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청사진(靑寫眞) 준비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을 기울여 왔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50일간의 활동을 마치고 해산(5.6) 된다. 그간의 노고에 격려를 보낸다.
이로써,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자유 대한민국호(號)의 새로운 선장・선원과 미래지향적 정책 가이드라인이 세팅되었다. 내외의 기대가 매우 크다.
국정비전으로 제시한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를 비롯 6대 국정목표, 국민께 드리는 20개 약속, 110대 국정과제를 차분하게 실천해 나가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새 정부 앞에 놓여 있는 과제는 녹록지 않다. 특히 국가의 제1과제, 안보 문제는 김정은의 핵・미사일 개발 질주로 더욱 깊은 암연(黯然)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따라서 정확한 진단과 바른 처방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이다.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새 정부 5년의 안보분야 국정목표,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넘어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
필자는 5년 전 문재인 정부 출범에 즈음하여 ‘새 정부 대북정책 양 날개로 날아야’ 제하의 시론(2017. 5. 11. 중앙일보)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이 균형적・입체적으로 전개되어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외날개’로만 날았다. 레토릭(rhetoric)과 소망만 가득했다. 그리하여, 김정은으로부터 무시당하고, 국론은 분열되었고, 국제사회로부터는 의아스러운 눈초리를 받았다.
새 정부는 이와 같은 참담한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소망이나 단기 이벤트 위주의 소아적(小我的) 접근이 아닌, 정확한 진단과 장기적 관점에 기초한 대승적(大乘的)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번 글을 쓰면서 얼마 전 저서 『북핵과 분단을 넘어』를 발간했을 때에 이어 다시 한번 믿기지 않는 경험을 했다. 너무나 놀랍게도, 5년 전 시론이 새 정부에도 똑같이 큰 시사점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글을 가감 없이 아래에 전재한다.
새 정부 대북정책 양 날개로 날아야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그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안팎의 많은 기대와 달리 유사 이래 최고의 시련과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도 크다.
북한의 핵실험 엄포, 한・미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조기 배치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극도로 혼미한 가운데,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세대・지역・이념적 갈등 국면이 금방 아물어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김정은은 물론이고 주변 4강의 스트롱맨들과 힘겨운 샅바 싸움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켜내면서 북한의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를 달성해 나가야 한다.
새 정부 1~2년은 북핵 위기 해소를 위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김정은의 핵 질주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요원하다.
북한의 핵개발이 진보정부 햇볕정책의 부산물인지, 아니면 보수정부의 원론적 강경정책의 탓인지를 두고 한가롭게 논쟁할 때가 아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에 입각해 북핵 위기를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
철저한 안보태세를 구축한 가운데 북한 비핵화와 자유민주주의 가치 전파를 정책의 최우선으로 두고 압박(stick)과 대화(carrot)의 투트랙을 동시에 활용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정책과 통일 방안에 대한 국민공감대 결집이 필수적이다.
대북정책은 대략 5가지 사항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첫째, 북한 비핵화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대(大)전제다. 북한으로부터 핵 포기 약속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핵실험 유보, 핵 동결이라는 유화 제스처에 스스로 현혹되면 그간 어렵게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지고 김정은이 만든 틀(frame)에 또다시 갇히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둘째, 남북대화와 인도적 지원도 대북 제재와 함께 우리의 소중한 전략적 자산의 한 축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셋째,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치를 북한 내부로 다양하게 전파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과 어떠한 타협도 있어선 안 되며, 한순간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넷째, 북한의 변화와 급변, 전쟁 발발 등 각종 시나리오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다섯째, 지난 정부 대북정책을 부정하고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새 정부는 이러한 5대 기본 원칙에 입각해 장기(통일 방안), 중기(3년), 단기(1년)의 대북정책 로드맵을 수립, 시행해 나가야 한다. 북핵 위기 해소를 위해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여야, 진보・보수, 정부・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가칭 ‘북핵 위기 해법 모색과 자유민주 통일국가 건설을 위한 민관합동위원회(약칭: 북핵통일위원회)’를 신설할 필요도 있다.
당면한 북한 비핵화는 국제사회의 전방위적인 대북제재 압박과의 긴밀한 공조 하에 ‘출구론적 관점’에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선 비핵화-후 평화체제’ 논의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비핵화가 대화의 전제조건, 즉 입구론이 되어서는 논의가 한 치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최종 단계에서 비핵화가 완성되는 로드맵이 북한과 관련 국가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인 안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 새 정부는 그동안 부지불식간에 방기한 대북 관리력과 주도력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또는 대통령 최측근을 북핵 특사로 파견하는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유의할 점은, 조급한 행동은 북한의 오판을 초래하고 미국 등 우방국들과의 정책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치밀한 판단과 미국 등 우방국과의 사전・사후 공조는 필수다.
한편 미・중을 비롯한 주변국의 출구전략,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에 대해서도 항상 경계의 눈을 놓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령 일인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북한의 ‘단선형 정치문화’ 특성을 고려해 김정은과의 비공식 대화 창구를 조속히 복원해야 한다.
새 정부 임기 내, 아니 앞으로 1~2년은 북한의 핵개발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이 벼랑 끝에서 만나 어떤 형태로든 해결의 방향이 잡혀가는 변곡점(critical point)이 될 것이다.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서는 대한민국의 발전도, 향후 자유민주 통일한국의 건설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북핵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는 데 정책의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대북제재의 동력 유지, 중기적으로는 비핵화, 장기적으로는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에서 혹시 소망성 사고(wishful thinking)에 기초한 단기 전술 또는 장기 전략에 일방적으로 집착하거나, 또는 우리 입장만을 고집하여 국제사회의 물밑 논의에서 소외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맺음말: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5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정론(正論)에 담긴 기조와 정책적 대안은 실천되지 않았다.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는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과 북한체제의 대전략・이중적 행보를 무시하고 ▲무지개만 보면서 ▲지름길만을 고집했고 ▲같이 가기보다는 고집스럽게 홀로 가려 했다.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반면교사(反面敎師), 타산지석(他山之石)을 교훈으로 삼고 국민과 국제사회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외날개가 아닌 양 날개로 날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①국론 결집 ②3축체계 완비 등 자강(自强) 노력 ③한미동맹 등 국제사회와의 유기적 공조 강화가 매우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김정은에게 ‘비핵화 로드맵’과 ‘북한개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핵은 계륵이다. 오히려 정권안정에 손해가 될 것 같다”라는 인식을 가지게끔 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필자는 이를 비핵화 전략목표를 달성하는 중간 과정, ‘무용화’(無用化) 전술이라고 명명하였다.
이와 함께 북한체제를 위・아래로부터 변화시키는 ‘5化(비핵화, 자유화, 시장화, 친한화, 세계화)’ 전술을 병행하여 추진해 나간다면 북핵 위기 해소는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를 성공적으로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무쪼록 새 정부가 로마의 최전성기를 이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좌우명,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의 정신을 곱씹어보길 바란다. 북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북한을 정상화시켜 나가는 게 먼저다. 무조건 만나 대화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전략전술적 마인드를 가지고 차분하게 당당하게 북한과 주변국들을 상대해 나가야 한다.
독일 통일의 교훈을 잊지 말자. 통일은 소망이나 구호(rhetoric)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안보태세와 국력을 튼튼히 하면서 주민·주변국들의 마음을 얻을 때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덧붙인다. 윤석열 정부의 안보정책 네이밍(naming)과 관련한 소견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짓는다. 조직도 그렇다. 정책도 셋팅이 끝나고 나면 알기 쉬운 이름을 지어 불러주는게 좋다. 그래야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수 있다. 국정비전, 국정목표, 세부정책 등은 아무리 압축적으로 설명해도 길고 서술형이다. 이 모든 것을 아주 짧은 문구로 함축한 이름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핵위기가 더욱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라는 이미지는 그대로 남는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도 국정비전과 국정목표로만 설명하지 말고 대표적인 정책 명칭을 하나 만들어 사용해 나가는 게 좋을 듯하다.
필자는 ‘자유평화번영 프로세스’ 또는 ‘자유평화번영 이니셔티브’ 아이디어를 제시해 본다. ▲프로세스·이니셔티브라는 단어가 국민들에게 익숙해져 있고 ▲오로지 평화만 외친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성, 자유와 번영도 함께 중시하는 새 정부의 지향점을 간명하게 보여줄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새 정부의 힘찬 출범과 자유 대한민국, 통일한국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면서 ‘김정은 對 윤석열’ 제하의 시리즈 글(7회)을 마친다.
유비무환! 국론통합! 주동작위(主動作爲)! 척수천석(滴水穿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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