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5일 5000t급 신형 다목적 공격형 구축함 ‘최현호’ 진수식에 참석해 해군 구축함 작전 구역을 설명하며 ‘중간계선해역’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5월 19일에는 서해상 우리 영토인 북방한계선(NLL) 이남에 위치한 백령·대청·소청도 일대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정 신청에 대해 서면으로 이의 제기를 하였다. 이를 두고 그 배경에는 NLL 무력화 의도에 따른 안보적 이유가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북한 관영매체는 중간계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는 않았으나, 2023년 12월 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근거해 북한이 주장하는 새로운 해상 경계선 설정을 위한 전략으로 볼 여지가 있다. 서북도서 주변 해역이 남측 신청으로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될 경우, 국제기구가 해당 지역을 남측 영해라고 공인하게 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NLL 무력화 및 서해 분쟁수역화 차원에서 서북도서 세계지질공원 지정을 반대한 것 아니겠냐는 뜻이다.
앞서 북한은 2024년 1월 15일 제14기 제10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북한 사회주의헌법에 영토·영공·영해 관련 조항을 신설할 것을 지시, “한국 괴뢰들이 국제법적 근거나 합법적 명분도 없는 유령선인 ‘북방한계선’이라는 선을 고수해보려고 발악하고 있다”며 NLL 무력화를 시도하였다. 당시 김 위원장은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 국경선을 넘을 시, 전쟁 도발로 간주할 것을 밝히기도 하였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이 서해 NLL을 무시하고 이 해역에 해상 국경선을 그어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보도(2.15)한 바 있다. 같은 해 10월 7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통일 관련 조항 삭제와 새로운 국경선을 규정하는 영토조항 신설이 예측되며 NLL 문제는 다시금 수면화 되었다. 다만, 이후 개정 헌법상 영토조항 신설 여부 및 관련 내용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은 서해 일대 해상 경계선으로 △1999년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2000년 서해 통항질서 이후 현재 2007년 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 등을 계기로 NLL 기준 북쪽으로 그어진 해상경비계선을 해상 경계선으로 주장해 왔다.
북한의 해상국경선 획정과 북방한계선(NLL) 문제의 전제
수십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NLL 문제는 우선, 남북한 관계의 법적 애매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제3조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1991) 및 남북한 각각의 외교관계 수립 등 남북한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상충관계가 존재한다. 남북한은 분명 특수 관계에 해당하나, 엄연히 유엔 회원국으로 국제사회에서 별도의 주체성을 보유한 현실을 감안할 때, 남북한 간 해상경계 문제를 검토함에 있어서 국제법적 차원 외 대안 상정이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2023년 12월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로 선언, 남북관계를 두 국가로 규정한 상황에서 해상경계 분쟁 발생 시 제3국 관점에서는 당연히 「유엔해양법협약(1982)」에 근거하게 될 것이다. 즉, 정전협정 자체에 교전 당사자와 정전협정 서명자 간 불일치, 해상분계선 미합의 등 형식상·내용상 문제를 포함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남북한 특수관계와 정전협정에 기반해 NLL의 정당화를 통한 북한의 해상국경선 획정 시 대응 방안을 외교·안보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시급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후, NLL에 대해 비일관된 입장을 보여 왔다. 1972년 NLL 경계획정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북한은 20여 년 동안 NLL을 남북한 해상분계선으로 인정, 1972년 이후에도 NLL 실효성을 사실상 인정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일례로 △1984년 9월 수해 구호물자 수송 △1993년 5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한국 비행정보구역 수정 △1998년 1월 한국비행정보구역 설정 △2002년 12월 대청도 북방에서 좌초된 승조원 인계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반대로 연평해전, 서해교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이 NLL 효력 자체를 부인하고 군사적 충돌을 야기한 적도 있다. 즉, 북한은 자신들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NLL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는 비일관성을 보여 온 측면이 크다.
NLL 관련 「정전협정(1953)」의 해석
정전협정의 해석 방식에 따른 NLL의 정당성 여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전협정 상 해상분계선 획정에 관한 통상적 의미의 구체적인 합의는 없다. 정전협정 제2조는 해상의 군사분계선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전협정 체결 당시 사정과 그 체결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 남북한 합의, 북한의 묵인(acquiescence) 관행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정전협정은 교전 당사자 간의 수역을 분리시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정전협정은 전면 휴전을 위해 각 사령관이 국가, 국제기구, 교전단체를 대표해 체결된 조약으로써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1969)」의 적용 대상인 국가 간 조약은 아니나, “국가와 국제법의 다른 주체 간 체결되는 국제적 합의”로 광의의 조약에 해당한다. 비엔나협약에 따르면 조약 해석은 크게 △첫째, “통상적 의미”를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경우와 △둘째, “통상적 의미”뿐만 아니라 “대상과 목적”, “문맥”, “추후의 합의”, “추후 관행”, “체결 시 사정” 등 다양한 요소가 모두 고려되는 경우로 구분된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상기한 두 번째 경우에 기반한 해석을 한 바 있으며, 관련 사례로는 프레아 비히어 사원 사건(Case Concerning the Temple of Preah Vihear Case; Cambodia v. Thailand)이 있다. 즉, NLL의 국제법적 정당성 여부는 정전협정 해석 방식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다.
북한의 해상국경선 획정과 「유엔해양법협약」 적용의 문제
남북한 해양경계획정은 양측의 합의에 따라 해양법협약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으나, 북한은 자신에게 유리한 서해 5도 주변 수역에 한정해 해양법협약의 적용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남북한 모든 해역에 해양법협약을 적용 시 안보적·경제적 측면에서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볼 측면도 있으나, 북한이 일괄 적용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7년 북한은 해양법협약에서 인정한 12해리 원칙, 등거리 원칙 등 기준으로 경계선을 발표한 바 있다. 북한이 해상국경선 획정 관련해 헌법 개정 시 2007년 경비계선 기준으로 해양법협약을 염두에 두고 일부 수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추후 아전인수식으로 왜곡되어 적용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에 남북한 합의가 불가해 해양법협약에 의거한 경계획정 교섭 진행 시 △NLL의 법적 지위가 취약해지고 △경계획정 교섭이 장기화되며 △무력 충돌 시 제3국이 해양법협약을 근거로 판단하는 등 각종 문제 발생이 예상된다. 북한이 해상국경선을 획정해 해양법협약 적용 논의가 시작되는 즉시, NLL의 법적 지위는 더욱 취약해질 전망이다.
NLL은 정전체제 하에 사실상 규범력을 지닌 해상분계선
정전협정 체결 당시 설정된 NLL은 특수한 한반도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논의가 가능하다. NLL은 지난 70여 년간 남북한 사이 군사적 긴장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여, 군사력을 분리한 실질적 경계선으로 기능해 왔다는 점에서 일종의 현상(status quo)으로 굳어졌다는 주장이다. 정전협정도 국가와 국제법의 다른 주체 간의 국제적 합의로 조약에 해당, 또한 국제법도 국가 생존을 위한 사실적 해석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비록 많은 관행이 존재하지는 않으나, 국제법상 유추(analogy)를 적용할 수 있는 사안으로서 보충적 관행(practice)에 의해 추가 합의 관련한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한편, NLL의 국제법적 정당성 관련 이론적 근거로 역사적 응고설(historical consolidation)보다는 20여 년 간의 묵인(acquiescence)을 활용하는 것이 적합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남북한 관계 규정 전환과 법적 효력 관련 논란이 있는 남북기본합의서 등 법적 근거가 취약해진 현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응고설은 영토분쟁에 적용된 사례가 없을뿐더러 판단 기준도 부재하다. 정전협정 체결 후 NLL을 20여 년간 평화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의 묵인이 우리에게 매우 유리한 논리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므로 이에 유념해야 한다. 즉, NLL은 남북기본합의서 제11조 규정에 따라 묵인의 효과가 발생한 일종의 불가침 경계선으로서 규정 가능할 것이다.
NLL을 해양법협약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합
NLL 문제를 해양법협약의 틀 안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는 정전협정 체제를 해양법협약으로 수정하려는 노력으로 귀결된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해양법협약 제반 원칙에 기초해 경계획정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실효적 군사분계선이 존재하는 남북한에 일반적인 해상경계획정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부적합한 측면이 크다. 북한이 남북한 관계를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이를 헌법 개정으로 공고히 하더라도, 현 상태로 정전협정 유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우리가 견지하는 이상 NLL 관련 섣부른 입장 변화는 불필요한 것이다.
북한의 해상국경선 획정 문제 발생 시 접근 전략 및 방향
북한의 해상국경선 획정 문제 발생 시, 법적 검토를 기초하되 대응 방향에 있어서는 안보적·외교적·경제적 측면을 종합 고려한 최종 목표를 상정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해상국경선 획정은 NLL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으로 이는 종국에 NLL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되므로 결국 일반국제법이 아니라 목적론적 차원에서 해석하고 접근해야 한다. 동맹국 및 우방국 상대로 NLL 문제 관련한 이해 제고를 통해 우리 입장을 지지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노력이 핵심 과제다. 미 국무부 또는 유엔군사령부(UNC) 측과 NLL 관련해 이견이 발생하는 경우를 방지하는 외교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북한이 헌법 개정을 통해 해상국경선을 획정할 경우, 서해 5도 일대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추후 해당 문제가 ICJ에 제기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으므로 사전 대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한반도 안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시, ICJ에 남북한 간에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NLL 존중 필요에 관한 권고적 의견(advisory opinion) 제시가 가능하다. 물론 그 자체로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으나 유엔사무총장, 안보리, 총회 등 권고 의견 제시가 가능하므로 유엔사무총장의 2010년 5월 31일 발생한 가자 함대 사건 조사보고서(Report of the Secretary-General’s Panel of Inquiry on the 31 May 2010 Gaza Flotilla Incident)를 참조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 등 범정부적 차원에서 공통된 최종 목표 하 각각의 역량과 역할에 집중해 주요국 대상으로 NLL 문제 관련 국제사회 공감대 형성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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