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지난 2022년에 채택한 자위경비법 전문을 최근 데일리NK가 입수했다. 법안 마련의 취지는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주민 간 상호 감시의 강도를 높여 재산 탈취와 같은 범죄를 막고 탈북이나 외부 정보 이용 행위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 당국은 지난 2022년 8월 7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21차 전원회의에서 총 4장 46조의 조문으로 구성된 자위경비법을 채택했다.
법 제1장 2조는 자위경비법의 정의를 담고 있는데, “자위경비는 공민들이 온갖 원쑤(원수)들과 불순분자들의 침해로부터 자기가 살며 일하는 거리와 마을, 일터를 자체의 힘으로 지키는 사업”이라고 밝히고 있다.
‘온갖 원쑤들’와 ‘불순분자’들은 한국·미국 등 적대국과 관련된 세력과 탈북 시도자, 외부 정보 유입 등 북한이 반동으로 규정한 행위를 하는 자 등을 포함하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해당 법이 제정됐던 2022년 12월 북한 보위부는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야간에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시도했던 여성 주민을 공개비판 무대에 세워 놓고 자위경비법 준수를 강조하는 투쟁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탈북 시도한 주민 공개비판하며 ‘자위경비법’ 집행 문제점 지적)
이 회의에서 회령시 보위부장은 이 여성이 탈북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인민반이 자위경비법을 어기고 순찰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나라에서 자위경비법을 왜 제정했고 왜 강화해야 하는지 이제 알겠냐”고 경고했다. 주민의 탈북 시도에 대한 책임이 자위경비를 소홀히 한 주민들에게 있다고 질타한 것이다.
이렇듯 자위경비법은 인민반과 직장 등에서의 주민 간 상호 감시 체계를 강화하고 주민들의 사상적 이탈 행위를 막는데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눈에 띄는 점은 인민반의 외부 출입자 통제를 규정한 부분이다.
법 제16조는 “인민반은 경비초소에 외래자 접수 등록대장을 갖춰 놓고 찾아온 사람의 신분 관계와 시간, 찾아온 세대와 돌아간 시간을 정확히 기록하며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은 담당 안전원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주민들은 집을 비우려 할 경우 인민반 경비초소에 알려줘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이 제정된 2022년 당시는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주민들의 지역 간 이동을 통제했던 때로, 북한 당국은 바이러스 차단을 명목으로 주민 세대에 대한 감시를 한층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또 법 제22조는 “경비성원은 근무진출 전 또는 근무수행과정에 음주를 하거나 근무를 수행하면서 장기 놀이와 같은 오락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손전화로 영화, 음악 등을 시청하거나 잠을 자거나 초소를 이탈하는 것과 같은 경비근무 수행에 지장이 되는 행동을 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야간 경비를 서는 인원이 아무도 없는 시간에 오히려 일탈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 것이다.
특히 북한은 법 제44조, 제45조, 제46조에 여러 가지 자위경비 질서를 어긴 자에 대한 벌금 처벌과 행정적, 법적 처벌을 세세하게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황현욱 데일리NK AND센터 책임연구원은 “자위경비법이라는 것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경비 활동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 본래 취지인데 자위경비 체계를 국가적 의무로 만들기 위해 벌금뿐만 아니라 형사 처벌까지 적시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체제 유지를 위해 주민들을 경비에 의무적으로 동원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황 책임연구원은 “표면적으로는 주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결국엔 사회주의 체제 보위가 최종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며 “이 법령으로 인해 주민 간 감시와 통제 도수를 높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