경카드의 활용도 고려할 것이다.
최근 북한이 김여정(9.24)과 국방성 부상(10.1)을 내세워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 전개를 문제 삼으며 본토 공격을 위협하는 것도 그들의 전략전술적 셈법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여론전, 특히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7차 핵심험 등을 최고인민회의 또는 미국 대선을 전후로 실시하려는 명분 축적용(build-up)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부산항에 나타난 이상물체 미국의 전략자산들은 조선반도 지역에서 자기의 안식처를 찾지 못할 것이다…바로 국가의 안전이 미국의 핵위협공갈에 상시적으로 로출(노출)되여 있기에 외부로부터의 각이한 위협에 대응하고 견제하기 위한 우리의 핵전쟁억제력은 질량적으로, 지속적으로 그리고 한계없이 강화되여야만 하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자산들은 조선반도 지역에서 자기의 안식처를 찾지 못할 것이다…미국이라는 나라는 결코 《안전의 대명사》가 아니다.”(2024.9.24 김여정 당 부부장 담화)
좀 더 장기적으로는 김정은 4기 체제가 출범하는 2026년 1월 9차 당대회(2025.10 당 창건일 즈음에 조기 소집할 가능성도 있음)를 김정은 홀로서기 및 핵보유국 위상 완전 고착화를 위한 중요 분기점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미중 패권 경쟁에서의 중국의 운신 폭 변화, 러-우 전쟁 지속 기간 등과 같은 국제환경 변화에도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맺음말
결론적으로, 향후 북한은 ▲러시아, 중국을 뒷배로 삼고 ▲헌법 수정을 통해 새 국경선을 발표한 이후 ▲말폭탄과 다양한 온-오프라인 도발을 통해 대한민국 내부에 ‘전쟁이냐 평화냐’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2개국가론’을 체제결속을 비롯한 대내외 정책노선 전반에 투영해 나가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김정은의 눈은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2025년 10월 당 창건 80주년, 2026년 1월 9차 당대회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임기 3년 차를 시작한 윤석열 정부는 수세적으로 발등의 불만 끄려 해서는 안 된다. 그간 담대한 구상, 워싱턴선언, 8·15 통일독트린(필자는 ‘윤석열정부 안보통일 3축구상’으로 명명)을 발표함으로써 큰 틀의 구상은 완결지었다. 이제부터는 선제적-실천적-입체적 행동이 중요할 때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와 다양한 시나리오·액션을 속도감 있게 협의하며 북한 변화 및 남북관계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
이런 면에서 10월 7일 북한 최고인민회의를 전후로 한 선제적인 대처는 물론이고 미중관계 양상, 러-우전쟁 향배, 미국과 일본의 정치 지형 변화 등을 고려한 큰 그림도 함께 준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다가올 2025년은 김정은-윤석열 대계(大計)의 수준과 실천력에 따라 정권은 물론 한반도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위 정론은 필자가 2024년 9월 27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NK포럼 ‘김정은 실정 평가와 북한제체 변화 전망’에서 발표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여 보완, 작성한 것입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