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잡이 과제로 촉발된 학생들의 집단 ‘등교 거부’ 사태

[북한 비화] 과제 수행 순대로 자리 앉힌 교원, 경쟁 부추기고 망신 줬단 이유로 신소 당해

북한 양강도 혜산시 앞 압록강에서 여름철 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사진=데일리NK

지난해 8월 31일 북한 평안북도 대관군의 어느 한 소학교(우리의 초등학교)에서 교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교무실에 긴급히 모여들었다.

개학 전 예비등교 날인 이날 소학교 2학년 한 개 학급 7~8명 남학생들이 집단으로 등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교장은 예비등교 모임이 끝난 후 교원 전체를 교무실로 모이게 한 뒤 사건이 발생한 학급의 담임 교원을 앞에 내세워 상황 설명을 하게 했다.

교무실 중앙에 선 담임 교원은 남학생 여러 명이 예비등교 날에 집단으로 등교하지 않아 각 가정에 연락을 취했다고 설명하고는 자신은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걸려 온 전화를 받은 교장은 대꾸 없이 듣기만 하다 이내 수화기를 내려놨다.

이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랬다.

해당 담임 교원은 여름방학에 앞서 학급 학생들에게 거리와 마을의 위생방역사업을 진행한다는 명목으로 구더기를 잡아다 공병에 넣어오라는 과제를 주고 방학 도중 중간 검열을 진행했다.

담임 교원은 당시 과제를 잘한 순으로 1등부터 24등까지 등수를 매겨 순서대로 자리에 앉혔는데, 뒤 등수에 속한 한 학생이 군(郡) 검찰소에 있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해 군 인민위원회 교육과에 신소를 넣었고, 이 학생을 필두로 같은 불만을 품은 남학생 여러 명이 등교를 거부한 것이었다.

군 인민위원회 측은 이 같은 신소 내용을 교장에게 알리면서 아이들끼리 서로 경쟁을 붙이고 노골적으로 망신을 주는 행위를 한 해당 교원에게 학급을 맡기지 말고 군 인민위원회 교육과에서 비판서를 쓰고 3개월간 교원 재강습을 받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과제 수행 순으로 자리 배치를 해 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 일로 해당 학급의 담임 교원은 즉시 교체됐으나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2학기 개학 후에도 7~8명의 남학생들의 불만은 계속됐고 이에 학교 측은 ‘어려서부터 집단으로 항거하는 나쁜 것부터 배웠다’며 소년단실에서 비판서를 쓰게 하고 며칠간 혼을 내기도 했다.

그러자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원인이 학교에 있는 것 아니냐’며 평안북도 인민위원회 교육부에 집단으로 신소를 넣었다.

이후 도 교육부는 ‘구더기잡이 과제는 소학교 학생들에게만 내려지는 여름방학 과제로 문제 없으나 과제 수행 순으로 아이들의 자리를 배치한 것, 잘 타이르고 교양할 대신 무작정 혼내거나 비판서를 쓰게 한 일은 학교 측의 잘못이니 사과하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로써 2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벌어진 한바탕 소동은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