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주애 단상과 대북정책 16자 원칙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일 “김정은 동지께서는 항공절(지난달 29일)에 즈음해 조선인민군 공군사령부와 제1공군사단 비행연대를 축하방문했다”라고 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딸인 김주애와 함께 비행사들의 시위 비행을 참관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의 어린 딸(2013년생)이 또다시 장안의 화제이다. 언론은 연일 북한 전문가를 자처하는 많은 학자, 정치인, 탈북민들의 ‘김주애 호칭 변화와 특이행보 평가’를 기초로 “후계자로 낙점된 것이 확실하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필자의 머리에 평행이론, 즉 2020년 4월 보름여 동안 국가정보기관의 평가를 무시하고 북한의 장단에 놀아나다 대망신을 당했던 ‘김정은 유고설’ 당시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깝게는 며칠 전 이른새벽 전국민들을 놀라게한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 완패’ 과정에서의 정보판단 대실패도 맴돈다.

북한은 선전선동에 능한 극장국가(劇場國家)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국이 연출하여 보여주는 것만을 봐서는 안된다. 이면과 행간을 읽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듯하다. 도식적이고 흥미본위의 분석과 전망이 넘쳐나고 있다. 상식과 후계문법(관련 내용은 2022.12.16자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김정은 딸 김주애는 카메오’ 참조)에 기초한 분석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김정은은 아직 젊다. 39세밖에 되지 않았다. 고도비만이긴 하지만 철을 씹어도 소화시킬 수 있을 나이다. 김여정도 있고 조용원을 비롯 수백수천의 충성분자들도 곁에 있다. 무엇보다도 10살밖에 안된 딸을 후계자로 만들려면 저렇게 조급하고 떠들썩하게 추진할 리가 없다. 조용히 막후에서 후계수업부터 받게 하는 게 순리다.

따라서 북한의 상궤를 벗어난 김주애 띄우기는 《김정은의 김정은에 의한 김정은을 위한 고도의 연출》, 즉 자식을 미래세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형상화(icon)함으로써 ▲핵개발 당위성(핵무기=체제안전 담보)과 자신의 리더십을 내외에 각인시키는 것은 물론 ▲이른바 백두혈통으로의 영구세습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속셈이 있을 개연성이 상당하다.

4대세습의 노정은 아직은 멀고 먼 길이다. 수많은 변수도 도사리고 있다. 후계이론과 관례에 따르면 김정은 아들이 우선적 고려대상이다. 혹여나 김정은의 장남이 존재치 않아 딸이 후계자가 된다고 한들 그 무슨 큰 변화, 영향이 있을까? 지금 우리가 관심을 두고 집중해야할 일은 ▲후계자 문제가 아니라 ▲김정은 독재정권의 반평화·반인륜적 만행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전술 수립과 부단한 노력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북핵 무력화와 비핵화, 4대 독재세습체제 출현 예방, 주민 기본권 신장 등을 통한 비정상적인 북한체제 변화와 우리 국민들의 북한 바로알기가 핵심 행동목표가 되어야 한다.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主動作爲)-적수천석(滴水穿石)≫! 필자가 독재자 김정은을 바르게 상대하고 자유 통일한국을 건설해 나가기 위한 길로 강조하고 있는 16자(字) 원칙이다. 숲을 보는 걸 중시하는 접근법이니 지금 시기에 맞는 제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저술·강연은 물론 칼럼의 말미에 자주 인용하고 있어 의미를 확인하는 질문도 가끔 받는다.

그 답은 간단하다. 북한의 이중성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이 멀고 험난한 노정이라는 점을 압축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핵심 키워드(key-word)는 능동적 대비와 장기 마인드의 중요성이다.

북한체제 이중적 성격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쳐 ‘전(全) 한반도 공산화 통일’을 체제목표로 정세환경 변화에 따라 도발과 대화를 선택적으로 병행하는 《담담타타 타타담담(談談打打 打打談談)》 양면전술을 구사해 오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우리에게 ①주적(主敵)이자 ②대화상대방(counterpart) 이기도 하다. 헌법도 이를 반영하여 대통령에게 ‘국가안전보장과 자유민주통일’의 2가지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유 대한민국은 튼튼한 안보태세와 자유·평화·번영을 핵심 기조로 하여 ①북한의 도발과 통일전선전술에 대해 한시도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②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도 우리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추진해 나가야 하며 심지어 북한의 가짜 대화전술에 대해서도 역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③한편 북한사회를 밑으로부터 변화시켜 나가는 공세적인 노력도 국제사회와 긴밀히 연대하며 병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16자 원칙

첫 번째는 유비무환(有備無患) 정신이다. “만사불여 튼튼”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미리 충분히 대비해 놓는 게 현명하다는 말이다. 개인이나 국가가 꼭 새겨 들어야할 격언이다.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자유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1953.10.1)한 것을 들수 있다. 세계최강국 미국과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두동강까지난 최빈국 대한민국이 ≪상호≫라는 단어가 들어간 방위조약을 체결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 대통령의 혜안이 아닐 수 없으며 대한민국의 기적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주 독립국가 위상 확보, 튼튼한 안보태세 구축, 국가발전 기반 마련이라는 3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어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어려운 경제여건하에서도 국군 전력증강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율곡 사업’(1974~1986년),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과 정상회담을 통해 ‘핵에는 핵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공식문서화한 ‘워싱턴선언’(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2023.4.26.),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국방개혁 4.0’ 등도 좋은 사례이다.

이제부터는 미국과의 협조하에 확장억제력 제도화에 주력하면서, ‘핵활동 자주권 확대, 자체 핵무장’과 같은 플랜C도 막후 협의해 나갈 때이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기치로 내건 트럼프가 재집권할 가능성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정신이 필요한 시기이다.

두 번째는 국론통합(國論統合)이다. 역사는 국민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열되면 국가가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오늘 대한민국이 처한 실상은 사뭇 다르다. 이념, 정파, 지역 등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북한은 이런 현상을 놓치지 않는다. 지하당 구축, 사이버 여론조작 등 갖가지 공작과 통일전선전술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횡행한다.

국가안보 문제만큼은 국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양 극단은 어쩔수 없다. 그렇지만 70% 정도의 상식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중요하다. 논의 단계에서 다양한 의견은 민주사회의 힘이다.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 정책이 결정되면 그때부터는 하나가 되는 것도 민주주의의 룰이다(different voices, one action).

최근 우리 사회에는 정율성, 홍범도 정체성 논란을 겪으면서 선열들의 일제식민지 및 건국, 6.25전쟁 시기의 공(功)과 과(過)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각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한민국이 보다 열린 사회, 반듯한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필자는 이런 분위기가 역대 대통령 13명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직 대통령이나 특정 진영의 편을 들기 위해서는 절대 아니다. 대통령들 모두 지난시기 국가발전 과정에서 나름대로 큰 역할을 수행했으며, 앞으로도 구심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자산인 역대 대통령들의 지혜를 함께 모아 나가야 한다.

이제는 국민들이 자유 대한민국의 지나온 75년 역사를 정확히 알고 다가올 100년, 1000년을 대비해 나가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을 최선두에서 이끈 역대 대통령들의 명과 암을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진정한 국민통합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8월 필자가 작성한 ≪‘대통령의 날’을 만들자≫글이 그 의의와 발전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전재한다.

국가의 품격은 국민 스스로가 만든다. 대한민국이 건국된지도 어느덧 75년의 시간이 흘렀다. 왕정이나 공산전체주의가 아닌 민주공화국 체제 출범, 6.25전쟁 폐허를 딛고 산업화·민주화 동시 달성 등 수많은 기적의 역사를 써왔다. 이제 자유 대한민국은 더 높아진 국격, 더 커진 국력을 기초로 세계를 선도하는 초일류 국가로 퀀텀 점프(quantum jump: 대약진)를 해야 할 때이다. 이미 그 역량이 경제·문화 등 각 부문별로 상당부분 축적되었고 인정되고 있다. 이같은 제2의 도약을 위한 노력은 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문제는 정치다. 정치가 우리 사회의 발전은 고사하고 분열에 앞장서고 있다. 필자는 이를 시정하기 위한 행동의 하나로 ‘대통령의 날’을 제정하고 ‘대통령 테마파크’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왜 모멘텀이 대통령일까? 그건 대통령이 국가발전을 리드하는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을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제66조)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이고 국민이 대통령이다. 어느덧 숫자도 13명에 달한다.

물론 역사의 한편에서는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큰 아픔도 겪었다. 13명의 대통령 가운데 8명(62%)이 집권말기 또는 퇴임후 불행한 일을 겪었다. 국민들의 곱지않은 시선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야 2명, 피살 1명, 자살 1명, 탄핵·투옥 1명, 투옥 3명은 숨길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흘렀다. 시대환경도 변했다. 이제 역대 대통령들을 흑역사 또는 진영논리가 아니라 ‘공칠과삼’(功七過三)의 발전적 관점에서 봐야 할 때가 되었다. ≪이승만 건국, 윤보선 과도, 박정희 도약, 최규하 관리, 전두환 민생, 노태우 북방, 김영삼 민주, 김대중 화해, 노무현 자주, 이명박 실용, 박근혜 원칙, 문재인 민족, 윤석열 자유≫의 이어달리기 시각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어느 하나라도 없었다면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은 없다.

이제는 계승과 발전,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때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3월 “독재자 이승만 타도”를 외쳤던 4,19혁명 주역 50여명이 이대통령 탄생 148주년(3.26)을 맞아 처음으로 국립현충원 묘역을 참배하고 역사적 화해를 한 것은 큰 울림을 주었다. 이어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일에 즈음하여 역대 대통령 자제들이 처음으로 청와대에서 만나 “자학과 부정의 대통령 역사관에서 벗어나 통합과 긍정의 대통령 문화가 퍼지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 장면과 국부(國父) 동상이 다부동 전적지에 최초로 세워진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8.15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건국운동”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매년 2월 셋째주 월요일을 ‘대통령의 날’로 지정하여 다양한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동서고금의 역사는 말할 나위가 없다. 국내적으로도 제헌절(7.17)과 사법의 날(4.25)은 이미 제정되어 있다. ‘대통령의 날’은 상호존중과 국민통합, 세계중추국가와 통일한국으로 가는 중요한 이정표(里程標)가 될 것이다. 날자는 7월 24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취임식일 등 의미있는 날을 검토하면 좋을듯 하다.

한편 ‘대통령 테마공원’ 조성 문제도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대통령기념관은 개인별로 조성되어 있거나 아예 없는 분도 있다. 마침 우리에게는 지난해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아주 좋은 공간, 즉 초대 대통령부터 집무를 한 역사적 장소 ‘청와대’가 있다. 경내에 <역대 13명 대통령 동상>을 세우고, 실내에 <공동 및 개인별 온·오프라인 전시관>을 만들어 운용하최고의 국민 통합장, 자유 대한민국 학습장,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이상 2023.8.20. 조선일보 기고 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대통령의 날’은 현직 대통령 우상화 또는 홍보를 위한 방안이 아니며 과거-현재-미래 대한민국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탈(脫) 진영적 아이디어다. 따라서 제정 시기도 가능한 빠를수록 좋겠지만 서두르지 말고 검토해 나가면 된다. 적절한 시기로는 ①내년 4월 총선 이후 ②현 대통령 퇴임에 즈음 ③차기 대통령 임기중 등을 생각해 볼수 있다. 방법론적으로는 정부보다 민간이 주체가 되어 논의를 시작해 나가면 좋을 듯 하다.

세 번째는 주동작위(主動作爲)이다. 한반도 문제는 당연히 우리가 제1 당사자이다. 중재자도 촉진자도 아니다. 우리가 주인이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힘이면 힘으로, 머리면 머리로 북한과 세계를 리드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고래싸움에 등이 터지는 작은 새우가 아니다. 적당한 크기로만 자라는 돌고래도 아니다. 우리는 이미 경제, 과학, 문화 등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최근들어서는 외교문제에서도 룰러(ruler)의 자리로 발돋움하고 있다. G7을 넘어 G3로 가고 있다.

한반도, 민족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머물지 말자. 지금은 눈을 세계로 미래로 향하고 힘차게 나아갈 때이다. 그게 바로 국력 증대는 물론 바른 통일로 가는 길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올인하였으나 당사자가 아닌 중재자, 촉진자를 자처하다가 북한과 국제사회로부터 “삶은 소대가리”,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다행히 윤석열정부는 당당하고 원칙있는 대북정책과 자유와 연대의 가치에 기초한 주변국 외교를 적극 전개하고 있다. 대일관계 신속 복원, 미국과의 워싱턴선언 채택,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선언 합의, 중·러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 우크라이나 전쟁과 G7등 유수 국제회의에서의 강화된 목소리(내년 상반기 민주주의정상회의 주최 예정) 등은 주동작위 정신의 대표적인 실천사례라고 할수 있다.

네 번째는 적수천석(滴水穿石)이다. 북핵문제 해결이나 통일한국 건설은 어느 특정정부 임기내 이뤄질 수 없다. 남북한 리더십과 국내외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는 복합적인 이슈이므로 치밀한 전략전술과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 “작은 물방울이 미미한 존재지만. 계속 한곳에 떨어지면 단단한 바위도 뚫을 수 있다”는 격언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내실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필자가 제시한 북한체제 변화를 위한 ‘비핵화, 자유화, 시장화, 친한화, 세계화’의 5화(化) 전략은 이같은 관점에 기초한 것이다. 적수천석의 의미처럼 민관군이 유기적으로 협조하여 ▲서둘거나 욕심내지 말고 ▲긴 안목과 다양한 전략전술을 가지고 ▲국내외 및 온오프라인을 총망라하여 입체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맺음말

“평화는 말이나 종이로 담보될 수 없다”는 사실은 고대부터 최근까지 수많은 전쟁과 국가멸망 과정을 통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자신만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강한 존재이다. 진리나 삶의 지혜를 담은 경구(驚句)가 꼭 필요한 이유다.

4세기 로마제국의 전략가 베제티우스가 강조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은 국가안보를 위한 금과옥조라고 할수 있다. 실제로 영국 사례를 보자. 1938년 9월 체임벌린 총리는 독일과 뮌헨에서 평화협정을 맺은 뒤 귀국하여 협정문을 흔들며 “독일에서 평화를 가지고 명예롭게 귀환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믿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평화롭게 주무십시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지만 히틀러는 채 1년도 안되어 약속을 깨고 체코와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완전히 속은 것이다. 이에 반해 윈스턴 처칠은 “평화는 강자의 특권이고, 약자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며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영국을 이끌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사태도 유사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제 한반도로 눈을 돌려보자. 김정은은 집권이후 핵개발에 올인하였으며, 이제는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2012.4 전문)와 핵능력 고도화 정책기조(2023.9 제4장 국방편)를 명문화하고 실전배치, 선제사용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는 패권경쟁, 무역전쟁,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등으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임기 내내 김정은의 선의에만 기대어 종전선언에 올인한 문재인정부 ▲집권이후 원칙있는 남북관계와 힘에 기초한 평화를 강조하며 한미핵억제력 강화에 진력하고 있는 윤석열정부를 보면서 20세기 중반 영국의 두 장면이 교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하다.

국가안보는 실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정은은 핵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어 협상·경제지원을 조건으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설마’, ‘그래도’와 같은 소망성 사고가 아니라 0.001%의 부정적 가능성에도 대비하며 북한을 상대해 나가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평화냐 전쟁이냐》의 레토릭은 허구이다. 상대를 반평화주의자, 전쟁주의자로 낙인찍고 매도하기 위한 선동 문구일 뿐이다. 평화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모든 인류의 지고지순의 가치, 목적이기 때문이다.

목적과 수단을 같은 위치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 즉 목표인 ‘평화’를 만들고 지켜 나가는 수단에는 ‘대화’도 있고 ‘전쟁’도 있다. 대화만이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하며 전쟁(의지, 능력, 실행)을 배제한다면 상대의 선의에만 기댈 수 밖에 없으며, 역사는 그 길이 궁극적으로 ‘굴종’이나 ‘항복,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힘이 곧 평화다.

남북한 간 해방이후 78년 분단사, 41년 대화교류협력사, 31년 비핵화협상사는 우리게게 일시적으로 장미빛 성과가 보이는 샛길·지름길보다는 묵묵하고 당당하게 큰길·바른길로 가야 한다는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긴 안목을 가지고 근본에 충실하자. 유비무환-국론통합-주동작위-적수천석!

※ 위 정론은 동호인 회보(2023.11/외부 비공개)에 쓴 내용을 기초로 작성됐습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