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여성들의 비혼·비출산주의를 ‘사상’으로 풀겠다니…

[북한비화] ‘비혼·비출산 의식은 반동사상'이라며 선동…미혼 여성들 반응은 '냉랭'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022년 8월 21일 탁아소·유치원에 대한 젖제품(유제품) 공급 정책을 소개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애민정신’을 부각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결혼을 안 하려고 하거나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여성들의 사상적 문제를 검토할 데 대하여 …”

2021년 6월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수천수만금을 들여서라도 보다 개선된 양육 조건을 지어주는 것은 당과 국가의 최중대 정책이고 최고의 숙원”이라며 당 전원회의 역사상 처음으로 ‘육아 문제’를 언급했다.

이 같은 김정은의 언급이 있은 지 보름이 흐른 뒤 ‘결혼을 안 하려고 하거나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여성들의 사상적 문제를 검토할 데 대한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조직정치 사업 계획서’가 전국의 도·시·군 당 조직부에 내부적으로 내려왔다.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을 정책적 문제로 풀기보다 사상적 문제로 다루겠다는 뜻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전당은 결혼과 출산 독려 문제를 당적인 문제로 내밀기 시작했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들을 ‘사상 개조 대상’으로 분류하는 사업에 달라붙었다.

특히 당 조직부는 최근 여성들 속에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비혼주의와 비출산주의가 썩고 병든 자본주의 생활양식과 동등한 선에 있는 비사회주의적 인식이라면서 여성들의 사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강연과 교양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여기에는 평양시와 신의주시가 기치를 들었다. 평양시 당위원회와 신의주시 당위원회는 모범이 되는 여성들로 집단을 구성해 공장 기업소들을 돌게 하면서 ‘우리 시대 여성이 당과 국가를 진심으로 떠받드는 길은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라는 내용의 선동 사업을 벌였다.

특히 미혼 여성들이 주로 근무하고 있는 공장 기업소들에는 다산(多産) 영웅들을 순회시키면서 ‘비혼과 비출산에 대한 의식은 반동사상과 결집된다’고 선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산 영웅들의 순회 연설을 들은 미혼 여성들은 ‘육아 정책이 개선되면 되는 일이 아니겠냐’, ‘세탁기, 청소기, 온수조차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돈도 벌어야 하고 육아도 전담해야 하는데 이것을 사상적 문제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고 토로했다.

결혼을 안 하려는, 아이를 안 낳으려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개인의 사상 문제로 치부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실제 사적 단위인 신의주 화장품 공장에서는 ‘결혼하는 순간부터 가정의 꽃, 사회의 꽃으로써 여성들은 남편을 내세우고 나라를 떠받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다산 영웅 경험 발표회가 있었으나 반응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북한이 이처럼 결혼과 출산 문제를 여성들의 사상적 문제로 내몬 이유는 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농업 등 노동집약적 산업 비중이 큰 북한에는 인구 감소가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원회의 역사상 처음으로 육아 문제가 다뤄지고 ‘당과 국가의 최중대 정책이고 최고의 숙원’이라고 한 데서부터 북한이 출산율 저하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 육아는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은 전국의 모든 탁아소와 유치원에 국가 부담으로 젖제품(유제품)과 영양식품을 공급하는 것을 당의 육아 정책 실천이자 가장 큰 성과로 선전하고 있지만, 여성들은 이보다 더 실리성 있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 열악한 생활 조건에서 경제활동과 육아, 가사까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북한 여성들의 냉철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이를 사상적으로 풀어보겠다는 당국의 발상은 오히려 부작용만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