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프리즘] 조선시대 비변사를 통해 본 우리 ‘안보 불감증’

노광철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당시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는 모습.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조선 시대에 지금과 같이 안보를 위한 공식적인 국가 정보기관은 없었지만, 오늘날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정원의 기능을 합친 성격의 비변사가 있었다.

비변사는 북쪽의 여진, 즉 야인들과 남쪽 왜구와 일본의 활동을 감시하고 이들의 침략을 막는 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이다. 중종 5년(1510년)에 삼포왜란(三浦倭亂)이 일어나자 조선 조정은 방어책을 논의하는 한편, 그동안 변칙적이었던 의정부 재상, 병조 당상의 합의 체제를 고치고 임시로 비변사를 설치하여 비상시에 대비하면서 기밀을 취급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중종 12년에 의정부 3정승을 도제조(都提調)로 삼아 조직을 갖추었다.

이후 중종 17년(1522년) 왜선이 신달량(新達梁) 등에 침입하여 변방 대책기구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명종 10년(1555년)에 일어난 을묘왜란(乙卯倭亂)을 계기로 상설기구(常設機構)로 확정되어 정식 부처로 되었다.

비변사는 국가 위기 및 급변상황에서 국가정보 관련 업무 수행과 국가 병무정책을 총괄하였다. 암행어사나 보부상이 첩보를 수집해오면 국왕은 이를 비변사에 지시하여 분석‧확인하도록 하였다. 14대 명종 초반까지 지속적인 남북 변경 지역의 야인과 왜구의 출몰‧도발사건이 발생하여 비변사의 변방 정보수집 활동이 증가하였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비변사는, 15대 선조대 후반 그 권한이 급속히 강화되어 간다. 외침에 대해 비변사는 군부의 비밀정보는 물론 내정(內政)·외교권(外交權)까지 담당하게 되어 의정부의 권한을 가지게 되면서 국정의 중심기구로 발전하였다. 북방 여진족의 침입과 일본과의 강화 교섭에 필요한 정보 수집활동에 대응하였다.

광해군 시대에는 북방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비변사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등 국방‧정보적 측면에서 이 기구를 잘 활용하였다. 북방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서 변방 대책기구로서의 필요성이 증대되어 중국통인 강홍립 장군을 중용하여 후금 정보 수집과 대응이 잘 이루어졌다. 후금과의 두 차례 전쟁을 겪으면서 정보적인 측면에서 비변사 체제는 더욱 확고해져 대외 위기를 극복하는 역할에 기여하였다.

병자호란 당시는 정부의 각 기구는 모두 마비 상태였으며 오직 비변사만이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었다. 인조반정 후 반정공신들이 비변사를 중심으로 군령권과 인사, 재정을 장악함으로써 비변사가 권력 기구로 활용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비변사가 당파의 정쟁 도구로 변질되어 대원군이 비변사를 폐지하였지만 조선 초·중반기까지는 안보적 역할의 비중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국가적 안보기구가 있었음에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것은 당시의 선조와 인조가 무능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선조는 세종 이후 200년 만에 일본 내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사신을 파견하였지만 서인 출신의 정사 황윤길은 풍신수길이 전쟁을 준비해온 것이 확실하다고 하였고 동인 출신의 부사 김성일은 이와 반대로 전쟁 조짐이 없다는 정반대의 활동 보고를 하였다. 결국 부사의 의견을 채택,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임진왜란을 당하였다.

안보에서 당파의 논리가 작용한 것은 오늘날과 유사하다. 인조는 인조반정 쿠데타를 일으켜 국난에 잘 대응하고 정보력에 뛰어난 광해군을 몰아낸 후 즉위하였다. 이후 대외정세를 잘못 판단, 후금의 침입을 자초하였다. 결국 병자호란이 일어나 치욕에 삼전도 항복을 한 이후 조선 백성 수십만 명이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고 나라는 초토화가 되었다. 정보력 부재와 지도자의 무능은 이같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지금의 우리 정세가 이러한 실패한 군주국가로 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북한의 위협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간첩을 잘 잡는다는 국정원의 수사권을 없앤다고 한다. 이제 간첩 천국이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은 자명하다. 잘하는 것, 잘되는 것을 없애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의 주적인 북한과 9·19 합의 후 평화, 종전선언을 계속 구걸해 왔지만 중국과 북한은 동맹을 강화하고 오히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최신화 등으로 응답하고 있다.

최근 진행된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는 작전권 이양과 방위비 문제로 공동성명서조차 내지 못하였다. 중국과 북한은 6·25 전쟁 시 우리를 침략한 주범들이지만 사과 한 줄 없고 오히려 침략을 정당화하면서 “침략자 미국과 싸워 이긴 위대한 항미전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현 정부의 중화 사대주의와 김정은 남매 눈치보기가 이제 상습화되어 가니 속된 말로 “이게 나라”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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