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MZ세대] “연애는 하되 결혼은 말자”…출산 기피도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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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2021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된 ‘청년교양보장법’은 코로나 시기 제정된 북한의 3대 ‘악법’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법은 청년들이 하지 말아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단속·통제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는데요. 청년 교양을 법률로써 뒷받침해야 할 정도로 정말 상황이 심각한 걸까요? 이에 데일리NK는 이른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로 불리는 북한 청년들의 생활양식과 의식이 이전 세대와는 어떻게 다른지 추적해 보려 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전위거리 건설장에서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 대원 부부의 결혼식이 진행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통일부가 지난 2월 발표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을 전후해 여성들의 평균 결혼 연령이 24.6세에서 25.9세로 1.3세 늘어났다.

2011년 이전에 탈북한 응답자 1005명 중 ‘25세 이하에 결혼했다’는 비율은 66.8%, ‘30세 이상에 결혼했다’는 비율은 3.0%였으나 2012년 이후 탈북한 응답자 1427명 중 ‘25세 이하에 결혼했다’는 비율은 51.3%로 하락했고, ‘30세 이상에 결혼했다’는 비율은 14.2%로 증가했다.

가정 경제의 책임이 여성에게 과도하게 지워지는 상황에서 북한 여성들 사이에 결혼을 가능하면 늦게 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실제 북한의 MZ세대는 연애에는 적극적이나 결혼에 대해서만큼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가 몰고 온 경제난이 북한 새세대 청년들의 결혼 기피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전언이다.

경제난 속 결혼 부담감도 커져안 하는 게 백번 낫다

실제 데일리NK와 접촉한 평안북도 신의주시의 30대 청년은 “결혼에 대한 부담감이 크기 때문에 지금 나를 포함해 내 주변 친구들도 ‘연애는 하되 결혼은 하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애는 상대의 생일 등 기념일에 선물을 살 때 말고는 큰 부담이 없지만 결혼은 살 집, 먹을 음식,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다 마련해야 해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게 이 청년의 말이다.

그는 “서로 좋아서 결혼했더라도 경제적으로 힘들면 싸우기만 하는 일상이 이어지고 그러다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면서 “결국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결혼은 고통의 시작이고 그럴 바에는 아예 결혼은 하지 않는 게 백번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함경북도 청진시의 30대 청년도 “결혼하지 않으려는 생각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강하다”며 “여자들이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밥과 설거지, 빨래 등 집안일도 도맡아야 하니 결혼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의 시작이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결혼 기피가 출산율 저하로김정은까지 나섰으나 청년들 ‘절레’

북한 새세대 청년들의 결혼 기피 현상은 북한의 출산율 저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지난 2022년 3월 발표한 ‘세계 인구 현황 2022’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9명으로,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2.1명)에 미치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돼 온 저출산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육아 관련 법령을 제정하고 다자녀 우대정책도 시행 중이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 열린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에서 직접 출생율 감소 문제를 언급하며 다산을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022년 8월 21일 탁아소·유치원에 대한 젖제품(유제품) 공급 정책을 소개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애민정신’을 부각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신의주 청년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부담이며 출산할 때마저 돈이 있어야 한다”며 “이제는 돈이 없으면 살지 못할 세상이 돼 버려 전에는 한 명만 낳아 남 부럽지 않게 잘 키우자는 생각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고생시킬 바엔 낳지 말자는 인식이 크다”고 말했다.

청진시 청년 역시 “사는 게 일없으면(괜찮으면)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지 않겠느냐”며 “갈수록 끼니 해결하기도 점점 어려워지는데 돈이 없으면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학교에도 보내지 못하는 실정이니 엄두도 못내는 것”이라고 했다.

또 양강도 혜산시의 30대 청년은 “책임도 지지 못하면서 나를 왜 낳았을까 하는 생각에 부모를 탓할 때가 많다”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군 복무하고 돌아와서 탄광에 가야만 했을 당시의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런 삶은 나에게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잘 내세울 능력이 되지 않으면 아예 자식을 낳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결혼·출산 꺼리는 근본 이유는 경제난먹고사는 문제 해결 돼야

북한 MZ세대 청년들은 비혼, 저출산의 해결점이 먹고사는 문제에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신의주 청년은 “코로나 전만 해도 먹고사는 데 크게 문제는 없었고 밑돈도 불릴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벌이가 되지 않아 하루 두 끼 해결도 어렵다. 그러니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며 “결국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 돼야 의식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혜산시 청년은 “과거에는 결혼하지 않으면 노처녀, 노총각이라고 비웃었지만, 지금은 아이를 둘러업고 힘겹게 생활하는 이들이 비웃음을 받는다”며 “특히나 지금 나 같은 새세대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생활 조건에서 죽도록 고생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을 키우지 않겠다는 결심이 확고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새세대를 서라면 서고 앉으라면 앉는 옛날 부모 세대와 같이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 없이 출산만 독려하는 것은 청년들의 마음을 더 닫게 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