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김정은의 ‘담대한 수락(?)’을 기대한다

10일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토론자로 나선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김 부부장은 코로나19 유입 경로로 남한에서 넘어 온 ‘대북전단’을 지목하며 “이번에 겪은 국난은 명백히 세계적인 보건위기를 기화로 우리 국가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반공화국대결광증이 초래한 것”이라며 강력한 보복성 대응을 시사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여정의 오만방자함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김여정은 지난 18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허망한 꿈을 꾸지말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은 한마디로 윤석열 정부가 제안한 ‘담대한 구상’에 대한 답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북한에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식량, 보건의료, 인프라 등 6개 분야의 대규모 지원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담대한’의 사전적 의미는 ‘배짱이 두둑하고 용기가 있다’라는 뜻인데, 사실 대북 지원의 규모로만 보면 ‘거대한 구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담대한 구상에 대한 북한의 답변이라 할 수 있는 김여정의 담화는 그 비난의 수위가 굉장히 높다. “황당무계,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 무식함” 등의 표현은 이번 담화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단어들이다. “개는 엄지든 새끼든 짖어대기가 일쑤라더니 대통령도 다를 바 없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정녕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인물이 윤 아무개 밖에 없었는가” “윤석열 인간 그 자체가 싫다”라는 표현도 있다. 윤석열 정부뿐만 아니라 “한반도 운전자론”을 거론하면서 지난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난도 이어갔다.

김여정은 담대한 구상을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라며 ‘역사의 오물통에 처박힌 대북정책을 옮겨 베껴 놓은 것’이라 평가절하했다. 무엇보다 비핵화의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라며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 어리고 천진스럽다’라는 것이다. 이번 담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리 경내에 아직도 더러운 오물을 들여보낸다”라는 내용이다. 김여정은 북한의 코로나 발병 원인이 남한에서 보낸 대북 전단 때문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번에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이번 김여정의 담화와 관련해 같은 날 노동신문에 실린 또 하나의 기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김정은이 비상방역대전총화회의에서 군의병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내용이다. 북한은 비상방역체계를 선언하면서 바이러스의 발병 원인을 남한에 전가했다. 그러면서 대남보복을 운운하며 끊임없이 남한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자아냈다. 이러한 시기에 바로 김여정의 담화는 남한과의 대결 구도를 강력히 보여주면서 내부결속을 도모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 대북 제재와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 나아가 실제 코로나 발병 등이 이어지면서 북한 내부 상황은 말 그대로 최대 위기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김여정의 담화는 지금까지 남북관계에 늘 있던 레퍼토리다. 북한 내부적으로 위기 상황을 면하기 위해 남한을 적으로 규정해 내부결속력을 높이고, 이러한 명분으로 도발을 일삼는 행태 말이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제안했을 때도 북한은 처음에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던 전례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남북정상회담을 수차례 개최하고 문재인과 김정은이 백두산까지 오르며 친분을 과시했지만 심기가 틀어지자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그러고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대결구도를 이어가는 게 북한 정권의 속성이다.

북한의 눈치를 보며 일방적으로 끌려다닌 이전 정부와 차이점을 두기 위해서 윤석열 정부는 비핵화라는 의제를 우선순위로 설정했다. 비핵화의 협상 단계부터 대북 지원을 하겠다는 건 이전 비핵개방3000과 다른 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약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고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 도발을 이어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담대한 제안을 수락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북한이 오히려 핵실험이나 미사일 도발을 하면 이에 대한 강력히 응징할 것인가라는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군사적 대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강력한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가 있다. 바로 정보유입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고 군사적 카드로 활용한다면, 역으로 우리는 체제위협 요인을 찾아 역공해야 한다. 북한 당국이 자인하는 체제 위협 요인은 바로 남한의 한류, 대북방송, 심리전 등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감행한다면 정보유입을 통한 공세로 대응해야 한다.

김여정의 망발과 오만방자함을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북한이 이번 제안을 수락하든, 협상 테이블로 나오든 반드시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 핵무기를 머리에 인 채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진짜 살길은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오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북한 주민을 더 이상 고통으로 내몰지 말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모두가 살길을 도모할 수 있도록 김정은의 담대한 수락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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