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블라디보스톡에서 전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건설장에서 작업 중인 북한 노동자. 외벽에 매달려 있는 듯해 매우 위험해 보인다. 2019년 5월 촬영. /사진=강동완 전 동아대 교수 제공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시내의 한 게스트하우스입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라 한국과 블라디보스톡을 오가는 항공편은 모두 막혔습니다. 그나마 24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강원도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뱃길이 유일하게 열려 있어 이곳에 닿을 수 있었네요.

지난 2021년 9월 이곳을 다녀갔으니 거의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그동안 이곳에 체류 중인 북한 노동자들의 실태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비행기 운항이 재개될까 기다렸지만,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어 배편으로라도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24시간 운항에 입국 수속 시간까지 감안하면 꼬박 30시간을 배 안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힘겨운 여정이지만 소기의 성과(?)만 달성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무엇보다 블라디보스톡 건설장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그 많던 북한 노동자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대규모 건설장에서 단체로 합숙하며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개별적으로 청부 일을 하는 북한 노동자를 겨우 한두 명 정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주 가는 재래시장에서 북한 노동자 한 명과 마주했지요. 한눈에 봐도 저는 그를 ‘북한’사람으로, 그는 저를 ‘남조선’사람으로 알아봤지요. 황급히 버스에 오르는 그를 쫓아 바로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한두 마디 건네어 보았습니다.

그는 조국(북한)에 돌아가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길이 막혀서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언제 다시 비행기가 재개될지도 알 수 없다고 했지요. 괜스레 남조선 사람을 만났다는 부담감을 드리지 않으려,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어디인지, 어떤 식당을 가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등에 관해 일부러 물었습니다. 낯선 외국 땅에서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어 참 좋다고 말했다가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습니다. 조선사람이 조선말을 쓰지 그럼 무슨 말을 쓰냐는 기분 좋은 꾸지람이었지요.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경계가 조금 풀어져 ‘이곳에 와서 돈은 많이 벌었는지’,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 그립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비행기가 재개되면 ‘인차’(금방) 돌아갈 거라는 그의 말이 왠지 조금은 슬퍼 보였습니다. 남조선 사람과의 대화가 부담스러웠는지 그는 먼저 내린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더군요. 그러면서 그가 건넨 말은 “안전히 여행하시고, 다음에 또 봅시다”였습니다. 분명 “다음에 또 봅시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헤어질 때 당연히 나누는 인사였지만 그 말이 그토록 아프게 다가오는 건 왜였을까요? 그의 말처럼 과연 우리가 또 볼 수 있을까요?

북조선 사람과 남한 사람 사이에 건넨 일상적인 인사도 비수처럼 꽂혀 분단을 실감케 합니다. 그는 평양으로, 저는 부산으로 돌아가면 만날 수도 없는, 만나서도 아니 될 신분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분단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아픔의 시대를 살고 있지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평양과 블라디보스톡 간 비행기가 재개되어 그가 북한으로 돌아가더라도 제발 건강히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통일되면 만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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