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물 더 가져가려는 軍, 안 뺏기려는 농민…갈등 격화

수분함량 두고 실랑이 벌이다 싸움 나기도…농민들 "뼈 빠지게 농사지어 군에 헌납했더니..."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서해곡창 황해남도의 농장들에서도 알곡 생산 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한 자랑을 안고 결산분배가 연이어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 매체들이 연일 올해 농사 성과를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군(軍) 후방총국 산하 기관이 군 비축용 곡물을 확보하기 위해 농장원들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군민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데일리NK 평안북도 소식통은 “강냉이(옥수수) 수확이 종료되면서 군에서 강냉이 인수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 농장에서 최근 강냉이의 질을 놓고 5.14 기지 관계자와 농장 간부들 간 몸싸움까지 벌어졌다”고 전했다.

군 후방총국 산하에 있는 5.14 기지는 도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업 생산물에 대한 군수동원계획량을 수매하는 일을 한다.

문제의 발단은 농장에서 생산된 옥수수의 수분함량에 관한 시비였다. 농장원들은 수분함량을 어떻게든 적게 표기하려 하고 5.14 기지 관계자들은 수분함량을 높여 곡물을 더 챙겨가려하다가 격한 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됐다는 것이다.

곡물을 수매하는 기관들은 수분측정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벼나 옥수수의 수분함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측정하는데, 수분이 기준치 이상일 경우 곡물을 더 요구한다. 그래서 수분함량을 측정할 때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이 농장에서도 옥수수 수분함량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지던 중에 5.14 기지 관계자가 먼저 농장원에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큰 싸움으로 번졌다는 전언이다.

특히 농장 부경리가 심하게 다쳐 병원에 실려 가는 일까지 발생했고, 이를 목격한 농장원들은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 군에 헌납했더니 부모같이 나이 많은 사람을 때렸다”며 공분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평안북도의 또 다른 소식통도 “무장한 군인들이 군량미 수매를 위해 농장에 나와 있으면서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어 농장원들의 불만이 크다”고 했다.

예년에도 군량미를 우선 수매해가려는 군인들이 밤낮으로 농장을 지키곤 했지만, 올해는 실탄까지 발사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농장원들의 접근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는 게 이 소식통의 이야기다.

앞서 본보는 수확철이 시작되면서 무기를 소지한 군인들이 농장 주변을 지키고 있고, 농장 관계자라 할지라도 근무 시간이 끝난 이후에 농장에 접근하는 경우 실탄을 발사하라는 지시까지 하달된 상태라고 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수확철 쌀 새어 나갈라…군인들 보초 세우고 실탄 사격 명령)

그러면서 소식통은 “원래대로라면 전체 생산물의 30%만 국가에 수매하면 되는데 ‘수분이 많다’, ‘돌이 많다’고 들이대며 더 내라고 소리를 지르니 결국은 농장원들에게 남는 게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군 관련 기관이나 군인들이 농장을 거의 점령하다시피 하면서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곡물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가려고 하니 농장원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 올해 북한의 벼농사 작황이 작년보다는 좋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다만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식량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은 아닌 데다 국가 의무 수매와 군량미 납부 등을 거치면 실제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양도 거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북한 농업 분야 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작년과 비교할 때 쌀 작황이 좋다는 것이지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할 수준은 아닐 것”이라며 “주민들이 체감할 정도로 식생활이 개선되려면 여전히 많은 수입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