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北 주민들의 참혹한 현실은 누가 책임지나?

그저 눈물이 났습니다. 원통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나라를 홀로 다니며 조국의 분단이 너무도 절절히 가슴에 사무쳤던 날들로 채워졌었지요. 중국에서 인신매매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산다며 울부짖는 탈북 여성들을 만났을 때도, 러시아에서 충성의 외화벌이라는 이름으로 시베리아 벌판 매서운 눈보라 속에 목숨 걸고 일하는 해외파견 북한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도, 현지에서 마주한 분단의 상처들은 갈기갈기 가슴을 찢는 원한이었으며 아픔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베트남 호이안에서, 세계 각국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이 찾는 곳이자 한국 관광객의 성지가 되어버렸다는 이곳에서 다시 한번 절절히 마음을 찢습니다. 해외 출장 중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과 시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조명이 어우러져 너무도 분위기 좋은 어느 강변 카페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기타와 피아노 선율에 왈칵 눈물을 쏟은 건 생뚱맞게도 너무나 분통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이라는 생활 속에서 따스한 음악과 잠시간의 여유가 이토록 감동을 주는 시간이거늘, 오늘도 저 북녘의 청춘들은 수해복구 현장에 동원되어 청춘을 유린당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말입니다.

신의주 수해복구 현장에 내걸린 빨간색 선전 구호판에는 ‘절대복종 절대충성’, ‘당이 부르면 우리는 한다’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수해복구 현장에 30만 명의 청년들이 탄원했다며 선전을 늘어놓았지요. 김정은은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의 진출식에 직접 참여해 이들을 사지로 내몰았지요.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 수해복구 현장에 내걸린 ‘절대복종’이라는 선전구호가 눈에 띈다. /사진=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콰이쇼우(快手) 화면캡처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요? 북녘의 주민들은 대체 무슨 잘못이 있기에 노예처럼 한 생을 살아야 한단 말인지요? 중국에서 촬영한 영상이 SNS에 공개되면서, 생지옥과 같은 처참한 상황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혹자는 그 모습을 보고 이집트 피라미드를 쌓던 노예보다 못한 삶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그런데도 통일을 하지 말고 두 국가로 살며 평화를 만들어가자 주장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저 같은 조국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서글퍼집니다. 저 북녘의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그저 평화를 외치는 이들이 누구입니까? 김정은이 두 개의 국가를 말하자마자 지령이라도 받은 듯 한목소리를 내는 그들이 한 국가의 통일부 장관이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이들이라는 사실이 더욱 참담하기만 합니다.

지금 잠시 카페에 앉아 누리는 이 호사마저도 저 북녘의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할 뿐인데 어찌해야 합니까? 카페의 피아노 연주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진정으로 즐기며 다른 이에게 감동을 주고, 관광으로 이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은 모두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아름다운 선율에 웃음 짓습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는지요.

지금 제가 발 딛고 선 곳은 베트남 호이안 안방 해변입니다. 바로 월남전 당시 청룡부대가 처음으로 상륙한 곳이자 주둔지를 마련했던 장소이지요. 베트남전쟁 당시 우리의 아버지들이 목숨 걸고 싸웠던 바로 그 호이안에서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또렷이 되새겨봅니다. 베트남은 끝내 자유를 지키지 못하고 공산화되었지요.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대통령의 비서실장과 신망받던 도지사도 간첩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들이 대중을 선도한 건 다름 아닌 평화 담론이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공산화된 베트남의 역사를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통일하지 말고 평화롭게 지내자는 ‘두 국가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분명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이적행위를 일삼는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해야 할 것입니다. 진짜 적은 내부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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