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북한 신인 가수 등장의 색다른 의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전날(8일) 밤 평양에서 “공화국창건 74돐(돌) 경축행사가 대성황리에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 가수 정홍란(왼쪽)과 김류경(오른쪽). /사진=노동신문·뉴스1

지난 8일 밤 북한 만수대 기슭 특별무대에서는 정권수립일(9월 9일) 74주년 기념 대공연이 개최되었다. 김정은과 리설주가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이번 공연에서 유독 김류경과 정홍란이라는 두 명의 신인가수가 주목된다.

지난 7·27전승절 축하 공연에서 처음 등장한 두 신인가수는 당시 독창을 부르긴 했지만, 공연 전반에 두드러진 역할을 한 건 아니었다. 당시 정홍란의 풀뱅 헤어스타일과 김류경의 서구적 외모와 진한 메이크업 등이 국내에서 화제가 되긴 했었다.

7·27공연이 데뷔무대였다면 이번 9·9절 공연은 이 두 신인가수를 위한 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래련곡과 아동합창곡을 제외하고 총 11곡의 공연 중 정홍란 5곡, 김류경은 3곡을 각각 독창으로 부르면서 대표가수로 부각되었다.

인민배우 칭호까지 받으며 김정은 시대 최고의 북한 대표가수였던 김옥주는 이번 공연에 출연하지 않았다. 김옥주와 함께 삼지연관현악단 소속으로 활동하는 김성심이 출연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두 신인가수는 삼지연관현악단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대표 가수인 김옥주, 송영 등을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공연의 노래 선곡 경향을 볼 때 이번 공연에서 두 가수가 부른 독창곡은 이전에 각각 북한을 대표하는 가수들이 불렀던 곡이다. 정홍란이 부른 ‘나를 부르는 소리’는 이전에 김옥주가 불렀던 곡이며, 김류경이 부른 ‘조국과 나’는 모란봉악단의 대표가수였던 류진아가 불렀던 독창곡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무엇보다 두 신인가수의 파격적인 무대와 편곡이 무엇보다 두드러진다. 공연의 첫 시작으로 김류경이 부른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는 편곡된 것으로, 기존 군가풍의 장엄한 분위기 곡을 가수의 바이브레이션 기법을 활용해 알앤비(R&B)풍 발라드로 바꾸었다.

정홍란이 부른 <이 하늘 이 땅에서>의 편곡과 공연무대는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마치 이선희의 평양공연 당시 불렀던 <아름다운 강산> 무대와 매우 비슷한 형식으로 역동적이고 빠른 리듬으로 편곡했다.

실제로 노동신문(2022.9.10.)은 이번 공연에 대해 “새롭고 특색있는 편곡, 젊음이 약동하는 배우들의 세련된 예술적 형상으로 일관된 황홀한 공연”으로 언급했다. 김정은이 참석한 대공연에서 여가수가 바지정장을 입고 무대를 누비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자유분방한 모습은 이례적이다.

더욱이 <이 하늘 이 땅에서>라는 노래가 끝난 다음 다른 연주와 달리,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계속 이어지자 정홍란은 지휘자 김충일에게 다가가 지시를 하고 앵콜공연을 했다. 사전에 기획된 것이 아니라면 가수 개인의 자율적 결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홍란이 <이 하늘 이 땅에서>를 부를 때 관객들은 함께 박수를 치며 축제를 즐기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주목할 점은 카메라는 관객 중 주로 청년들과 학생들에게 집중된다는 점이다. 공연이 끝난 후 김정은과 리설주의 환한 표정을 집중 조명하였으며, 노동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 공연에 대해 김정은이 대만족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전날(8일) 밤 평양에서 “공화국창건 74돐(돌) 경축행사가 대성황리에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 가수 정홍란이 남색 바지정장을 입고 노래하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뉴스1

이번에 등장한 두 가수는 지난 김정은 정권 10년에 이어 새로운 10년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김옥주로 대변되는 삼지연관현악단은 2018년 한국공연에서 J에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등 남한 노래를 부르며 당시 평화쇼에 적극 활용되었다.

남한의 정권이 교체되고 김정은 시대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면서 북한의 음악정치가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류진아를 중심으로 한 모란봉악단은 2012년 김정은의 젊은 이미지를 선전하고, 2015년 김주향을 중심으로 한 청봉악단은 김정은식 음악정치의 보완을 그리고 2018년 김옥주의 삼지연관현악단은 남북 평화쇼를 위한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두 명의 신인가수들에게 부여되는 역할은 무엇일까? 이번 공연의 의도는 남한 노래의 북한 유입에 따른 새세대들의 사상이완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음악을 남한식 스타일로 바꾸어 우리식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남한의 음악을 비롯한 외부사조에 대해 단속하고 통제하면서 동시에 남한음악과 경쟁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렇게도 자랑하던 주체음악을 변용하면서까지 남한식 스타일을 따라 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 같은 북한의 의도는 한마디로 북한 내 외부사조 유입을 막기 위한 발버둥처럼 보인다. 리듬을 바꾼다 해도 가사는 그대로다. 북한 노래는 어느 것 하나 정치사상을 강조하지 않은 것이 없다.

북한 새세대들이 남한 노래에 젖어 드는 이유는 정권을 위해 목숨 바치자는 북한 노래와 달리 남한 노래는 사랑과 생활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에게 한 가지만 묻고 싶다. 그리도 사회주의지상낙원과 사상강국을 자랑하면서 남한의 음악조차 개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남한 음악과 문화를 체제 위협요인으로 간주한다면 그 체제의 모순과 허술함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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