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족’이라는 통일의 당위성을 공유했던 남북한
통일의 사전적 의미는 “나누어진 것들을 합쳐서 하나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크게 두 번의 통일을 맞았다. 첫 번째는 신라의 삼국통일(667년)이고 두 번째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936년)이다. 조선 개국은 통일이라기보다 왕조의 개조였다. 그렇게 500년이 넘는 동안 조선왕조가 지속되어 오다가 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빼앗겼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을 맞이했지만, 미국과 소련 주도로 국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말았다. 결국 한반도에는 서로 상극인 두 체제가 들어서게 되었으며 동족상잔의 비극도 불러왔다.
6·25 이후 남북은 서로 체제경쟁을 하면서도 ‘한민족’이라는 정서로 통일의 당위성에 동의하여 통일방안들을 각각 내놓았다. 물론 그 목표와 지향점이 달라 북한은 ‘연방제’, 남한은 ‘연합제’를 제안했다. 성격과 그 과정의 차이는 분명히 있었지만, 그 목적지는 ‘통일국가’였다. 그래서 북한은 사회주의헌법을 제정(1972년)하기 전까지만 해도 수도를 ‘서울’로 명시하기도 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남조선해방’이라는 명목으로 통일을 지향해 왔다. 남한도 마찬가지로 북한동포 해방과 제2의 광복을 목표로 통일을 염원해 왔으며 헌법에서는 분명하게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천명하고 있다.
김정은의 ‘두 국가론’ 수용, 너무 빠르다
그런데 김정은이 2023년 적대적 두 국가론을 제시하고 2026년 2월과 3월에 당규약과 북한 헌법에 각각 두 국가론을 명시했다고 주장하면서 이재명 정부의 통일부장관은 이 두 국가론에 호응하며 ‘평화적 두 국가론’을 내세웠다. 적대적, 평화적으로 서로 성격은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의 두 국가론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과 정면 배치되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북한의 두 국가론 수용이 너무나 빠른 감이 있다. 왜냐하면 아직은 북한이 이 두 국가론을 당규약과 헌법에 포함시켰는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아직까지는 김정은의 ‘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개정 당규약, 개정 헌법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기정사실화하면 안 된다고 본다. 4월 6일 김여정의 담화를 볼 때 더더욱 그렇다.
김여정의 담화 내용, ‘두 국가론’과 배치
김여정의 담화 내용을 보면 북한이 헌법화한 두 국가론과 분명히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 두 국가론의 핵심은 남한을 제1의 적대국으로 간주하여 ‘상종’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한이 어떻게 나오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상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엄포)이다. 그런데 김여정은 이재명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즉각 반응을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리재명 한국대통령이 6일 자기측무인기의 공화국령공침범사건과 관련하여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불필요한 군사적긴장을 유발시킨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시한다고 언급하였다.”
“대통령이 직접 유감의 뜻을 표하고 재발방지조치를 언급한것은 대단히 다행스럽고 스스로를 위한 현명한 처사라고 우리 정부는 평가한다.”
‘현명한 처사’라고 하면서 김정은이 직접 “솔직하고 대범한 사람의 자세”라고 이 대통령에 대해 평가했다고도 했다. 이것이 제1의 적대국으로 간주하며 상종(상대)도 하지 않는 모습인가? 두 국가론이 헌법화되었다면 김정은과 김여정의 이러한 반응은 헌법을 어기는 행위이다. 최고지도자라서, 백두혈통이기에 헌법을 초월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고 대남전략 차원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두 국가론이 아직 명문화되지 않았다는 평가도 가능하게 해준다.
김여정은 김정은을 앞세워 칭찬도 하면서 동시에 “무모한 일체의 도발행위를 중지”,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르게 된다”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분명한 대남 메시지로 북한의 전략대로 더욱 남한을 몰아가기 위한 포석이다. 이런 점에서 두 국가론은 여전히 대남공세 전략 차원으로 십분 활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북한 언론매체, 이전과 같이 ‘두 국가론’에 대해 함구
김정은은 지난 9차 당대회 연설에서 이재명정부의 ‘유화적인 태도’를 ‘기만’으로 몰아붙이며 당대회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관계로 정립하는 최종적인 중대결단을 내린 데 대해 당과 정부의 불변한 원칙적 입장을 천명했다. 이 내용만 봐서는 당규약을 개정하여 두 국가론을 명문화시켰다고 보여질 수 있다.
그 이전에도 김정은 관련 발언과 지시만으로 우리 정부는 두 국가론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런데 2025년 최고인민회의(14기 13차, 9.20부터) 연설에서 김정은이 “두 국가론을 국법화시킬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그때까지는 두 국가론이 헌법화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작년 9월 20일부로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자각하게 되고 일각에서는 나름의 각성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사실 우리가 진중하고도 면밀하게 접근했다면, 두 국가론이 대남전략적 차원임을 알고 그에 맞는 대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국가론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 사회 안에서 엄청난 혼선과 갈등이 발생했었다. 2024년 1월부터 2025년 9월까지 거의 1년 8개월 동안 북한의 의도대로 끌려다닌 꼴이 되었다.
문제는 이 기간 두 국가론을 수용한 수많은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반대의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두 국가론을 수용한 측면으로 대세가 기울어지는 가운데, ‘평화적 두 국가론’이라는 이상한 논리도 등장했다.
필자는 여러 가지 근거를 통해 줄곧 북한의 두 국가론 헌법화에 대해 의문을 던졌는데, 그중 하나가 북한언론 매체들의 두 국가론에 대한 침묵(함구)이었다. 특히 노동신문이 그랬다. 노동신문은 당의 노선이나 정책이 결정되면 무엇보다 이를 선전하고 선동하기 위해 기사뿐만 아니라 사설(논설, 정론)을 통해 인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 1년 8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노동신문은 사설에서 ‘두 국가론’을 다룬 적이 없었다. 그 흐름(패턴)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9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이 조선노동당의 최종적인 결단 및 두 국가론의 ‘영구화’라고 발언했음에도 이후 노동신문은 기사뿐만 아니라 사설에서도 두 국가론을 다루지 않았다. 또한 최고인민회의(15기) 김정은의 연설(3.23)에서 “특히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헌법화)하고”, “남한을 적국으로 규정했다”고 강력하게 발언했음에도 오늘까지도 노동신문은 기사뿐만 아니라 사설에서도 두 국가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왠지 과거의 패턴 그대로 가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노동신문이 사상무장을 주문하면서 내세운 ‘인민대중제일주의사상’
북한 노동신문 사설의 역할은 당의 노선과 정책을 어떻게든 인민들에게 관철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선전과 선동이 강력하게 작동된다. 3년 넘게 계속해서 사설을 분석하고 평가해 온 필자로서의 느낌이다.
최근 노동신문 사설은 전체 인민들을 향해 9차 당대회 결정 관철이라는 명목으로 사상무장 강화를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수령의 위대함이 곧 국가의 위대함이라는 ‘수령중심의 강국론’이다. 여기에는 수령의 절대적 권위가 곧 국위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이것을 가장 과학적인 국가관이라고 선전하며 ‘수령제일주의’와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사상의 힘’(사상적 자원)의 결정체라고 제시하며 김정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종용하고 있다. 이 사상적 자원을 방위(안보)자산과도 연결시켜 적대세력들을 제압하는 데도 사상의 힘이 절대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두 국가론’은 꺼내지 않는다. 최근 북한이 바꾼 분명한 국가관인데도 말이다.
최근 노동신문 기사의 가장 큰 특징은 ‘인민대중제일주의사상’을 본격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가 정치노선과 통치방식을 의미한다면, ‘인민대중제일주의사상’은 김정은의 통치이념, 지도사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즉, ‘인민대중제일주의사상’은 ‘김정은의 사상’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김정은의 사상’의 대체용어이다. 내세우는 핵심 원리는 김정은의 ‘위민헌신’(이민위천)으로, 전체 인민에게 김정은을 따라 배울 것을 강력 주문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이를 ‘주체의 인민관’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두 국가론 기조 후 바뀐 통일의 당위성
김정은이 두 국가론을 제시하기 전까지만 해도 북한정권의 통일의 당위성은 ‘남조선해방’이었다. 그런데 남한을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하다 보니 기존의 당위성은 무색하게 되었다. 한때 김정은은 ‘통일’은 관심도 없다면서 통일 거부론을 주장하다가 이제는 적대세력의 (군사적)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남한 전복(정복)을 획책하고 있다. 적대국의 공격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논리하에 핵무력 정책도 헌법화시켰던 북한이다. 핵무력 정책의 핵심은 남한에 대한 선제적인 핵 공격 지침이다. 김정은이 남한을 한 민족이 아닌 적대국으로 돌린 가장 큰 원인은 선제 핵 공격에 대한 당위성 확보 차원이다. 국가핵무력정책을 헌법화(2023.9) 시킨 후 3개월 만에 두 국가론을 제시(2023.12)한 것을 볼 때 더더욱 그렇다. 또한, 북한 주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하나의 완충장치로도 작동된다.
북한은 두 국가론을 통해 대남기만전술도 강력하게 전개하고 있다. 통일무용론이 남한사회를 뒤흔들게 하였고, 결국 두 국가론을 수용하는 차원의 ‘평화적 두 국가론’을 내놓게 만들었다. 이 논리는 최근에 통일부장관이 제시한 것이지만 2024년 8월에 이미 한 북한 전문가(현 청와대 통일비서관)가 제안했던 것이다. 두 국가론의 헌법화(2024.10)로 다수의 전문가들이 받아들이기도 전에 내놓은 발상으로 얼마나 성급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앞서 밝혔지만, 두 국가론은 2024년 10월에도 확실히 헌법화가 되지 않았으며 이번에도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개정 당규약과 개정 헌법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성급한 두 국가론 수용, 통일정책에 혼선만 초래
남한에 대한 선제 핵공격을 위한 방편으로 대두된 김정은의 (적대적인) 두 국가론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적극적인 대응보다는 수용하는 측면에서 통일부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 제시는 너무나 지나친 감이 있다. 왜 정부는 북한의 선제적 핵공격 시사에 대해서마저 강력한 유감 표명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김정은이 이번 9차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에서도 핵무력 정책의 헌법화를 명백히 선언했음에도 그 부당성에 대해서 왜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는가.
‘평화적 두 국가론’을 북한의 연방제가 아닌 남한의 연합제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유지하는 방안이라고 통일비서관은 주장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줘도 남북한의 특수관계를 도외시한 방안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보다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앞세우는 경향이 농후하다. 물론 1987년에 완료된 헌법이기에 1991년 유엔 동시 가입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논리에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연합제’(남북연합)가 1994년 김영삼 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본격적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연합’은 ‘두 국가’가 아닌 ‘두 체제’를 인정한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더욱이 통일방안에 ‘민족’(한민족)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그런데 한민족 개념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두 국가론’을 갖다 붙이는 것은 언어도단에 불과하다. 이것을 답습한 통일부장관은 속히 ‘평화적 두국가론’을 철회하기를 바란다. ‘평화적 두 국가론’은 기존 남북한의 존재 방식과 대한민국의 통일방안을 위태롭게 할 뿐만 아니라, 남북분단을 고착시키며 영구화하는데 그 빌미(단초)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언명령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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