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 對 윤석열(Ⅵ): 국가정보원 혁신 로드맵

2012년 11월 보위기관창립절을 맞아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를 방문한 북한 김정은. /사진=연합

화룡점정(畵龍點睛: 용을 그린 뒤 마지막으로 눈동자에 점을 찍는다)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이 거의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새 정부 안보팀도 이미 발표된 국방·통일·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사실상 확정된 국가안보실장, 법률상 대통령직 취임 이후 임명할 수 있는 국가정보원장(이하 ‘국정원’, ‘국정원장’으로 표기)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지금까지 각계의 반응을 보면, 안보팀은 기존 문재인 정부의 안보시스템 틀(frame)을 계승한 데다, 발탁자들도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능력을 검증받아온 터라 대체적으로 무난한 인사라는 평이다. 내정자들의 일성(一聲)도 한결같이 지난 정부 정책의 면밀한 검토, 시정과 계승,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과거와의 단절·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같은 외양적 변화보다는 운용을 내실화하는 실용적(實用的) 관점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기조는 앞으로 국정원장 임명과 조직 운영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모사드, CIA, 국정원

전직 국정원장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국정원이 벤치마킹해야 할 정보기관으로 이스라엘의 ‘정보 및 특수임무연구소’(MOSAD)나 미국의 ‘중앙정보국’(CIA)를 얘기한다. 이 두 기관이 정보역량은 물론이고 자국 국민들로부터 무한 신뢰를 받는 기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 체형과는 맞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분도 저의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혹시 늘씬한 모델이 입은 옷이 좋아 보여, 무턱대고 사서 낭패를 경험한 일이 직·간접적으로 없었는지?”.

‘모사드’는 주변 아랍국과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에서 국가존립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싸우는 《전투형 정보기관》이다. ▲암살·테러·도청 등 온갖 비합법적인 공작이 국민들로부터 박수(묵인)를 받고 ▲모든 정보활동은 오로지 수상 1인에게만 보고되며 ▲모사드는 모든 국정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기관과 국민들은 적극 협조해야 한다. 과연 우리 국민들이 이 같은 ‘모사드형 국정원’을 원할까?

‘CIA’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전 세계를 상대하는 조직이다.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독재자를 암살하고 정부를 전복하는 활동까지도 암암리에 수행하는 조직이다. ≪세계경찰형 정보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적(主敵)이자 대화상대인 북한을 정조준해야만 하는 대한민국 정보기관이 모델로 삼기에는 부적절한 조직이다.

결론적으로 국가정보원은 ‘모사드’도 ‘CIA’도 아닌, ≪한국형 정보기관≫이어야 한다. 과거 박정희 시절의 ‘무소불위(無所不爲) 중앙정보부’로의 회귀를 국민들은 바라지 않는다. ▲국내정치에서 완전히 떠나 ▲정권 안보를 위한 기관이 아닌 ▲국가안보와 국익 증진을 위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내실있는 정보기관이 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바람직한 국정원 상()

윤석열 정부, 아니 자유 대한민국의 국정원은 ≪순수 안보·국익 정보기관≫으로 진화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3대 목표, 즉 ①정보의 수집·평가 및 피드백 시스템 고도화 ②자유민주주주의 체제 파괴세력 색출 ③북한의 정상국가화 유도에 총력을 경주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5년 내내 국정원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국가안보의 최후보루이자 국익창출의 선봉대인 국정원의 조직과 정체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가장 대표적인 게, 문재인 정부 출범직후 국내업무를 담당하는 수집-분석 부서 2곳을 아무런 보완조치 없이 폐지한 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현대는 글로벌 지구촌 시대이다. 국내정보와 해외정보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내에서 해외와 연계되어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국내도 해외에 못지않은 북한·해외정보의 보고(寶庫)이다.

그럼에도, 고리타분한 지역개념으로 국내정보 조직을 무 자르듯이 잘라 폐지했다. 그 이후 국내에서의 인간정보 수집 활동(Humint)은 범죄시 되고 있다.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그 어떤 법률·제도적 대체장치, 보완책도 마련되지 않았다. 국내가 정보의 사각지대로 변했다. 상처가 심해져 사지(四肢)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으면, 의수·의족(義手·義足)이라도 만들어 주는 게 상식이 아닌가? 대통령과 국정원장의 직무유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수사 광풍(狂風)에 휘말려 세계 정보기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흑역사를 겪었다. 직원의 방패막이가 되어야할 서훈 원장이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전통하에 묵묵히 임무를 수행해온 동지들을 보호하기는 커녕, 방치하고 사지(死地)로 내몰았다. 모든 정보가 수록된 메인 서버가 외부인들에게 열렸다. 국정원장 4명을 비롯 수많은 간부와 직원들이 조사받고 구속되었다. 전직 고위 간부는 이를 ‘학살’이라고 통탄하였다.

문재인 정권의 국정원 학살은 문명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참변이다. 서훈 국정원장은 취임 직후 적폐청산TF를 출범시켜 소위 ‘27개 의혹 사건의 전면 조사에 들어갔다. 현직 257, 전직 94명 등 351명이 검찰조사를 받았고 현직 7, 전직 39명 등 46명이 재판을 받았다. 현재까지 38명이 유죄가 확정됐고 4명이 재판계류 중이며 4명은 무죄가 됐다. 이와는 별도로 500명이 넘는 직원이 마구잡이 감찰조사를 받았다. 그 큰 소동 끝에 적폐 사건연루가 확인돼 징계받은 직원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과거사 청산 작업에 협조한다면서 국정원 서버와 문서를 샅샅이 뒤져 부마항쟁 자료 1321447, 5·18진상규명 자료 1016888쪽 및 영상자료 258, 세월호 관련 자료 68만여 건을 마구잡이로 외부에 제공해 국정원에는 비밀이 없어졌다. 이제 국정원은 완전히 초토화됐다”(염돈재 전 국정원 1차장/월간조선 20225월호에서 재인용)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 정보기관이 초토화·황폐화 되었다. 정보기관은 ‘국가안보와 국익 수호’를 위해 합법과 비합법의 영역을 넘나들 수 있게 국가가 보장한 유일한 기관이다. 상명하복·비밀엄수가 생명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무한 충성심을 가지고 궂은 일(dirty job)을 하는 곳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예전의 국정원이 아니다. 사명감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 누가 애써 궂은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니 전문성과 신임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히 떨어지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세 번째, 북한이 대남 적화통일에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노골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이양(2024.1월까지 잠정유예)하는 결정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수사관이 10년, 20년이 걸릴 수도 있는 간첩 색출·처벌 작업(내사와 재판)을 끈기있게 추진해 나가겠는가? 사실상 개점휴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간첩·종북세력들만 마음 놓고 활개치는 세상이 되었다.

경찰과 정보기관은 임무, 인사관리, 수사기법 등이 엄연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안보는 중복·잉여의 개념이 적용되는 곳이다. 왜 평시에 50만 군대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언제 사용할지도 모를 고가무기를 구입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데 말이다.

덧붙여, 조직의 통합은 인원·예산·노하우(know-how)·협조망 등이 우월한 곳으로 이루어지는 상식과도 전혀 맞지 않는다.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명품시계 제조사와 국내에만 공장이 있는 전자시계사는 각각 운영해 나가는 게 좋지만, 굳이 통합을 해야 한다면 어디로 합치는 것이 좋을까?”라는 질문으로 필자의 생각을 전해본다.

네 번째, 간첩색출·방첩 등 자유 민주주의체제 수호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에 업무의 중점을 두면서 국가안보 공백과 정체성 혼란이라는 큰 문제점을 노정했다. 청와대는 서훈·박지원 원장 내정 사실을 발표하면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개척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했다. 국정원은 북한의 전략전술을 평가하고, 간첩을 잡는 게 주(主) 임무인데, 주객(主客)이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특히 박지원 원장은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수시로 하면서 국정원의 모토를 새긴 원훈석(院訓石)을 통혁당 간첩사건으로 20년간 복역했던 간첩 신영복의 서체로 새기는 상식이하의 행동(2021.6.10)까지 자행했다. 김일성의 악령을 국가정보기관의 앞마당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정치인 출신 원장다운 대통령에 대한 과잉충성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의 영혼(정체성)이 너무나 크게 상처를 받았다.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을 존경한다“(2018.2.9.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시 발언/신영복은 1988년 위장전향서를 쓰고 출소한 후 양심수를 자처하며 활동)

다섯 번째, 또 한편으로는 “정보기관이 정책을 다루는 게 맞느냐?”, “부문 정보기관 지도·협업 시스템 제도화” 등 해묵은 과제도 미해결된 채로 있다.

향후 주요 개편방향 안()

앞서 얘기한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듯하다. 현재 틀을 존중하면서 운영의 묘를 살려나가는 실용적 처방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야당이 의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성사 여부를 떠나 법률·제도적 장치 보완 노력을 계속해 나가면서 ▲정보 수집·평가 시스템 고도화 ▲국가안보실을 비롯한 안보부처와의 유기적 협조체계 구축 ▲그동안 방치되다시피한 대공수사 역량의 정상화에 역점을 두면서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 개척자가 아닌 북한체제 변화를 선도해 나가는 데 역량을 보다 집중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므로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정보공동체’(IC: Intelligence Community) 개념 도입과 법률·제도적 장치 보완을 장기과제로 적극 검토해 나가야 한다. 새로운 정보공동체 도입 문제는 야당도 반대할 명분이 크지 않다. 신임 국정원장은 원(院) 활동의 정상화 노력과 함께 정보기관 대변혁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검토, 제안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중장기적인 개편 방향으로 ①정책부서 원장실과 정보부서 차장실로의 이원화와 협업(‘제왕적 국정원장제 개혁’) ②개편된 원장실과 대통령실 산하 국가안보실과의 일체화(‘정책컨트롤 타워 역할’) ③군, 경찰, 정부 내 안보부처 등 부문정보기관과의 수직적·수평적 업무 시스템 법제화(‘미국식 정보공동체 개념 도입’) ④대공수사권 경찰 이관 무효화(‘대공역량 강화’) ⑤계급정년제 폐지 및 새로운 직무능력 제고 시스템 도입(‘사기 진작·업무 효율성 제고’) 등 5가지 테마를 제안해 본다.

혹시 거대 야당이 피해의식과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 같은 발전방안을 반대한다면, 입법 환경이 바뀌어 질 수 있는 2024년 4월 총선 이후가 좋은 시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은 정보계·학계 등과의 유기적 협조하에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뒷받침해 나갈 새로운 국정원, 자유 대한민국의 정보공동체 상(像)을 진지하게 검토, 논의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결 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반듯한 국가정보기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조직은 국정원이다. 그리고 세계 각국은 세기적 대변혁기를 맞아 국가정보기관의 안보와 국익을 위한 ‘선봉대·신경망’ 역할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특히 김정은은 최근들어 핵·미사일 고도화 질주와 함께 우리를 향한 공갈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핵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 나갈것입니다. 우리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리익을 침탈하려든다면 우리 핵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2022. 4. 25 김정은의 북한군 열병식 연설)

국가정보기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이다. 국정원은 1961년 6월 창설된 이후 영욕(榮辱)의 시간을 거쳤지만, 이미 과거 중앙정보부나 국가안전기획부와 같은 무소불위의 인권침해·정치개입 기관이 더 이상 아니다. 그동안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개혁을 빌미로 조직이 해체되고, 유능하고 경험많은 전문가들이 잘려 나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법률·제도적 학살’까지 당하였다. 정보기관의 특성상 그 속살을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문제점이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비정상일 것이다.

국정원을 조속히 정상화시켜 나가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새로운 괴물이 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다양한 견제·감독 장치하에서 ‘일만큼은 제대로 할수 있는 조직’ ▲안보와 국익을 막후에서 선도·지원해 나가는 ‘지능형 네트워크 정보기관’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과 국정원에 제안한다. 우선 급한대로 ▲국정원이 주체가 되어 안보부처 간 정보공유시스템과 국민 개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안보·국익 첩보 제공을 위한 통합정보시스템(인센티브식 보상제)’을 구축해 보자. 그런 가운데 ▲법률적·제도적으로 국가안보실·국정원·군·경찰·안보부처 모두가 참여하는 ‘정보공동체’를 창설하는 문제도 진지하게 검토해 나가길 바란다.

국가안보기관이 바르게 서야, 선진 자유 대한민국 건설·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조국 통일이라는 우리의 소망도 차분히 실현해 나갈 수 있다. 안보는 현실이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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