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 우리는-황해북도 편] ‘사랑의 불사약’은 어디에?

[북한 비화] 해열제 한 알 없어 아들, 엄마 떠나 보내…김정은 찬양 선전에 고함쳤다 정신병자로 몰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2년 5월 의약품 공급 실태 점검을 위해 직접 약국을 현지지도하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은 2022년 5월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정치국회의에서 “2020년 2월부터 2년 3개월에 걸쳐 굳건히 지켜온 비상방역 전선에 파공이 생기는 국가 최중대 비상사건이 발생했다”며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이후 북한은 매체를 통해 24시간 약국 운영체제 가동, 24시간 의약품 공급 사업 인민군 투입 사실을 밝히는 한편 김정은이 의심 발열자들을 위해 개인 상비약품을 기부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코로나 확진자 발생에 따라 북한이 최대비상방역체계를 가동하던 2022년 6월 어느 날, 황해북도 사리원시의 한 마을에 사는 여성 주민 김모 씨 가족은 발열 증세를 보인 8살 아들로 인해 모두가 자택에 격리됐다. 집 출입문에 ‘격리’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나오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돼 버린 것이었다.

당시 방역일꾼들은 창문 등을 통해 격리 세대의 상태를 살피곤 했는데, 김 씨는 집에 찾아온 방역일꾼들에게 고열로 끙끙대는 아들의 상황을 알리며 “아무래도 코로나에 걸린 것 같은데 24시간 운영되는 약국에서 해열제라도 사서 먹일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방역일꾼은 “의사가 코로나라고 진단하지도 않았는데 유언비어 같은 발언을 하지 말고 ’유열자‘(발열자)라고만 하라. 약은 자력갱생으로 해결해야 한다. 약이 없으면 꿀과 버드나무 잎을 달이든 파 뿌리를 달이든 해서 먹여보라”고 답하고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김 씨는 방역일꾼이 일러준 대로 아들에게 파 뿌리를 달여 먹이기도 하고 찬물 수건으로 찜질해주기도 했으나 증상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함께 사는 고령의 어머니까지 발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김 씨는 아들에 이어 어머니까지 고통을 호소하자 이대로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어 야심한 밤 몰래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24시간 약국이 운영된다니 약국에 가서 해열제라도 구해오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다 마을을 순찰하던 비상방역 경비조와 맞닥뜨려 강제 귀가 조치됐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튿날 김 씨는 아들을 둘러업고 대문을 열고 나와 무작정 달려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을을 지키고 있던 경비조에 붙잡히고 말았다. 김 씨는 “아들만 살려달라, 아들에게 해열제 두 알만 먹게 해달라”고 외치고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사실 김 씨도 발열 증세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며칠 전부터 식량이 떨어져 맹물로 버티고 있는 가족이 정말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를 철저히 숨겼다. 당시 북한은 격리 기간 중 허가된 시간에 발열 증세가 없는 가족 한 사람이 식량이나 약을 사러 갈 수 있게 했는데, 온 가족이 모두 발열 증세가 있으면 그 기회마저 잃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김 씨까지 온 가족이 모두 ‘유열자’로 등록되면서 별도의 격리 병동에 가게 됐다. 그로부터 보름 후 김 씨는 집으로 돌아갔으나 그의 아들과 어머니는 뼛가루가 돼 돌아왔다. 아들과 어머니는 끝내 숨을 거둔 것이었다.

김 씨는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들과 어머니의 증세가 더 심해지기 전에 뛰쳐나가 약을 구해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가족을 잃었다며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해열제만 있었어도 아들과 어머니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두고두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2년 5월 1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의심 발열자를 위해 내놓은 상비약품이 황해남도 인민들에게 전달됐다면서 관련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그렇게 가족을 떠나보낸 지 반년쯤 지난 2023년 1월 동 여맹(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이 조직한 행사에 참가한 김 씨는 ‘나라 앞에 죄를 지은 자들까지 중앙에서 내려보낸 사랑의 불사약들로 살아났다’는 내용을 접했다.

여맹은 ‘원수님(김정은)께서 가정의 상비약품마저 다 인민의 몸에 부어주신 그 혈연의 정으로, 당중앙이 90여 일 치른 방역 격전으로 인민들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절감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대도 원수님과 당이 지켜줄 것이다’, ‘악성 전염병이라는 전대미문의 동난을 이겨낸 당과 수령의 영도를 받고 있음을 최고의 영광으로 간직하라’고 선전 교양했다.

김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랑의 불사약은 본 적도 없다. 열이 나서 의식을 잃고 격리 병동에 끌려갔다 나오니 아들과 엄마가 뼛가루로 돌아왔는데 그 약은 다 어디로 갔는가”라면서 거짓 선전이라고 고함을 쳤다.

당황한 여맹 일꾼은 “아들과 엄마를 잃고 정신이 돌아 있는 상태니 너무 이 여인의 말에 신경 쓰지 말라”고 급히 무마하면서 안전부에 연락해 김 씨를 즉시 병원으로 호송시켰다. 가족을 잃은 것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실성해 헛말을 했다니. 이보다 더 처량한 신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