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에서 다수의 탈북민이 강제북송돼 현재 북한 국경 지역 보위부 집결소에 구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이곳 보위부 집결소에서는 강제북송된 탈북민들의 탈북 경위, 중국에서의 행적, 한국행 기도 여부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는데, 그 과정에서 탈북민들은 폭행, 고문, 성추행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는다.
본보는 중국에서 강제북송돼 온성과 신의주의 보위부 집결소에 구류된 경험이 있는 탈북민 이영주 씨를 지난 20일 서울 모처에서 직접 만났다. 그를 통해 강제북송된 탈북민들이 현재 얼마나 끔찍한 인권 유린 상황에 처해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두 번의 북송과 세 번의 탈북 과정을 담은 <김정은도 꼭 알아야 할 진짜 북한의 속살>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한 이 씨. 그는 1997년 3월 첫 탈북 후 중국인 남편을 만나 딸을 낳고 살던 중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언제 북송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한국행을 시도했다. 그러다 내몽골에서 중국 변방대에 붙잡혀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에 있는 국제변방관리소에 수감됐다.
이후 2006년 9월 이 씨는 중국에서 강제북송돼 온성 보위부 집결소 구류장에 보름간 구금됐다. 다행히 단순 경제범으로 분류돼 사회안전성 산하 온성군 단련대에서 노동단련처벌을 받고 풀려났다.
그는 딸과 남편을 만나기 위해 2006년 11월 두 번째 탈북에 나서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중국에서 또다시 한국에 가기 위해 다른 탈북민들과 모처에서 생활하다가 누군가의 밀고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이듬해 3월 랴오닝(療寧)성 단둥(丹東) 변방대에 구류돼 있다 북송된 이 씨는 신의주 보위부 집결소 구류장에 40일간 구금됐다. 이후 단련대에서 형을 마친 후 거주지로 이송되는 길에 탈북을 기도했다가 자수해 함경북도 회령시 전거리 교화소에서 3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 11월 세 번째 탈북 이후 비로소 한국에 입국(2011년 7월)할 수 있었다.
아래는 이 씨와의 인터뷰.
–최근 강제북송된 탈북민들이 온성과 신의주 보위부 집결소에 구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곳에 모두 구금돼 있었던 경험이 있는데, 보위부 집결소는 어떤 곳이었나?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열악하고 인권이 전혀 보호되지 않는 곳이었다. 사람이 짐승 취급을 받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좁은 감방에 콩나물시루 같이 빽빽하게 사람을 가둬두는데 다른 사람들과 다리를 겹쳐서 앉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하루 종일 있어야 했다. 밤에도 누워서 잘 수 없었다. 감방마다 변소칸이 있는데 똥 묻는 쥐가 왔다 갔다 할 만큼 위생이라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곳이다.
식사도 껍질이 반은 섞여 있는 강냉이밥에 된장만 푼 된장국이 나오는데 그 자체로도 까슬까슬해서 씹어 넘길 수 없었다. 게다가 북한 내부에서 재생 비닐로 만든 플라스틱 그릇에 밥이 나오는데 조금만 더운 밥이나 국이 나와도 고약한 비닐 냄새 때문에 밥 먹기가 힘들었다.
씻지도 못하고 많은 사람이 모여있다 보니 벼룩, 빈대, 이가 너무 많았다. 밥을 먹다가 피 비린 맛이 나면 벼룩이 밥에 들어갔나보다 생각할 정도였다. 또 여성으로서 가장 힘든 것은 생리대는 물론 휴지도 없기 때문에 얇은 천 한장을 대고 있다가 아침에 물로 빨아서 말리지도 못하고 젖은 천을 다시 대야 하는 것이었다.”
–보위부 집결소에는 여성 계호원이나 지도원이 거의 없다고 들었다. 당시 온성, 신의주 보위부 집결소에 여성 지도원이 있었나?
“온성 보위부에는 여성 지도원이 한 명도 없었고 신의주에는 여성 군의가 한 명 있었다. 온성 보위부 집결소에서 남성 지도원이 몸에 숨겨둔 돈을 찾는다고 여성 수감자들 옷을 벗겨놓고 뜀뛰기를 하게 시켰다. 그렇게 하면 자궁에 숨겨둔 돈이 나온다는 거다. 대변을 볼 때도 남자 계호 앞에서 볼일을 봐야 했다. 신의주 보위부 집결소에 있을 때는 여자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40대 여성 군의가 돈이나 귀금속을 숨겨두지 않았는지 자궁에 손을 집어넣어 검사했다. ”
-보위부 집결소에서는 어떤 식으로 조사를 받았나?
“처음 한 3일 동안은 조사를 하지 않고 감방에서 기다리게 한다. 앞으로 닥칠 일에 두려워 떨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한 사람씩 조사실로 불러 왜 중국에 갔는지, 어떤 브로커를 통해 갔는지,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하나하나 묻는다. 중요한 것은 한국에 가려고 했는지다. 한국에 가려고 한 것이 확인되면 다시는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진다. 나와 함께 있던 많은 사람들이 요덕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래서 절대 한국으로 가려 했다는 점을 들켜서는 안 된다. 함께 한국에 가려다 잡힌 사람들과 입을 맞추면 좋은데 잡힐 거라고 생각 못 하고 대비도 안 했으니 입을 맞추기가 어렵다. 질문을 하면 1초 만에 대답해야 하는데 답을 못하면 각목으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때리기도 했다. 조사를 받고 나오면 시체처럼 질질 끌려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인터뷰②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