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 사고 후 잠적한 안전성 간부…2년 만에 처벌된 사연

[북한 비화]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 '애첩'의 자수로 끝나…北 간부 부패·타락상 단면

북한 평양의 롤러스케이트장. /사진=조선중앙통신 화면캡처

어린이들과 학생들로 흥성이던 남포시 로라스케트장(롤러스케이트장)에 노을이 비끼던 2019년 11월의 어느 날 초저녁이었다.

어린이 몇 명이 한창 신나게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던 그 시각 롤러스케이트장과 잇닿은 공지에 검은색 뻐꾸기 SUV 차량이 스르르 들어서 멈춰섰다. 차에서 내린 50대 남성과 20대 여성이 곧 운전석과 조수석을 바꿔 앉았다. 이후 운전대를 잡은 20대 여성은 삐뚤삐뚤 운전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뒤 아스팔트 공지의 커브를 돌던 차량이 갑자기 돌진하더니 마주 오던 롤러스케이트를 탄 10대 학생을 그대로 들이받는 사고가 벌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사고를 목격한 4~5명의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고, 검은색 뻐꾸기 조수석에서 내린 남성은 운전석에 있던 여성을 황급히 조수석으로 옮겨 앉히고 차에 치인 아이의 생사를 확인하는 듯하더니 어슬어슬한 초저녁을 틈타 이내 도망쳐 버렸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고급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 학생이 가지고 있던 손전화(휴대전화)로 부모에게 연락해 후속 대처가 이뤄지면서 차에 치인 아이가 사고 발생 30분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

피해자는 당시 소학교 5학년생 11살 남학생이었는데, 남포시 안전부는 즉시 뺑소니 사망사고를 내고 도주한 대상의 인상착의를 적은 회람 쪽지를 인민반들에 돌렸고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망한 학생의 부모가 하나뿐인 외동아들을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을 못 잡으면 평양 사회안전성까지 찾아가 신소, 청원하겠다며 악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포시 안전부는 뺑소니범을 잡는 데 실패해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그로부터 약 2년이 흐른 2021년 10월 남포시 안전부에 당시 뺑소니 사건을 자수하겠다며 한 여성이 찾아왔다. 즉시 남포시 안전부는 수사과장이 직접 참가해 여성의 진술을 상세히 받도록 했다.

이 여성이 자백한 내용은 이렇다.

남포가 고향이고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1학년이던 해 모내기철에 사회안전성이 동원된 평원군 모내기 전투장 논벌에서 같은 조를 무어 일을 한 인연으로 간부가 돌봐줬다. 지방생으로 평양에 올라와 그것도 문턱이 높고 수준이 높은 음악종합대학 생활을 하기란 만만치 않음을 알고 진심으로 도와주던 간부는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지 말라면서 대학 근처에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배정된 아파트를 구해줘 살 수 있게 해주기도 했고, 고향(남포)에서 고생하는 부모님들의 집도 단층에서 아파트로 옮기게 해줬다. ‘내 조카 같아서 도와주는 것이니 삼촌처럼 따르라. 내가 다 돌봐주겠다’고 하던 간부가 어느 날 운전하는 것을 배워주겠다고 평양시를 벗어나 남포로 왔는데 그날 사고를 냈다.

뺑소니 사망사고를 낸 직후 평양으로 올라간 간부는 여성에게 사건에 대해 함구하라고 당부하고는 바로 안면을 내세워 사고를 낸 차량의 번호를 폐기시키고 새 번호를 발급받았다. 남포에서 사고를 내고 평양으로 곧장 들어온 데다 차량 번호까지 바꾸는 치밀함까지 보였으니 체포가 어려웠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여성은 사건이 있은 몇 달 뒤 간부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는 당장 없애자며 강제로 중절 수술을 받게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수술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던 상황에서 간부로부터 ‘국가적 명령을 받고 외국에 나가게 돼 앞으로 언제 다시 연락될지 모르니 그리 알라’는 통보를 받았고, 자신을 버린 간부의 약점이자 그간 양심의 가책을 받아왔던 뺑소니 사망사고를 털어놓겠다 결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이 여성은 평양시에는 내로라하는 권력을 가진 그 간부의 세력이 있을 수 있어 자신의 고향이자 사건 담당 수사기관인 남포시 안전부를 찾아온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결국 사건 발생 2년 만에 안전성 간부는 해임, 철직, 제대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15년 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자수한 여성은 간부가 불법적으로 마련해준 평양시 아파트와 고향 남포시 본가 두 채를 국가에 회수당하고 1년 단련형 처벌을 받았다.

남포시 안전부는 이 사건을 마무리 짓고 사망한 남학생의 부모를 찾아가 전말을 전했다. 이를 듣게 된 피해 학생의 부모는 “당이 임명한 간부 자리를 이용해 젊고 고운 여대생들을 애첩으로 만들어 위험한 짓까지 서슴지 않다가 끝내 남의 집 귀한 외동아들을 죽였다”며 “간부들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차 넘치는 우리나라가 사회주의사회가 맞긴 맞느냐”고 개탄했다.

남포시 안전부는 사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간부들의 부패와 타락, 비리가 차 넘치는 북한 사회에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악습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지 않는 한 재발 방지 약속은 한낱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