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포커스]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한 ‘평양문화어보호법’ 무엇인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가 17일부터 18일까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평양문화어보호법’, 한류 부작용 차단용이 지배적 평가

북한이 이달 17일부터 18일까지 양일간에 걸쳐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회의를 김정은이 불참한가운데 진행되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불참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김정은의 헌법적 지위 및 권한의 변동에 의해서이다. 전에는 국가기구로서의 헌법적 직위인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라는 국가기구(최고인민회의 대의원직 수행)에 예속되어 있었는데, 2019년 8월 북한의 새헌법(15차 개헌)을 통해 최고인민회의보다 상위 국가기구가 되었고 그 권위도 높아졌다. 헌법적으로 ‘국무위원장의 명령’이 ‘최고인민회의 법령’보다 상위법이 되었으며 최고인민회의 법령 또한 이제는 국무위원장이 공포하게 되었다. 지난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7차 회의에 참석한 것은 국무위원장에게 새롭게 부여된 ‘최고인민회의 법령공포’를 하기 위함이었고 시정연설을 통해 ‘핵무력정책의 법령화’를 공포했던 것이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회의의 관전 포인트는 세 번째 의안으로 올라와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평양문화어보호법’이다. 이것은 이미 작년 12월 7일 조선중앙통신에 의해서 예고된 바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 법을 2020년 12월에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2021년 9월에 만들어진 ‘청년교양보장법’의 일환으로 받아들여 이 법을 제정한 것이 북한 주민들이 남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남한식 말투를 따라하는 현상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평가했는데, 이는 두 달 앞선 10월에 북한이 남한 영화와 드라마 등을 시청하고 이를 주변에 유포한 10대 학생들을 공개처형한 일로 인해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는 조선중앙통신의 예고대로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하는 문제를 상정했고 채택되어 법 초안을 헌법 해당 조문에 반영시켰다. 여기에 대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 법에 대해 다시 많은 전문가들이 해석하고 평가하였고 많은 언론들이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현재까지 어느 언론기사도 이 법의 핵심을 짚지는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이 법을 한류로 인한 사상침투 방어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행동이 아니라 그 입에서 실수로 서울말투만 나오더라도 강력 처벌 및 조치를 취한다는 식의 해석들로만 무성하다. 또 이런 해석 및 평가가 지배적 의견으로 되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이 법을 만든 목적 및 핵심사안에서는 많이 벗어났다.

외래어뿐만 아니라 사투리중단을 강력촉구

19일자 노동신문을 보면 1면 기사에는 최고인민회의 회의 현황에 대해 전반적인 소개를 하는데, 여기에 ‘평양문화어보호법’ 채택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6면 기사에는 ‘말과 행동을 문화적으로, 도덕적으로’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법과 관련된 기사임을 짐작할 수 있고 그 내용을 보면, 이 법이 어떤 법이고 어떤 목적하에 만들어졌는지 소개하는 기사이다. 전문가들이 적어도 이 기사만 봤더라도 저렇게 수박 겉핥기식의 평가는 안했을 것이다.

먼저, 최고인민회의에서 이 법에 대해 보고하면서 그 법 초안을 설명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확인해보자. 관련 보고자는 강윤석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법 초안을 만든 것을 보면 이미 오랫동안 이 법에 대해 연구하고 준비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법에 대해 소개하면서 아래와 같이 발언을 했다.

“평양문화보호법은 평양문화어를 보호하며 적극 살려나가는 것은 사회주의민족문화발전의 합법칙 적요구이라고 하면서 언어생활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 사업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1.19 노동신문 1면기사 관련 내용)

“평양문화어보호법은 우리 언어생활 령역에서 비규범적인 언어요소들을 배격하고 평양문화 어를 보호하며 적극 살려나갈데 대한 조선로동당의 구상과 의도를 철저히 실현하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규제하고 있다고 하면서 보고자는 해당 법초안을 구체적으로 해설 하였다.”

이 내용만 봐서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이 정확히 무엇인지 감이 잘 안 잡힌다. 한류나 외래어를 철저히 배격하자는 내용으로 충분히 들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비규범적인 언어요소들 배격’하면 바로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한국 드라마를 통한 서울말투(씨)로 이것을 철저히 배격하기 위해 관련법을 만드는 구나라고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신문 6면에 실린 관련 기사에는 한류 현상 배격이라는 내용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평양문화어’라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문화어’는 남한의 ‘표준말’의 대항마 성격이다. 1966년 김일성의 교시에서 남조선이 쓰는 ‘표준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문화어’라는 용어를 사용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따라서, ‘문화어’는 남한식 ‘표준어’라는 말이다. 제6면에 나오는 관련기사가 ‘평양문화어’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이 기사는 말과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먼저 이렇게 설명한다.

“말과 행동에는 그 사람의 모든것이 다 비낀다. 사상감정과 지식정도, 성격과 취미, 문화도덕 적풍모와 수준까지도 말과 행동에서 나타난다. 사람은 문화적이고 도덕적인 말과 행동으로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도 하고 비문화적이며 비도덕적인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인격과 명예를 한순간에 어지럽히기도 한다.”

“누구나 문화성, 도덕성이 없이 되는대로 말하고 례절이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참다운 문명 의 창조자, 향유자는커녕 시대의 락오자로밖에 달리 될수 없다는 것을 똑바로 알고 말과 행동을 문화적으로, 도덕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위 두 문장의 공통점은 그냥 말(언어)이라고 하지 않고 ‘문화적인 말’, ‘도덕적인 말’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여기서 단지 ‘평양말’ 사용을 논하는 것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021년 12월 27일 게재한 평양시 전경. /사진=노동신문·뉴스1

기사도 이 부분을 아래 문장과 같이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

“우리에게는 어휘와 표현이 풍부할 뿐 아니라 문화성, 도덕성에서도 우수한 평양문화어가 있다.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사투리와 외래어를 배격하고 고상하면서도 아름다운 우리의 평양말, 평양문화어를 적극 살려쓸 때 사회와 집단에 화목이 깃들고 사람들사이에 사랑과 정, 의리가 더욱 두터워지게 된다.”

위 문장이 이 기사의 핵심이다. 평양말이 ‘문화어’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며 지방의 사투리를 쓰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언어생활에서 지켜야 할 례의는 이밖에도 사투리와 외래어를 망탕 쓰지 않는 것이다. 사투리나 외래어가 언어생활에 만연되면 고유한 문화어의 진맛을 살릴 수 없고 손상을 입히게 된다.”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사투리와 외래어를 배격하고 고상하면서도 아름다운 우리의 평양말, 평양문화어를 적극 살려쓸 때 사회와 집단에 화목이 깃들고 사람들 사이에 사랑과 정, 의리가 더욱 두터워지게 된다.”

이 두 문장에서 ‘외래어’(서울말 포함)를 언급하며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단어는 ‘사투리’이다. 이 사투리는 북한 지방에서 구사하고 있는 함경도 사투리, 강원도 사투리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투리들을 앞으로 배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를 분명하게 짚어주고 있다.

“모든 사회성원들은 말과 행동을 문화적으로, 도덕적으로 해나감으로써 온 나라에 건전하고 고상한 우리 식의 생활문화를 확립하고 사회주의문명건설을 다그치는데 적극 이바지하여야 할 것이다.”

지방에 사는 인민들 포함해서 전체인민들이 말을 하는데 있어 문화적, 도적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즉, 평양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양문화어보호법’, 북한전지역을 평양말로 통일시키는 것

필자도 이 지점에서 실마리가 잘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 출신 북한학자인 조민희 교수와 여기에 관련해서 전화통화를 했다. 그에 따르면, ‘평양문화어’ 사용 강조는 이미 김일성 시기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본인이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시절, 평양말을 하는 모델 케이스였다고 한다. 많은 학생들 앞에서 김일성을 칭송하는 노래 및 시를 평양말로 또박또박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평양말 사용의 근본 목적은 김일성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며 ‘김일성 결사옹위’정신을 배양하는 또 하나의 통제수단이었다고 했다.

김정일 시기에도 이런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것을 법으로 제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김정은은 이것을 법으로 정한 것이다. 선대 시기는 단지, 충성심 고취 차원에서 부분적으로 진행된 것이지만, 이번에 제정된 법은 전체 생활에 있어서 아예 사투리 사용을 금지하는 것으로 훨씬 강화된 측면이 있다. 6면의 기사는 분명히 그렇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평양말’이 아니라 ‘평양문화어’라고 쓰는 것으로 보이며 이번 ‘평양문화어보호법’은 각 지역 사투리들을 모두 없애고 오직 평양말로 통일화(획일화) 시킨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또한 ‘김정은 결사옹위’를 위한 언어통제수단으로 북한은 2023년 들어서 더욱 강력한 통제시스템을 작동시킨 것이다. 북한은 2022년 11월 18일 <화성-17형> 발사를 성공하면서 ‘김정은 조선’, ‘김정은 시대’를 본격적으로 내세우고 공식화했다. 그리고 김정은이 새롭게 제시한 ‘당건설사상이론’을 지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제8기 제6차)에서 ‘당건설사상 5대노선’이라는 당의 노선으로 채택했는데, 이것의 핵심목적도 전 기관, 전 부문의 ‘김정은의 유일적영도체계확립’ 강화이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채택된 ‘평양문화어보호법’ 또한 ‘김정은 결사옹위’ 차원으로 언어를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것이다. 이것은 차후, 남조선 지역도 평양문화어로 통일시키자는 대남적화, 남조선해방 논리로까지 발전되어질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염두하고 있을지 모른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