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포커스] 李대통령이 쏘아올린 ‘환단고기’, 대북 메세지로 간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법제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

‘단군’에 대한 남북한 시각의 미묘한 차이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쏘아 올린 ‘환단고기’(桓檀古記/신라~조선시기에 기록되었다고 전해지는 5권의 문헌을 1911년 계연수가 편찬했다고 알려짐. 1979년 이유립에 의해 영인(복사)본이 공개됨)로 다시금 우리 안에 ‘단군’의 존재성에 대해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다. 실존했던 인물인가? 신화적 존재인가?

단군(왕검)이 소개된 역사서인 삼국유사(1281 일연)에서는 인간이 된 곰(웅녀)과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1500년 정도 나라를 다스리다가 1908세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왕운기(1287 이승휴)는 1038년 다스렸다고 했으며 동국통감(1485 서거정이 주도)은 1048년 동안 재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통감은 ‘기원전 2333년’이라는 건국연도의 근거가 되는 책이기도 하다.

국사학계는 삼국유사의 내용을 신화적 묘사(표현)로 받아들이며 단군이 특정 개인의 명칭이 아닌 당시 제사(단군)와 정치(왕검)를 아우르는 지배자들의 직함(책)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한 명이 1500년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수십 명이 통치했다고 받아들이면서 국가(고조선)를 건국하고 다스리는 과정을 신비적으로 신성하게 기록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상고사를 바라보는 주류 기조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단군’을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상식적으로 김씨 3대 부자 독재 정권이기에 단군의 존재를 전면 부정할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정반대다. 해마다 개천절(10.3)에 ‘단군제’를 지내면서 단군을 실존했던 인물로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북한체제에서 단군이 재소환된 이유

북한의 ‘단군’에 대한 인식은 1993년 단군릉 발굴 전후로 극명하게 갈린다. ‘단군’을 봉건지배층이 만들어낸 가공의 신화,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는 조작된 신화라고 부정했던 북한이 단군릉을 발굴하면서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사망하기 직전까지 단군릉 개건 공사현장을 수차례 방문하여 지도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김일성의 지시로 평양 강동군에서 단군릉이 발굴되었을 때, 북한은 이를 “신화 속에 묻혀 있던 민족의 시조를 수령님이 찾아주신 사변”이라고 선전했다. 여기서의 핵심은 단군을 ‘실존 인물’로 확정한 뒤, 그와 김일성을 ‘민족의 시조’와 ‘현대 조선의 시조’라는 관계로 연결시킨 것이다. 북한은 주민들에게 생물학적 조상은 단군이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해줘서 민족을 부활시킨 은인은 김일성이라고 가르쳤다.

또한 북한은 민족의 시조가 평양 땅에 실존했음으로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성은 북한에 있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북한은 단군을 신화가 아닌 실존 인물로 상정하며 평양의 단군릉을 정통성의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남한이 단군을 신화적 인물 또는 한 개인이 아닌 수십 명의 지배자들을 통칭하는 직함이라고 정립해갈 때, 북한은 단군의 유골과 무덤이라는 실체를 내세워 역사 주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1994년 10월, 단군릉이 완공되면서부터 개천절에 ‘단군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우리 국사학계는 평양 단군릉을 고조선이 아닌 고구려 양식(석실묘)으로 평가하면서 북한의 발표를 인정하지 않았다.

‘단군’과 ‘김일성’의 결합: ‘주체연호’에 담긴 역사세습 논리

1997년에 시작된 ‘주체연호’도 단군 조선과 연결된다. 김정일은 “수령님이 민족의 시조를 찾아 주셨다”라는 논리를 내세웠고 그 연장선에서 주체연호를 공포해 ‘단군’에 의해 시작된 민족사를 김일성이 ‘주체 조선’으로 완성했다는 서사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 정당성을 확보해 주었다.

이 시기 ‘단군제’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주체연호를 쓰는 ‘주체 조선’이야말로 단군 조선의 적통임을 선포하는 정치적 의례였다. 남한이 단군을 추상적인 관념으로 모실 때, 북한은 그를 김일성 가문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배경으로 내세운 것이다. 주체연호가 시작된 1997년에 ‘단군제’를 공식적인 국가적 행사로 정례화시킨 이유이다. ‘단군제’에 김정일이나, 김정은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지도자들에게 있어 단군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뒷받침해 주는 역사적 도구이지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 사학계가 지난 수십 년간 공들여온 거창한 프로젝트는 ‘단군’이라는 민족의 시조를 ‘김일성’이라는 현대의 수령으로 잇는 치밀한 혈연적·정치적 계보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역사복원 차원이 아니라 북한정권을 하나의 ‘거대한 민족국가’의 중심에 두면서 남한의 역사까지도 흡입시키려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북한은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외세(미국 등)를 물리치자는 주장을 펼치며 ‘민족공조’를 주문할 때 ‘단군’을 소환했었다. 남한 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종교나 단체들에게 접근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남한의 관련 단체들이 평양을 방문해 북측과 함께 개천절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주체연호’ 폐기와 김정은의 ‘두 국가론’의 연관성

그런데 김정은이 2023년 연말부터 ‘두 국가론’을 제시하면서 기존의 기조가 전면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단군과 주체연호는 필연적으로 남북이 ‘한민족’이라는 것과 ‘통일’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거부한 김정은은 단군제를 폐기하지는 않았지만, 행사의 성격을 격하시켰다. 이전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더라도 당비서급, 특히 통일전선부장의 주도하에 ‘단군민족통일협의회’라는 대남기구가 주관을 했었다. 그만큼 단군제는 ‘우리는 한민족’임을 강조하는 통일전선의 주 무대였었다. 그런데 김정은의 지시로 이 단체가 해체되고 행사주관을 ‘민족유산보호국’이 맡게 되었다. 단군을 그들만의 역사적 자산으로 삼겠다는 신호탄이다.

심지어, 2024년 10월을 전후해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공식매체에서 주체연호 표기가 사실상 중단되기 시작했다. 주체연호는 단군이 시작한 민족사를 김일성이 완성했다는 논리의 결정판이자 북한 인민들에게 김일성이 ‘시간(역사)의 주인’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표식이었다. 유훈통치의 정점으로 세워졌던 이 ‘시간의 축’이 예고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는 북한 체제가 지난 30년 동안 공들여 쌓아온 역사 서사를 통째로 개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체연호 폐기는 김일성의 후광에서 탈피하려는 김정은의 권력 독점욕의 표출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 상징이 ‘우리민족제일주의’에서 ‘우리국가제일주의’로 바뀐 것이다. 북한은 2025년을 ‘위대한 김정은의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김정은 조선’임을 내외적으로 강력히 선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 김정은의 ‘두 국가론’과 정면충돌

북한은 ‘단군’이 ‘김정은 강국’의 역사적 배경이라는 사실을 계속 유지하면서 더 이상 남한과 공유할 수 없는 북한만의 고유문화 자산임을 강력하게 주지시키며 이를 독점하려고 하고 있다. 이때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이 그것을 꼭 의도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남북한이 한 민족임을 북한에게 보내는 하나의 대북 메세지로도 읽혀질 수도 있다. 상고사에 대한 연구를 제고하라는 자체가 ‘단군’이 남북한의 공동유산임을 북한에게 상기시키는 효과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정은의 ‘두 국가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발언으로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공방이 오가면서 때 아닌 역사(상고사) 논쟁으로 사회적으로는 큰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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