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포커스] ‘김정은 시대’ 본격화, 경제극복 여하에 달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조선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을 맞아 전날(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야간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점점 구체화 되는 김정은 혁명사상

유훈통치탈피 양상으로 작년 12월 22일에 본지에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 워낙 파격적인 전망이라 올해 김정은의 정치행보와 북한의 정치양상을 더 주목하고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전망대로, 북한은 작년 연말(12.26-31) 당중앙위 전원회의(제8기 제6차)를 열어서 김정은이 작년 7월에 새롭게 제시한 ‘당건설사상이론’을 정식의정으로 상정했고 김정은이 직접 나서서 ‘새시대 당건설이론의 5대방향’에 대해 설명하면서 당의 정식노선으로 책정해줄 것을 제의하였으며 전원회의는 이를 채택하여 <새시대 당건설 5대노선>으로 정식화하였다.

이후, 금년 2월 2일자 노동신문 1면기사(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혁명사상은 우리 조국을 끊임없는 전진과 발전에로 힘있게 향도한다)는 김정은의 혁명사상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그중에 가장 대표적으로 내세운 사상이 <새시대 당건설 5대노선>이었다. 더불어, 작년 9월 8일에 법령으로 채택된 <국가핵무력정책>과 2021년 1월에 김정은이 새롭게 제시한 <3대혁명소조운동>(전지역, 전부문에 소조원 파견지침) 및 <새로운 사회주의농촌건설 강령>도 김정은의 혁명사상에 포함시켰다. 이들의 공통점은 김정은에 의해 ‘새롭게’ 제시된 것들이다.

이처럼, 2023년 들어서면서, ‘김정은 혁명사상’(김정은주의)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건군절 열병식(2.8) 다음 날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군대에게 따로 새로운 노선인 <4대강군노선>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제는 ‘김정은 혁명사상’이 실체가 없다는 해석과 평가는 중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건군절 열병식, ‘김정은 시대서막식

김정은이 조선인민군에 새로운 지침을 내린 <4대강군노선>은 ‘정치강군’, ‘사상강군’, ‘도덕강군’(공산주의 도덕), ‘첨단화된 강군’을 말한다. 2월 9일자 노동신문을 보면, <새시대 당건설 5대노선>도 군대에서는 <새시대 강군건설의 총적임무>라는 용어로 적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5대 노선은 ‘정치건설’, ‘조직건설’, ‘사상건설’, ‘규율건설’, ‘작풍건설’을 가리킨다. 이처럼, 군대에서는 ‘정치’와 ‘사상’이 두 번이나 중복되며 반드시 수행해야 할 행동강령으로 하달되고 있다. 노동신문은 건군절 열병식을 통해 인민군대가 이것을 잘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는데, 당건설 5대노선과 4대강군노선의 공통점은 바로 ‘김정은 결사옹위’이다. 열병식 장면을 본 이들은 사열하는 모든 부대원들이 ‘김정은 결사옹위’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노동신문 2월 5일자 정론(위대한 우리의 혁명적무장력)에서는 “혁명군대의 승패여부는 첫째도 둘째도 사상무장에 달려있다”고 하였고 핵무력 강화보다 정치사상강군화가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면서 김정은(수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촉구했다. 급기야, 2월 8일 노동신문 사설(조선인민군은 백승의 력사와 빛내여나가는 최정예혁명강군이다)에서는 조선인민군대를 ‘김정은혁명강군’, ‘수령결사옹위군’으로 지칭하면서 ‘유일적영군체계’, ‘당중앙결사보위전’ 등 군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김정은 사수(死守)에 두었다. 이런 점에서 건군절 열병식은 하나의 충성을 맹세하는 충성 서약식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열병식 내내 김정은의 이름만 외치고 환호하는 것을 보면서, ‘김정은 시대’의 서막식으로도 보였다. 또한 ‘백두혈통 결사옹위’ 구호를 들으면서 4대 세습 굳히기로 돌입했다는 짐작도 하게 했다. 김주애는 4대를 가리키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다.

빨치산 정신의 충성대상은 오직 김정은

지난 열병식의 특이점은 처음으로 부대 사열시, 항일빨치산 투사들의 얼굴을 앞장세웠다는 점인데, 그들을 ‘수령결사옹위’의 화신들로 내세운 것이다. 최근 노동신문에서도 빨치산 정신 계승을 반복해서 계속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23일자 정론(빨치산정신은 오늘도 우리를 부른다)을 보면, 『항일빨치산참가자들의 회상기』(1950년대 말 출간)를 필독서로 하달한 것 같다. 정론은 지난 건군절 열병식이 빨치산 정신의 계승의 역사를 과시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한 나라와 인민의 흥망은 인민대중들의 ‘사상정신’에 달려있다고 하였고 빨치산 정신을 각자의 일터에서, 생활 공간 속에서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를 다시금 내세운 것이다.

그런데, 이 정론의 특이점은 건군절 열병식에 등장했던 빨치산 혁명투사들인 김책, 안길, 최용건, 오중흡, 김일 등의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였는데, 당시, 그들의 충성대상이었던 김일성의 이름은 단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빨치산 정신’은 곧 김일성의 혁명정신이자 사상인데 말이다. 이전 같으면, 김일성의 이름이 꼭 들어가야 할 자리인데, 그냥 ‘혁명의 수령’, ‘자기 수령’, ‘사령관동지’라고만 적시하고 있었다. 의도성이 매우 짙어보였다. 그 이유는 오직 ‘현재의 수령’인 김정은에게 충성의 포커스를 맞추기 위한 조치로 보였다. 유독, 김정은을 가리켜 ‘걸출한 수령’이라고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볼 때 더더욱 그렇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그럼 왜, 굳이 이 시점에 김일성이 연상될 수밖에 없는 ‘빨치산 정신’을 내세우는가 말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조선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을 맞아 전날(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야간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서 항일빨치산과 군 발전에 업적을 남긴 이들의 초상을 등장시켰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빨치산 정신에 담겨 있는 북한 속사정

이 정론(2.23)의 또 하나의 특이점은 항일빨치산 정신을 계승하자고 하면서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항미’, ‘반미’, ‘반제국주의’라는 용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빨치산 정신하면 항일독립투쟁정신이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항미투쟁, 반미, 반제국주의 타도로 연결되는데, 오직, ‘자력갱생’으로만 그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2월 20일자 노동신문 사설(자립의 신념을 백배하자)에서도 자립과 자력갱생에 그 초점을 두었다. 다른 기사들도 빨치산 정신을 내세우면서 반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보다는 자력갱생에 중점을 두었다.

빨치산 정신은 2019년 연말에 김정은이 백두산 정상에 올라가서 <백두산 대학>(백두산혁명전적지 답사행군)을 제시하고 2020년을 ‘정면돌파의 해’로 정하면서 대중실천운동으로 확산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남조선 해방’이라는 사상무장투쟁에 집중되었다. 2021년에도 똑같이 ‘정면돌파의 해’로 그 목표를 정했지만, 당시는 노동력동원으로의 자력갱생의 슬로건은 김정일에 의해 전개되었던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1973년 시작)이었다. 그런데, 2023년, 올해는 시대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서 항일빨치산 당시의 정신을 끌어오고 있는데, 투쟁(항쟁)보다 ‘간고분투’(艱苦奮鬪)정신을 더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북한의 현 상황이 항일빨치산 시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것 아닌가 싶다. 아래는 정론(2.23)의 관련 문장이다.

“그러나 항일빨찌산과 같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한 조건과 환경속에서 단 한치, 한순간의 동요나 변색도 몰랐던 그렇듯 강의한 투사들은 없었다. 인간으로서, 혁명가로서 항일선렬들이 우리의 열렬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고 진정으로 매혹시키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론은 이러한 초인적인 간고분투정신이 수령에 대한 충실성, 충성심에서 나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령관동지(김일성)에 대한 불같은 그리움, 열화같은 매혹과 흠모, 그것이 모진 시련과 고난, 굶주림과 추위 지어 죽음까지도 이겨내게 한 투사들의 힘이였고 불굴의 삶의 정신 적자양이였다.”

이 두 가지가 현재 북한이 내세우는 빨치산 정신의 핵심요소로 북한의 경제적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과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도 수령,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절대 저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주문인 것이다. 이만큼 현재 김정은정권은 민심이완(民心弛緩) 경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심각한 식량난과 아사가 다시금 속출하는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은 시대본격화, 경제극복 여하에 달려

‘김정은 시대’의 본격화는 유훈통치를 탈피한 김정은만의 독자적인 정치, 즉 자기정치에 돌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이 자기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선대 지도자들의 이름을 점점 지울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자신을 가장 부각시켜야 한다. 곧, 유훈통치를 탈피해야 한다. 지난 김정일 생일, 금수산 참배 불참도 이런 측면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앞서 기술했지만, 빨치산 정신을 내세우면서 단 한 번도 김일성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것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2017년, 김정은은 천리마운동을 만리마운동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 서막을 알리는 2023년, 인민대중에게 내세운 구호는 ‘빨치산 정신’ 이다.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항일빨치산 정신하면 인민들은 자연스럽게 김일성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이것을 모르는 김정은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북한내 경제사정이 말이 아닌 것 같다. 아사자 소식이 다시 들려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상황이 이 정도니 김정은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빨치산 정신’을 들고 나와 어떡하든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아니겠는가.

23일자 정론에서 ‘빨치산 정신’으로 일제의 압제에서 버텨냈을 뿐만 아니라 이 정신으로 전후 1950년대(천리마대고조운동)를, 1980년대(속도창조운동)와 고난의 행군시기인 1990년대를 뚫고 왔다고 하면서 2023년도도 이 정신으로 돌파하자는 것을 보면, 현재 북한의 심각한 경제상황을 자인하는 꼴이다. ‘김정은 조선’, ‘김정은 시대’가 제대로 펼쳐질지는 앞으로 경제극복 여하에 달려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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