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칼럼] 북한과 일본의 속셈이 불편한 이유

지난 5월 21일 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일 정상회담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환담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

최근 일본에서는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향한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말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납북자 문제 해결을 내세운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비치자 이틀 만에 북한 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호의적 반응을 내놓았다. 그 이후, 마치 급물살이라도 타듯 상호 물밑 접촉을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며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남한에서는 다소 난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태에서 북일 대화나 관계 발전이 한국에는 긍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쏘아 올린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자 일본 열도에는 대피령이 내려지고 열차 운행까지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본은 자국 안보와 군사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명분이 커지는 상황이 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윤 대통령의 방일과 일본 총리의 방한 등 한일 간 셔틀외교의 복원은 그동안 무거웠던 한일관계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고, 한미일은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도발에 대해 연합 군사훈련으로 대응하고 있다.

북일 관계는 김일성이 이미 북한 정권 수립의 정당성을 항일운동과 독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이상 김정은 시대에 그의 취향대로 결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일본은 최근까지 대북 제재는 물론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강경한 태도로 한미일 연합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북한과 일본의 새로운 관계 형성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은 대북정책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미스터리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번 기시다 일본 총리의‘전제조건 없는 (북일)정상회담’제안이 반드시 납북자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점이 남는다. 이러한 의문은 그동안 일본이 취해왔던 대북정책과 흐름을 다시 짚어본다면 궁금증이 다소 해소될 수도 있다.

일본은 그동안 10여 차례 북일 국교 정상화를 시도해왔다. 대부분은 일본인 납북에 대한 인도주의적 문제해결을 전면에 내세웠다. 실제로 2002년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총리로는 최초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평양 선언에 합의했고, 2004년에는 납치피해자 5명과 동반 귀국함으로써 북일 관계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과거 일본은 지금과 같이 자주적인 외교를 통해 북한을 대할 수가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전쟁에 대한 책임에 따른 대미추종정책 때문에 북한에 대한 외교정책은 경제 중심으로, 정경분리 원칙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일본은 한반도의 긴장도나 한국의 대북정책에 보조를 맞춰 입장을 정리하고 정책에 반영해왔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와 함께 맺은 한일기본조약에‘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한다’고 명시한 것은 북한을 표면적으로 부정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실례로 1983년 아웅산 폭파사건,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본은 즉각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한편 1994년 10월에는 제네바(Geneva) 합의를 계기로 북한과 일본 간 관계 개선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쌀 50만 톤에 대한 대북지원과 함께 수교 회담 재개에 합의했다. 그러나 1995년 10월 제3차 남북회담이 결렬되고 한국 정부가 1995년 11월에 ‘북·일수교 3원칙’을 내놓자 일본 정부가 강경 입장으로 전환하며, 대북 창구를 한국 정부로 일원화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 일본의 대북정책과 원칙이 남북관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이 대북정책에서 실리를 추구해온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면서도 한일기본조약에‘한국 정부의 관할권을 38도선 이남으로 국한한다’는 유엔 총회 결의 제195호를 인용함으로써 북일 관계의 틈새를 확보했다. 또한 정경분리 원칙을 통해 북일 간의 다각적인 교류를 확대하고자 했다. 문화교류에도 큰 진전을 보여 1972년 9월 5일, 양국은 일본에‘조일문화교류협회’를 설립하고 문화교류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정치·외교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보다 민간에 의한 대북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일본이 현재 미국의 동북아시아정책에 보조를 맞추고 한미일 동맹 관계를 우선시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북한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북일 관계 개선과 수교를 위한 노력을 해왔다. 이것은 어쩌면 섬나라 일본의 지정학적 고립성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일본의 모습을 보았을 때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대화의 노력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만을 위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북일 관계의 변화는 또 다른 한반도의 변수로 다가올 수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계속되는 대북 제재와 날로 강화되고 있는 한미일 군사적 공조 체제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터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북방삼각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 대미 관계에서도 남한을 거치지 않고 일본을 통해 해결할 기회로 이용할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뛰어넘어 동북아에서의 패권국 지위를 되찾는 것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다. 최근 한일관계가 회복되고는 있지만 불확실성이 남아있고, 북핵 위협에 대한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일 관계 개선이 일본에게 중요한 카드일 수밖에 없다. 현재 불편한 중국이나 불확실한 한국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균형추로서의 역할에 북한이 최적의 상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반도 주변의 변화에 늘 고민하고 대응해야 할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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