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과 김정일 생일, 그리고 김주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생일(2월 16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금수산태양궁전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곳이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2월 16일은 죽은 김정일의 83번째 생일이었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망자(亡者)에 대해서는 생일보다 기일을 중심으로 추모하지만, 북한에서는 독재자 우상화와 체제결속의 계기로 활용하기 위해 생일을 성대히 기념해 오고 있다.

올해도 경축연회, 선물 전달, 충성 맹세 모임, 참배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김정은의 정통성과 애민 리더십을 선전하는데 주안을 두었지만, 최근 들어 김정은의 ‘선대 지우기와 홀로서기’의 일환으로 ‘태양절’(4.15 김일성 생일 명칭)에 이어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이름 사용을 자제하며 ‘2월의 명절’로만 기념하였다.

김정은 참배의 숨은 코드(code)

필자는 17일 국내 언론매체들이 김정은의 김일성·김정일 시신 안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관련 노동신문 보도를 인용하여 ‘2021년 이후 4년 만의 참배’를 헤드라인으로 뽑은 걸 보고, “역시 김정은과 선전일군들은 타고난 연출자구나. 아니나 다를까, 우리 언론은 그대로 받아먹네”라는 단상을 떠올렸다.

북한이 보도한 김정은 참배 장면은 몇 가지 특이점이 보였다. 먼저 언론이 전한 것처럼 4년 만의 참배이다. 둘째, 박정천-리히용-노광철-김재룡-김여정 등 단 5명의 간부만 배석시켰다. 셋째, 사진 컷수도 달랑 4장뿐이었다(최룡해-박태성-조용원 등 당·정·군의 집단참배 장면은 별도 보도). 이 같은 참배 방식과 보도 행태는 내외 이목을 극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김정은의 ‘극화·극장 정치 선동 기법’의 선상에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즉 양립할 수 없는 2가지 행태(선대 지우기와 홀로서기)를 ▲번갈아 ▲눈에 확 뜨이게 ▲자연스럽게 보여줌으로써 진짜 목적인 홀로서기를 큰 거부감이나 반발 없이 달성해 나가는 저의로 평가한다.

김주애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필자는 이 같은 선전선동기법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어린 딸 김주애의 활용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상당수 전문가들이 그녀를 후계자로 단정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극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카메오’(cameo)이자 백두혈통으로의 영구승계 당연시 분위기를 만드는 ‘인트로’(intro)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김주애 부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①핵·미사일 능력 관심도 제고 ②논점 흐리기(시선이 대북제재가 아닌 김주애로 집중되게끔) ③백두혈통 영구승계 당연시 분위기 조성 ④김정은의 미래세대에 대한 애정(친근한 어버이) 부각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세부 내용은 2024.3.18.자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김주애 종합평가: 카메오&인트로’ 참조)

필자의 이 같은 판단은 최근에 퇴임하였거나 현재 재직 중인 국가정보원 원장들의 증언과도 일치된다.

“김주애 공개 활동 내용과 예우 수준을 분석했을 때 현재로서는 김주애가 유력한 후계자로 보인다. 다만, 김정은이 아직 젊고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데다 변수가 많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주시하고 있다.”(2024.1 조태용 국정원장)

“개인적으로는 김주애는 후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정은이 김주애를 통해 북한 주민들한테 자상한 아버지, 따뜻한 아버지의 상을 투여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만약에 후계자를 세운다면 극비리에 준비시키고 절대 대중에 노출되는 일은 안 할 것이다.”(2024.10 김규현 전 국정원장)

“북한·중국·러시아에서 지금까지 여성지도자가 나온 적이 없고 북한은 봉건사회이다. 만약 김정은이 아들이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아들을 생산했을 것이다. 김주애를 계속 띄우는 건 아들 유학을 은폐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후계자가 아닌 김정은 총애를 받는 딸로 보는 것이 맞다.”(2024.10 박지원 전 국정원장)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2020년 4월 ‘김정은 신병이상설 확산 시 집단적-전세계적 정보판단 실패’ 때처럼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의 공식 평가를 부정하고, 단편적이고 자기 확신적인 논리 전개를 통해 김주애를 후계자로 단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국정원도 김주애를 후계자라고 인정했다”는 주장까지도 하고 있는데, 조태용 원장이 언급한 ‘유력한 후계자’라는 6글자만을 편의적으로 과장 해석한 것이다. 전후(前後)에 있는 많은 단서와 변수는 왜 눈을 감는지? 만약에 김주애가 진짜 후계자라면 이번 김정일 행사를 비롯해 모든 행사에 대동하는 게 맞지 않을까?

맺음말

김정은의 연출은 어느 유명 배우의 영화 속 명대사,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가 딱 들어맞는 케이스다. 우리는 김정은을 과소평가해서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된다. 그의 말과 행동에는 다 복선(伏線)이 깔려 있다는 점을 유념하며 상대, 관리해나가야 한다.

김정은의 실체는 콤플렉스와 야망을 지닌 승부사이며, 지금, 이 순간 최대 관심사는 ‘적대적 2국가론’의 완전 정착화, 즉 ①14년간의 체제 운영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아버지·할아버지를 넘어서는 점차적인 완전 홀로서기 ②핵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자신의 정권을 뿌리째 흔들지 모를 한류와 개인주의에 열광하는 북한 MZ세대를 대한민국과 완전 분리해 놓는 것 ③러시아 용병 수출에 따른 군사·경제·외교적 실리를 최대한 획득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김정은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여 전통적·비전통적 도발에 적의 대응하면서, 북녘 동포들에게 우리가 늘 함께 있음을 알리고 진실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안정이 시급하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안타까움을 넘어 화까지 치민다. 헌법재판소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한덕수 국무총리 건이라도 빨리 심의, 결론을 내줘야 할 게 아닌가? 윤석열 대통령과 마은혁 재판관 건은 총알 속도로 밀어붙이면서, 최고의 안보통상전문가, 트럼프와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는 총리 한덕수 직무정지 심의 건은 두 달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심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조차도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세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대한민국의 최고 재판기관이 과연 이래서 되는지? 지난 1월 24일자 칼럼에서 토로한 당부를 다시 한번 그대로 인용하면서 글을 맺는다.

“글을 맺으며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직무 정지·구속되고 대행에 대행(최상목 경제부총리)이 대통령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문제만 해도 굉장히 버거운데 국가안보, 특히 공격적인 트럼프 2기 신행정부와 외교 임무까지 수행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트럼프와 상대할 수 있는 중량감 있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헌법재판소는 무엇보다 경제·외교의 거목 한덕수 총리 직무 정지(탄핵) 건부터 빠르게 심사하여 결론을 내야 할 것이다. 정파적 이익보다는 국민, 국격, 국익을 진정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