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김정은의 또 다른 커밍아웃(coming-out): 영토완정』(10.7), 『한반도 시나리오: 김정은-트럼프 또다시 함께 춤을?』(9.29) 등을 통해 ▲김정은이 지난 9월 8일 전격적으로 선포한 ‘핵 불포기·선제 핵공격 정책 법제화’가 갖는 의미와 ▲그 이후 북한군의 다양하고도 집중적인 육해공 도발 저의를 평가·전망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 같은 북한의 전략전술적 도발에 맞서 전임 문재인 정부와는 달리 ‘강력 경고와 맞대응-예정된 한미합동 및 독자 군사훈련 실시-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연대 강화’ 등을 통해 한반도 핵위기를 나름 잘 관리해 나가고 있다. 첫 단추는 잘 꿰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7차 핵실험 계기로 주목한 2개의 대형 국제행사, 즉 중국 20차 당대회와 미국 중간선거(10.16~11.8) 국면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시점에서 향후 북한의 행보와 우리 정부의 보다 실효적인 대책을 논의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면 멀리 보는 게 소홀해 질 수 있다. 예로부터, 바른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가지(branch)도 보고 숲(forest)도 보아야” 하는 법이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는 김정은의 핵시계 초침(秒針)이 ▲바로 눈앞에서 보고 들으면 굉장히 빨리 움직이는 듯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차근차근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우리의 의지로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이 글을 쓴다.
지금 북한은 내치(內治) 시즌이다
북한에서 통상 11월부터는 한해 사업을 총화하고 다음해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각 지역·기관은 해부문 실적과 계획을 중앙에 보고하고, 중앙당과 내각은 이를 기초로 새해 사업방향을 준비한다. 그리고 이것이 김정은 신년사에 반영되어 그 대강(outline)이 발표된다.
실제로 현재 김정은은 선제 핵공격정책 법제화 이후 10여 차례의 집중도발 국면을 거친 후 숨고르기, 즉 내부 단도리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의 NLL 침범·단거리미사일 발사·선전전 등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진(餘震)의 수준이다.
최근 들어 김정은은 만경대혁명학원, 당중앙간부학교 등을 방문하여 자신의 ‘핵강국 건설’ 치적을 선전하면서 향후 “백년, 천년 후사”를 애기하고 있다. 연포온실농장·아이스크림공장 등 민생현장을 현지지도하는 여유도 보이고 있다.
“총비서동지께서는 우리는 새시대 당건설방향에 립각하여 당의 강화발전을 실속있게 추진함으로써 백년,천년을 담보하는 당의 면모와 기풍을 확립하고 사회주의,공산주의건설에로 확신성있게 나아가야 한다…..우리 당이 50년,100년,몇백년의 후사도 마음놓고 맡길수 있는 유능한 당일군,능숙한 정치활동가들을 키워내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하시면서…..(2022.10.17 김정은의 당중앙간부학교 방문 연설)
북한이 한미연합공군훈련 ‘비질런트 스톰’(11.2~4), 미국 중간선거(11.8), G20정상회의(11.15), APEC정상회의(11.18) 등 빅이벤트가 이어지는 11월 중에 이미 준비를 끝낸 7차 핵실험을 단행할 개연성은 여전히 있다. 그렇지만 작금의 내외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당분간 조정기를 거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핵정책 법제화와 집중도발로 소기의 목표를 거둔 상황하에서 ▲굳이 한·미의 정찰자산이 총가동되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핵실험이라는 초강수를 두는 것이 타당할지에 대한 이해득실을 따져 볼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러시아와의 공조 완료 여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김정은은 짧게는 ‘2024년’, 길게는 ‘영토완정’을 노리고 있다
북한은 7차 핵실험 실시 여부와 관계없이 그들이 설정한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이는 한국과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명분과 원칙이 없는 양보는 굴종이라는 생각(경험)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정은은 가치와 동맹을 중시하는 윤석열-바이든 정부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김정은은 당분간 ①안보 자주권·우주의 평화적 이용권(이중기준 철폐) 등을 주장하면서 핵·미사일 전력을 고도화해 나가는 데 주력할 것이다 ②그런 가운데, 북중러 신(新) 북방3각연대를 뒷배로 한 그럭저럭 버티기(muddling through)와 사회개조를 통해 북한사회 전반의 체질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③또 한편으로는 한국사회 내 극단적인 분열상을 더욱 증폭시켜 반(反) 윤석열정부 분위기, 남남갈등을 고양시켜 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750만 해외동포도 중요한 타깃이 될 것이다. 이 같은 전술은 이른바 1964년 김일성이 제창한 ≪3대혁명역량(북한, 남한, 국제) 강화 노선≫의 2.0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은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 한 후, 미국의 대선이 시작되는 2024년을 새로운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로 하여 비핵화가 아닌 군축회담을 도모하고자 할 것이다. 미국의 대선이 시작되면 김정은과 27차례나 친서(이른바 ‘love letter’)를 주고 받은 트럼프가 재등장할 가능성이 크고, 트럼프는 반(反)바이든·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 가능성이 크므로 김정은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사전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한미일 3국중 가장 약한 고리인 일본을 공략할 가능성도 상당하다.(상세 내용은 9.29자 데일리NK의 ‘한반도 시나리오:김정은-트럼프 또다시 함께 춤을?’을 참조).
한편 김정은은 ‘전(全)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대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핵보유국이라는 목표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2036년 사회주의 강국 원년’(2021.4 김정은 제시) 달성을 위해 나갈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연방제 또는 무력에 의한 ‘영토완정’(嶺土完整)을 추구해 나갈 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최소한 김정은과 같은 복선·수(數)로 대응해야 한다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은 “남북한 체제경쟁이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생각을 조금 달리한다. 얼마 전 김정은이 사용한 어법(語法)을 인용하여 말하면, ‘천만에’(Never)이다. “첫번째 경쟁은 자유 대한민국이 승리했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다. 제2의 체제경쟁이 시작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미구에 핵을 가진 북한에 우리가 역전당할지도 모른다”가 필자의 지론이다. 체제경쟁은 단순히 경제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력, 군사력, 우방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발 이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벌써부터 그 조짐이 보인다. 북한의 핵공갈 짓이 시작되었고, 김정은식 사회개조도 나름 수확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의 결단 여하에 따라 수없는 기회의 창이 열린다. 반대로 한국사회는 지금 어떤가? 대책없는 평화타령만 하면서 적을 이롭게 하는 선동과 주장, 극단적인 반목과 대립이 난무하고 있다. 하루하루 걱정만 쌓여간다.
바른 진단이 바른 처방의 첫 걸음이다. 장기적 관점과 실질적 대책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안보 각부문의 주체들이 스스로 즉각 조치할 수 있는 것들은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유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을 위해서는 전술핵 재배치·자체 핵개발과 같은 마지노선 대안도 섣불리 제외해선 안 된다. 0부터 100까지 스펙트럼에 모든 것(all options)을 올려 놓아야 한다.
이쯤해서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뒤돌아 봐야 한다. 최근 북한의 도발이 극도로 치닫고 있을 때 정부내 관련부처들이 심야 비상소집을 했는지 궁금하다. 필자였다면 최소한 2번 정도의 비상소집 발령을 하달했을 것이다. 위기대처는 1분 1초가 시급하다. 그래서 국가안보를 다루는 관련자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심야, 새벽을 불문하고 최대한 빨리 근무지에 정위치해야 한다. 이렇게 공무원들이 솔선수범을 보일 때 국민들은 정부를 신뢰하게 되며, 핵민방위훈련과 같은 정책이 시행될 경우 기꺼이 불편을 감수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정책 법제화와 그 이후 국면에서 중국을 과거와 다른 방법으로 강하게 압박했는지도 궁금하다. 혹시 천편일률적으로 대처하지는 않았는지? 개인적으로는 주한 중국대사의 “미국 탓, 한국 탓”을 하는 뻔뻔한 기자회견을 보면서 걱정을 넘어 울화까지 치밀었다.
정책 제언
필자는 그간 『김정은 대해부』 『김정은과 바이든의 핵시계』 『북핵과 분단을 넘어』 『윤석열대 김정은』 책자를 출간하고, 『원코리아센터 정론』 『데일리NK 곽길섭북한정론』 등 칼럼을 통해 자유 대한민국 정부의 장기적·입체적 대북정책 방향(3기둥론; 대화, 자주국방, 북한체제 정상화), 북한체제 정상화 방안(5화론: 비핵화, 자유화, 시장화, 친한화, 세계화) 등을 제시해 왔다. 따라서 오늘은 동 내용을 재론하지는 않고, 보다 실제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몇 가지 첨언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첫째, 국민참여형 북핵대응 사령탑(control tower)을 신설·가동해야 한다. 북핵대처는 더 이상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실과 정부 내 안보부처 간의 공조 수준을 넘어 초당적-전국민적 참여가 필요하다. 여론(조사)에 이끌려 정책을 추진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국가안보와 국민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강한 결단력과 추진력을 가지고 국민들의 가슴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수준을 넘어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관군 책임자 및 오피니언 리더가 참가하는 ‘대통령주재 북핵위기 대책위원회’(실무: 국가안보실산하 T/F)를 신설하고 최소한 월1회 이상은 회의를 개최해야 한다. 동 회의체는 북한 핵·미사일 태세검토보고서를 작성하여 내외에 공개함으로써 정부 각 부처가 추진하는 정책의 바로미터를 넘어 국민-국제사회 공감대 형성의 핵심축 역할을 수행한다.
둘째,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는 미국과의 공조 강화가 급선무다. 이를 통해 미군 핵전력 한반도 주변 상시 배치와 같은 확장억지력 제고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술핵 재배치, 핵공유, 한국의 독자 핵개발 등과 같은 플랜B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하는 것이 전략전술적 행보이다.
이와 함께 북한이 핵협상에 참여하지 않고 도발 수위를 계속 높여 나갈 경우에는 대북 확성기방송 재개, 사드 추가 배치, 중-러에 북핵특사 파견, 유엔에서의 북한 퇴출운동 전개 등과 같은 압박책도 적극 검토, 시행한다.
셋째, 안보는 자주국방이 기본원칙이다. 미국의 핵우산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3축체계(킬체인,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 대량응징보복) 조기 구축을 위해 조직과 예산의 우선순위를 혁신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특히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량응징보복(KMPR) 능력 제고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대량응징보복은 예산과 효율성면에서 최고이다. 예를 들어 김정은 참수작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현무 미사일과 드론’ 전력 대폭 강화가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넷째, 북한의 호응 여부를 떠나 윤석열 정부가 제의한 ‘담대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공개·비공개 노력도 지속해 나가야 한다. 남북 간 합의와 국제법 준수, 인도적 교류협력 호응 촉구 등은 명분과 실리 양면에서 모두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미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자유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와 언론은 김정은의 핵공갈에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김정은은 스스로 안보딜레마 늪에 빠져들고 있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와 연대를 통해 북핵문제를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도 빠르고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다음 정부에 바톤을 잘 넘겨 준다는 심정으로 북한을 차분하게 다루어 나가자. 이런 점을 국민에게 진솔하게 설명하자. 그러면, 시간은 북한편이 아니라 우리 편이 될 것이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