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밖 북한] 대집단체조와 열병식,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2일 “조선노동당 창건 80돐(주년) 경축 군중시위 및 횃불야회가 전날(11일)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한 밤이었다. 지난 10월 9일과 10일 밤, 평양에서 열린 대집단체조와 열병식을 보며 든 생각이다. 북한의 당 창건 80주년을 맞아 개최된 행사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대집단체조였다. 지난 2020년 이후 5년 만에 재개된 이번 대집단체조 공연에서 김정은은 무려 10번이나 엄지척을 들어 올렸다. 김정은이 지금까지 엄지척을 이토록 많이 한 적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왜 김정은은 이번 공연에 대만족했을까?

무엇보다 이번 대집단체조는 김정은의 치적으로 시작해서, 김정은조선으로 끝났다. 원래 아리랑으로 대변되는 대집단체조는 김일성의 항일 무장투쟁 시기부터 현재까지를 주로 다루는데, 이번에는 김일성 관련 부분은 완전히 삭제했다. 서막부터 김정은이 제시한 새시대 5대 당건설노선이 배경대에 새겨졌고, 마지막은 김정은조선이여 무궁번영하라는 문구였다. 기존 아리랑 공연 때와 비교하면 어린아이들이 등장하는 <세상에 부럼없어라> 부분만 같은 형식이었다. 특공무술 시범까지 포함한 건 이례적인데 이는 러시아 파병에 따른 혁명적 강군을 선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대집단체조는 지금까지 북한의 외화벌이를 위한 주요한 수단이었다. 김정은이 대만족을 표시한 만큼 앞으로 이 공연은 체제 결속 차원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고, 외화벌이를 위해 관광객들에게 공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10만명 이상이 동원되며, 아동 착취와 인권유린의 상징인 이 행사가 재개된 것에 울분을 감출 수 없다. 어린아이들이 김정은에 충성을 외치며 두 발로 뛰는 모습이, 배경대에서 카드 섹션을 하는 어린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이, 1년 이상 동원되어 김정은만을 위한 행사에 한 인간의 삶을 옥죄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 체제인가. 저런 체제를 존중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만약 자기 자녀가 저 자리에 있다 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대집단체조에 이어 열병식은 또 어떠했던가. 열병식이 열리는 두어 시간 내내 세찬 빗줄기가 광장을 덮었는데도 열병식 참석 군인들은 물론 꽃술과 인공기를 흔들며 선전 구호를 새겨 넣는 일반 참석자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앞선 대기시간까지 감안하면 서너 시간은 족히 그 세찬 빗줄기를 맨몸으로 맞았을 것으로 보인다. 열병식에서 선보인 무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사실 광장을 가득 메우고 선 수만명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그야말로 땅에 묻혔다.

지난 12일에는 이번 당 창건 80돌 열병식 및 횃불야회 등 주요 행사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대집단체조 공연이 다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이 직접 연설까지 했는데, 연설 중에 “가을비에 찬바람까지 싸늘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내용이 있다. 김정은 자신도 그날의 날씨가 혹독했음을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열병식과 대집단체조가 개최된 지난 이틀간 평양의 밤은 독재체제의  전형을 보여준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시간이었다.

인간이 아닌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독재자 한 사람의 선전을 위해 그토록 많은 이들이 동원되는 참담한 현장이었다. 김정은 결사옹위와 절대충성, 절대복종을 외치며 김정은조선을 새겨넣은 장면에서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기이한, 잔인한 쇼라 부르고 싶은 대집단체조를 재개한 김정은의 죄악은 반드시 역사의 단두대에 올라야 한다. 인류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두 행사는 북한만이 할 수 있는, 아니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인권유린 범죄 행위다.

열병식에 등장한 소년근위대는 말 그대로 청소년들이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총칼은 최악의 인권유린을 보여주는 전형이다.

김정은의 폭정이 날이 갈수록 악랄해 지는데 더 문제는 그런 집단을 제어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도 똑같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실은 북한의 열병식을 두고 ‘내부 행사’라고 표현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그토록 반독재, 인권을 외치던 이들이 왜 저 장면을 눈 뜨고 보면서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말하지 않는지 그저 의아할 뿐이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분명 조국이 아닌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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