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 인터뷰] 세외부담 허덕이는 농민들 “희망 없어”

[신년기획-北 주민에 새해 소망을 묻다③] 농촌 생활 개선 체감 못 해…식수 문제로도 고통

[편집자 주]
3년여 간의 코로나 국경 봉쇄로 심각한 경제난에 처한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꽁꽁 닫혀있던 국경이 서서히 열리고 인적·물적 왕래도 이뤄지고 있지만, 주민들이 체감하는 경기 회복 속도는 느리기만 합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은 어김없이 농업 생산량 증대, 국방력 강화를 외치며 주민들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회복기를 맞은 지금, 북한 주민들이 가장 소망하고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데일리NK는 2024년 새해를 맞아 다양한 북한 주민 인터뷰를 연재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3일 성·중앙기관 일꾼들이 평양시 안의 농장들에서 새해 첫 금요노동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당 중앙위원회 결정 관철 의지를 다졌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농촌 살림집 건설, 농촌 진흥 가속화, 농업 생산성 향상 등을 강조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농업과 농촌 발전을 통한 주민 생활 및 식량 증산에 사활을 건 모양새다.

그렇다면 실제 북한 농촌의 현실은 어떨까.

북한 당국은 농촌 살림집 건설을 독려하고 있지만 자재 부족으로 농촌 주민들의 실질적인 주거 환경 개선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농업 부문에서는 기계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비료와 농약이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외에도 북한 농촌 주민들, 농업 종사자들은 식량 문제, 각종 동원과 세외부담에 신음하고 있다.

데일리NK는 새해를 맞아 평안남도의 한 농민과 인터뷰를 진행해 현재 북한 농촌의 상황을 짚어보고, 농민으로서 올해 바라는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 당국이 농촌 살림집 건설에 집중하고 있는데 농촌의 주거 환경이 나아진 것을 체감하는가? 또 대규모 살림집 건설에 따른 수도나 도로 사정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농촌에 집을 계속 짓고 있다. 밭도 갈아엎어서 집을 짓는다. 토지를 하나라도 개간해 알곡 생산 목표를 달성하라면서 밭을 밀어버리고 거기에 살림집을 짓는 게 맞는 정책인지는 모르겠다.
살림집은 개인이 전부 꾸리고 들어가 살아야 한다. 온돌도 안 놓아져 있다. 뼈다귀 살림집 콘크리트 건물에 문짝 달고 창문에 비닐 박막을 대서 입사(입주)시켰다. 돈이 없으면 세멘트(시멘트) 바닥에 신문지, 이불을 펴놓고 살아야 한다. 그런 집을 백 채 짓는 것보다 바로 들어가 불 때고 밥 먹고 살 수 있는 집 한 채를 짓는 게 낫지 않나. 지금은 속도전의 불바람으로 집을 찍어내는 것처럼 짓고 있는데 하나를 건설해도 사람이 들어가서 살 수 있게 지으면 좋겠다.
수도도 사람들이 자체로 돈 주고 사람 사서 설치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세대주들이 주간에는 일하고 야간에 모여 설치해야 한다. 도로는 집 근처와 앞에 석비레(푸석푸석한 돌이 많이 섞인 흙)를 빨래 망치(방망이)로 다져서 반듯하게 만들고 대로와 연결된 곳들만 세멘트로 포장하는데, 석비레 도로는 비가 오면 구덩이 천지가 된다.”

-지난해 알곡 생산 목표를 달성했다고 하는데 농민들의 식량 사정은 어떤가?

“알곡 생산 목표를 달성했다고 하지만 작년 봄에 약속한 대로 제대로 분배가 이뤄지지 않았다. 간부들은 양정사업소, 농장 반장들과 사업해서 미리 일 년이나 반년 먹을 양곡을 장만해 집이나 양정 창고 여러 곳에 나눠서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농장원들의 식량 사정은 더 힘들어졌다.”

-올해 농업 생산은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나?

“자연 이상 기후 현상이 없고 비료가 잘 보장되면 좋을 것이다. 작년처럼 봄철 전국적 농촌지원 총동원, 여름 김매기, 가을걷이 총동원 전투에 인원도 잘 보장만 되면 잘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농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나? 노동력 부족 외에 자원이나 장비 부족 문제도 겪고 있는지?

“농장원 인원수와 부대 노력 인원수가 아주 부족해 노력 동원과 농촌 지원에 따라야(기대야) 하는 지경이다. 냉상 모판, 기름, 농쟁기, 비료도 부족해 농장은 계속 어려운 상황이다.”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농촌의 수리화, 관개화다.”

-농업 기술 교육은 적절한가?

“기술교육은 작업반이나 분조별로 매주 저녁 한 시간씩 하며 월에는 관리위원회적으로 한번 진행된다. 그런데 전부 형식적이고 이전에 배워준(가르쳐준) 것을 다시 배워준다. 농촌강령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다고 하는데 사실 체감 못 하고 있다. 농장원들은 피곤하다고 아우성친다.”

-농촌 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수돗물이 잘 안 나오는 것이다. 겨울에는 공동 수돗가나 쫄짱(펌프)이 다 얼어서 아낙네들이 더운물을 펄펄 끓여서 가지고 나와 졸짱에 붓는다. 아니면 강물을 길어 끓여 먹어야 한다. 먹는 물 문제가 가장 어렵다. 또 전기 잘 볼 생각은 꿈에도 못 한다.”

-지금 사정이 어려워도 더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이 있나?

“어디서든 내라는 게 산더미고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희망이나 기대감은 없다.”

-올해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농촌 살림집 건설에 돈이나 자재, 후방물자를 내라고 한다. 세외부담이 너무 큰데 이런 것만 개선돼도 좋겠다. 또 농장원들 연간 분배를 공수에 맞게 하고 떼먹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