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인덱스] #14 강제실종, 사라지고 숨겨진 사람들

북한 수감시설 일러스트레이션. /일러스트=DALL.E(AI 이미지 제작 프로그램)

사라지는 사람들

강제실종이란 국가기관 또는 국가의 역할을 자임하는 단체가 사람을 체포·구금 혹은 납치해 그들의 자유가 박탈되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실종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강제실종은 수없이 많은 사례가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빈번하게 발생된다는 면에서 여전히 주시해야 할 범죄의 형태이다.

유엔은 북한에 의한 강제실종 피해자가 한국전쟁 당시 납북자를 포함해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북송 재일 교포를 비롯, 국군포로, 한국전쟁 전시 납북자와 전후 납치 사건인 KAL기 납북 피해자 등을 포함하고 있다.

북한 내부에서의 강제실종도 현재 진행형이다. 김정은 집권 이래 체제 수호를 위해 북한의 정권과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정치범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관리소’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북한은 이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지난 2018년 9월 멍훙웨이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총재가 사라졌고, 그로부터 열흘 뒤 중국 국가감찰위가 그를 억류 중에 있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후에 멍훙웨이의 부인 그레이스 멍이 언론을 통해 밝힌 바는 중국 당국과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일종의 ‘숙청’이 된 것이라 한다.

부인되는 사람들

그레이스 멍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남편의 신변에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남편이 체포된 이후로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고, 변호사를 통해 중국 당국에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남편이 살아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강조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관한 로마 규정 제7조상 강제실종에 의한 반인도범죄를 구성하는 요건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피해자를 체포, 구금 또는 유괴하는 행위, 둘째는 체포, 구금 또는 유괴 행위 자체를 부인하거나 피해자의 운명이나 소재에 대한 정보의 제공을 거절하는 행위이다.

체포된 사람은 누구든지 체포 시에 체포 이유와 피의 사실을 신속히 통고받아야(자유권 규약 제9조 제2항) 한다. 북한의 형사소송법(2021)상에서도 제179조에 48시간 안에 구속의 사유와 구속장소를 가족 등에 알리도록 명백히 규정돼 있는 바다.

북한 당국은 유엔 산하 강제실종실무그룹(WGEID)을 통해 올해만 42건의 강제실종 사건에 대한 정보 제공을 요청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총 404건에 달하는 강제실종 사건에 대해 북한 당국은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며 북한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적대세력의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지린성 투먼에 있는 투먼 변방관리소, 이곳에 중국내 탈북자들이 수용되 있다고 한다. / 사진=데일리NK

왜 실종되는가

유엔 자유권 규약 제9조 제1항 전문에 의하면 누구도 자의적으로 체포·억류되지 아니한다. 2014년 유엔조사위원회 결론에 따라 강제실종이 광범위하게,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중대한 범죄임이 확인된 바, 형사법상 반인도범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보편적 인식이 자리 잡았다. 끊임없는 부인과 은폐의 상황에서도 북한 당국이 강제실종 범죄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제실종은 ‘조직적’ 발생이라는 측면에서 국가기관 및 소속 성원들을 운용하는 방식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보위 사업의 범주는 지도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부문을 망라하며, 집권의 안정화를 방해하는 모든 불안 요소를 ‘광범위하게’ 제거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한다. 국가보위성은 북한 내부 정치뿐 아니라 해외반탐처를 통한 탈북자 북송, 해외 공작 등의 업무를 담당해왔다. 체포, 구금, 납치, 실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의 생명권 침해와 고문 피해 등의 ‘심각성’은 반드시 수반된다.

그리고 북한 국가보위성의 상급 기관은 국무위원회이다. 김일성 시대 중앙인민위원회, 김정일 시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유일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설립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김정은의 그것은 바로 국무위원회인 것이다.

정권의 이득을 위한 평범한 시민들의 실종은 역사성을 가진다. 과거 북송된 재일동포들의 필요성이 전후 복구에 필요한 노동력 확충에 있었다는 점, 강제송환이 중국 수출품에 필요한 수용소 강제 노력 충당을 위한 과정이라는 해석도 있다.(북한인권시민연합, ‘피로 물든 석탄’ 수출, 2021)

실종에 대한 우리의 대책은

실상 강제실종에 대한 정상화는 지금까지 발생한 인권 침해에 대해 철저하고 독립적인 수사가 진행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완벽한 상황이 도래할 때까지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가해자들이 원하는 바다.

인권 문제의 해결은 정부 차원의 해결 의지에 영향을 크게 받으며 스스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는 모습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 ‘강제실종방지협약’에 가입했으며, 본 협약은 강제실종이 자국 형법상 범죄를 구성하도록 당사국에 요구한다. 법적으로 우리의 의무임을 명시했을 때 그 효과는 보다 강력하게 발휘될 것이다. 따라서 발표된 협약의 국내 이행을 위한 강제실종 방지법안의 조속한 입법이 촉구된다. 가해자 처벌과 억류자 관련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이는 필요하다.

중국 또한 북한 강제실종 위기의 관계자이다. 중국에 억류 중인 탈북민들의 대규모 북송 가능성이 커지는 이 상황에서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갔을 때 봉착하는 상황은 강제실종 위기를 포함한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을 포함한 한국, 미국, 영국,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네팔 등 17개국의 54개 비정부기구와 마르주키 다루스만 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등 국제 인사 7명이 지난 2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TJWG, Open letter to Xi Jinping re non-refoulement and refugee status for North Koreans, 2023. 9. 21) 중국이 가입한 유엔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 이행이라는 기본적 의무를 다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중국이 북한 당국의 반인도범죄에 방조(조력)하지 않는 점이 확인될 때까지 관심과 동력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제19회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공식 슬로건 ‘마음이 통하면 미래가 있다’는 메시지가 지금 진정으로 실현돼야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