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하고 호상 신고하면 감면” 회유책이 빚어낸 소동

[북한 비화] 자수한 친구로부터 신고당한 여대생 감방에서 혀 깨물어…주민들 "오죽 답답했으면"

북한 주민들이 외부 콘텐츠를 시청할 때 주로 사용하는 기기. 왼쪽부터 노트텔, 타치폰(스마트폰), mp4. /사진=데일리NK

2023년 2월 초 황해남도 해주시 안전부 예심과 어두컴컴한 감방의 철창살 너머로 두 손이 족쇄에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한 여학생. 그는 해주교원대학에 재학 중인 정임(가명)이었다.

정임은 ‘자수하고 호상(상호) 신고하면 참작해 죄를 묻지 않겠다’는 북한 사법당국의 회유책에 넘어간 한 친구의 신고로 안전부에 붙잡혀 왔다.

북한 사법당국은 주민들의 외부 영상물 시청·유포 행위가 날로 증가하자 대대적인 단속과 강도 높은 처벌로 공포심을 조장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일단 죄를 자수하고 함께 죄를 저지른 이를 신고하면 죄를 면해주겠다는 회유책을 내놓기도 했다. 단속·처벌을 두려워하는 주민들의 심리를 이용한 교묘한 신고 유발 수법이었던 것이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있던 정임은 방과 후 춤, 노래 가정교사로 일하며 돈을 벌어 생활비는 물론 대학에서 내라는 돈도 모두 충당하고 있었다. 손풍금(아코디언)과 무용, 성악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소문나 10집 중 7집의 학부모들이 정임을 사교육 선생으로 둘 정도였다.

그러던 찰나 대학에서 ‘외국 영상물을 시청하거나 유입·유포한 학생들은 법 기관에 조용히 자수하면 100% 용서해준다. 유효기간은 한 달이다’라는 포치가 내려졌다. 이에 여러 학생이 자수에 나섰고 그중에는 정임의 친구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 노래와 춤이 담긴 영상물을 봤다고 자수한 정임의 친구는 호상 신고하라는 윽박질에 정임의 이름을 댔고, 정임은 그렇게 자수한 친구로부터 신고당해 안전부에 끌려가 곤욕을 치르고 있던 것이었다.

특히 친구는 정임을 신고하면서 ‘해주시 춤, 노래 가정교사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바로 정임이며, 그 비결은 남조선(남한) 영상물을 수시로 시청하고 그를 바탕으로 실력을 키우기 때문이다. 나와는 두 차례 남조선 영상물을 함께 봤지만, 정임은 수시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진술했는데, 바로 이것이 화근이었다.

안전부에 붙잡혀 온 정임은 ‘친구와 함께 남조선 영상물을 두 번 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시로 본 것도 아니며 그것으로 실력을 키운 것도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안전부 예심원들은 정임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연속으로 닷새간 물 한 모금, 강냉이(옥수수) 한 알 주지 않고 감방 철창살에 두 손을 수갑으로 걸어 벌을 세우고 죄를 인정하라며 다그쳤다.

답답함과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정임은 모두가 잠든 야심한 새벽 감방 안에서 스스로 혀를 깨물었다. 실신한 정임을 뒤늦게 발견한 계호원들이 황급히 그를 병원으로 이송했고, 이 일로 해주시 안전부에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정임은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다. 왜 그랬는지 묻는 안전부 예심원에게 정임은 ‘사람을 잡아놓고 진실을 말해도 말을 안 믿어주니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랬다’고 종이에 적어 보였다.

정임의 사연을 알게 된 병원 직원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정임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해주시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느냐’며 동정을 표했다. 또 몇몇 주민들은 ‘단속·처벌에만 눈이 멀어 호상 신고하게 하고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하라 윽박지르는 게 문제’라고 꼬집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