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국민을 버린 ‘국민주권정부’?

2024년 8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일부 남북관계관리단에서 열린 ‘납북·억류·강제실종 문제 국제연대를 위한 가족들의 호소 공청회’에서 억류자 최춘길 씨 가족 최진영 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고현철, 함진우, 김원호. 현재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의 이름이다. 북한에서 국가전복음모죄와 간첩죄 등 혐의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억류된 지 10년이 넘어간다. 가족들은 그들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고 있다. 제발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그동안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지난 정권 시기 통일부는 억류자 문제 해결을 위한 장관 직속 대책팀을 신설했고, 이들의 송환을 염원하는 ‘물망초’ 홍보물을 제작했다. 한 광고회사와 함께 송환을 촉구하는 영상도 만들어 캠페인을 진행했다.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생사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북한 당국의 불법적·반인륜적 행위를 규탄한다”라고도 했다. <2024 북한인권보고서>에도 관련 내용을 수록하여 국내외에 관심을 촉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 때는 공동성명에 사상 처음으로 ‘억류자·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3국 공조’가 명시되기도 했다. 교계의 기도회를 비롯해 민간 차원에서도 이들의 무사 귀환을 위한 다양한 운동이 전개되었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2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 일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했다. “한국 국민이 북한에 잡혀 있다는 게 맞느냐?”라며 국가안보실장에게 반문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아연실색했다. 대통령이 이 사안의 구체적인 시기나 이름까지는 모를 수 있지만, 이 이슈 자체를 처음 듣는다는 건 경악할 일이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 부처별로 업무보고회를 한다. 지난 정권에서 우선순위로 추진되었던 사안을 먼저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인도주의적 차원의 대북정책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지속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대통령, 국가안보실장이 이 사안을 몰랐다면 통일부를 비롯한 국가안보 라인의 직무 유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억류된 국민의 무사 귀환을 최우선적 국가 책무로 규정해도 모자랄 판에 사안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현 정부가 말하는 평화가 가짜 평화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국민이 없는 안보와 평화가 어찌 가능한가.

외신기자 간담회라는 점은 더욱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오히려 외신기자가 이 건에 대해 시기와 이름 등 내용을 상세히 파악하며 질의했다. 억류된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했는데, 정작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국민이 북한에 억류된 사실조차 모르는 대통령과 국가안보실장의 행태를 보며 정작 ‘국민주권정부’라는 이름이 참 부끄럽지 않은지 물어보고 싶다. 집권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 전면 중단에 이어 50여 년간 유지해 온 대북방송마저 끊어버렸다. 지난 11월 23일 해외 순방 기자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인터넷 뒤지면 다 나오는 세상에 대북방송은 바보짓”이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비전향장기수 잡아둬서 무슨 도움이 되냐”며 송환을 언급했다. 비전향장기수는 무조건적으로 돌려보내라면서 정작 북한에 억류된 국민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였다. 결국 억류자 문제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다’라고 한 건 북한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안에만 관심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오로지 김정은과의 대화에 목매 ‘북한 주민’이 아닌 ‘김정은만을 위한’ 조치로 구애하고 있다.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이라는 허울 아래 남북대화를 강조하지만, 김정은이 적대적 두 국가를 명시한 이상 남북대화 가능성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한다. 억울하게 억류되어 생사를 알 수 없는 국민 생명 하나조차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정녕 나라인가. 지금이라도 간절히 부탁드린다. 제발 그분들이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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