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동짓날 북한에서 ‘팥죽’ 대신 ‘팥떡’이 불티나게 팔린 이유는?

국가는 ‘적대적 두 국가’ 외쳐도 주민들 생활은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 강하게 영향 받아

광복지구상업중심 가공음식 매대에서 북한 주민들이 물건을 보고 있다. /사진=북한 대외선전매체 ‘서광’ 홈페이지 화면캡처

올해 동지를 맞아 북한에서 ‘팥죽’이 아니라 ‘팥시루떡’을 먹은 주민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은  남북이 “더 이상 동족이나 동질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과 속설이 북한 주민들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3일 데일리NK 함경북도 소식통은 “올해는 동지(冬至)를 맞아 떡집에 팥떡 주문이 급증해 떡을 파는 사람들이 매우 바쁜 시간을 보냈다”며 “주민들 사이에서 올해는 애동지라 오그랑죽(새알심을 넣은 죽) 대신 팥을 넣거나 묻힌 떡을 먹어야 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지는 24절기 중 22번째 절기로 연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을 말한다. 양력으로는 매년 12월 21일이나 22일 무렵인데 음력은 해마다 다르다. 예로부터 동지가 음력으로 11월 초순이면 ‘애동지’, 중순이면 ‘중동지’, 하순이면 ‘노동지’라고 구분했다. 올해 동지는 음력 11월 3일이어서 애동지에 해당하는데, 애동지는 ‘아기 동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애동지에 팥죽이 아니라 ‘팥시루떡’을 쪄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아기’라는 뜻이 담겨 있는 애동지에 ‘죽음’과 비슷한 발음을 가진 ‘죽’을 쑤어 먹으면 부정함이 아이에게 옮겨 아이가 죽거나 우환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이 아직도 이런 속설을 이야기하며 올해 동지에 팥죽이 아니라 팥이 들어간 떡을 해 먹은 것이다. 소식통은 “회령에서는 올해가 애동지이기 때문에 팥이 들어간 떡을 먹어야 액운을 막고 일이 잘 풀린다는 얘기가 돌았다”며 “이런 소문은 단순한 입소문에 그치지 않고 떡을 주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실제로 회령시에서 10년 넘게 떡을 만들어 판매해온 한 50대 주민 A씨는 최근 평소보다 훨씬 분주한 나날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코로나 이후로 떡이 잘 팔리지 않아 장사를 접어야 하나 고민도 했었는데 12월 들어 동지에 떡을 먹어야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최근에 전화 주문이 많이 늘었다”며 “떡이 좀 팔리겠구나 싶었는데 25kg가 넘는 주문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은 몸이 힘들어도 오랜만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즐겁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 같은 현상은 함경북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양강도 혜산시에서도 비슷한 소문이 돌면서 떡 상인들이 오랜만에 호황을 맞고 있다는 전언이다.

소식통은 “그동안 동지날이면 감자·입쌀·찹쌀가루로 오그랭이를 빚어 콩을 넣은 오그랑죽을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면서 “하지만 올해는 ‘팥이 들어간 떡을 먹어야 좋다’는 말이 퍼지면서 기존의 동지 풍습에 대한 인식이 순식간에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 단위로 미리 주문하는 주민들이 늘면서 떡집들은 이미 수입이 크게 올랐고, 낱개로 떡을 사는 주민들도 많아 길거리 떡 장사꾼들 역시 평소보다 벌이가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일부 상인들은 “이번 동지를 계기로 겨우 숨통이 트였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최근 북한 주민 사회에서는 “애동지에는 팥떡을 먹어야 액운을 막는다”는 소문이 퍼지며 떡 상인들의 수입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북한 당국이 강조해온 공식적인 동짓날 풍습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와 관련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21일 ‘동지날의 유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동지날 팥죽을 먹으면 겨울철 감기에 잘 걸리지 않고, 오그랑이를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전통을 소개했다. 또 동지죽을 나누며 한 해를 돌아보고 이웃과 화목을 도모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선택은 달랐다. 우리 민족의 전통 풍습에 따라 팥죽이나 오그랑죽보다 떡을 찾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더욱이 북한 주민들은 오랫동안 경제난을 겪다보니 액운을 쫓아낸다는 말에 더 쉽게 현혹되는 것으로도 평가된다. 소식통은 “이제는 주민들이 생활난을 너무 오래 겪다 보니, 누군가 ‘이걸 하면 안 좋다’고 말하면 그 이유를 따지기보다 어떻게든 나쁜 운을 피하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고 전했다.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떡 장사꾼들이 장사가 안 되니 일부러 말을 만들어 퍼뜨린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다수 주민들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돈을 들여 떡을 사 먹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이번 동지에만 나타난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 북한 주민들은 정월대보름이나 추석 등 주요 명절 때마다 ‘어떤 음식을 먹어야 탈이 없다’, ‘이걸 해야 복이 들어온다’는 속설을 믿으며 오래된 풍습을 남한보다 철저히 따르는 모습을 보여왔다.

소식통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 추석이나 동지 같은 고유의 명절을 형식적으로 쇠면서도 실제로는 풍습이나 속설 또는 점쟁이의 말을 더 따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단속과 통제가 심해지고 생계가 갈수록 어려워질수록, 주민들은 오래된 풍습이나 속설, 소문 등을 믿고 따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는 “결국 풍습이나 속설을 따르는 것은 주민들이 처한 생활 현실과 불안 심리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며 “더 잘살아 보려고 하거나 최소한 끼니라도 이어가기 위해 하는 이런 행위를 국가가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들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