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 인터뷰] 농민 “땅만 바라보지 말고 수입도 해야”

[설 기획-北 주민에 새해 소망을 묻다③] "도시로 나갈 수 있기를"…자유로운 직업 선택 원해

[편집자 주]
미증유의 코로나 위기는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국경봉쇄로 무역이 중단되고 장마당이 위축되면서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주민들의 호소가 잇따랐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렇게 모든 것이 부족한 때에도 농업 생산량 증대, 국방력 강화를 외치며 성과를 압박했습니다. 코로나가 삼켜버린 지난 3년을 악착같이 버텨온 북한 주민들. 본격적인 ‘엔데믹’(endemic)을 맞은 지금 그들이 가장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데일리NK는 설을 맞아 각 분야 다양한 직업군의 북한 주민 인터뷰를 연재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합니다.
북한 농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 “농업부문 일꾼들과 근로자들 모두가 주체농법 학습 열의를 비상히 높여나갈 때 다수확의 담보가 튼튼히 마련되고 우리의 농촌 진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최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농촌 건설과 농업생산 환경 개변 사업’ 예산을 크게 늘려 농업 부문 강화에 힘을 실었다. 농업에 투자해 생산성을 높여 식량난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국가가 농업에 예산과 관심을 집중할수록 가장 부담을 느낄 이들은 농민들일 것이다. 과도한 목표 설정에 따른 잦은 검열과 성과 달성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 등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에 데일리NK는 북한의 주요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의 한 농민을 통해 현재 농민들이 처한 상황과 농업 환경, 그리고 농민으로서 올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북한 농민과의 일문일답

-북한이 올해도 농업생산을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농사 준비로 바쁜가.

“연초에 도 농촌경리위원회뿐 아니라 시·군 농촌경영위원회 단위들에서 농장별로 내려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농장원들은 지도기관 성원들보다 더 일찍 새벽에 포전에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라는 지시가 내려지고 있다.
우리 일과는 보통 4시에 기상해 각 가정, 축사, 두엄(퇴비)을 모으고, 모은 두엄을 달구지에 실어 5시에 포전에 보낸다. 그리고 5시 반에 집에 돌아와 세수하고 집 정리를 한다. 아침을 먹고 7시까지 작업반실에 출근해 독보한 후 기술지도원과 관리위원회 지시사항을 받아 포전에 나오면 7시 40분이 된다. 포전에 나가 두엄들이 잘 썩게 나래질을 하고 가마니 흙을 덮는 일을 한다. 잘 썩은 두엄들은 흙갈이 될 포전들에 옮긴다. 이 작업을 일일 진행한다. 올해는 파철, 파지 수매계획이 작년보다는 안 떨어졌다. 본신혁명과업만 잘하라는 게 당의 당부라고 한다.”

-연초부터 바쁜 하루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은 없나.

“농민들의 불만은 너무 일찍 일어나게 하고 출석을 긋고 늦게 퇴근하는 점이다. 옛날 같으면 저녁 6시나 7시에 퇴근했다. 그런데 지금은 황해남도 농업근로자의 경우 무조건 저녁 8시까지 포전이든, 논머리 지대정리든, 축사 두엄치기든 하고 집에 들어가라고 해 불만이 있다. 할 일이 없어도 작업반에 숨어서 앉아 모닥불 피우고 있고 끼리끼리 어디 들어가 있다가 퇴근한다. 실효가 떨어진다.”

-연례행사인 퇴비전투에 주민들이 총동원되고 있다. 이것이 실제 농사에 도움이 되나.

“연초에 거름내기 동원에 사람들이 나온다. 벌 면적보다 사람이 더 많아 새까맣다. 그런데 거름의 질을 따져보려 돌아다녀 보면 질이 형편없다. 어떤 거름은 말 그대로 두엄이 아니고 흙 90%에 인분 10% 버무려서 형식적으로 낸 것이라 오히려 토양에 해가 돼 버려야 할 정도다.”

-지난해 작황은 예년에 비해 어땠나.

“2019년을 기준 삼고 모든 계획을 한다고 도에서 말했다. 그런데 2019년보다는 한참 못하고 2021년과 대비하면 벼는 수확량이 비슷하다. 밀, 보리, 강냉이는 수확량이 2021년에 비해 더 한심하다. 황해남도는 쌀농사가 그나마 잘돼 다른 작물이 안된 일을 비판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올해 농사 전망은 어떻게 보고 있나.

“봄 모내기, 중간 김매기, 가을걷이 때 사람이 잘 보장되는 것과 비료, (비닐)박막, 농쟁기들, 관개수, 전기 보장이 관건이다. 인력, 비료, 물이 잘 보장되면 우리도 대풍 거둘 수 있다고 보는데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작년에는 모내기 전투 때 전국이 악성 전염병 터지면서 국가비상사태였다. 이 때문에 농장원들과 군대들이 모내기했어도 모가 냉상모판에서 제때 벌판으로 나가지 못했다.”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에서 올해 특별하게 내린 조치가 있나.

“황해남도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기간 쌀 점령 고지 수행 명령을 받은 도라 농촌을 적극 지원하라고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시 사람들의 부담이 크다고 들었다. 호미, 낫, 괭이, 손도끼 등 각종 농쟁기부터 시작해 전부 농촌을 집중적으로 도와준다는 방침이 내려지고 있는 것이 다른 때와 대조되는 모습이다. 농장원들 실장갑, 작업복, 양말, 세면도구까지 모아서 가져다주고 농촌을 집중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농사가 잘되려면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까.

“기계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계만 가득 만들어주고 연유(燃油)는 자체로 보장하다시피 한다.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료, 박막, 관개 설비, 부림소, 농기구들은 매해 정비 보강하지 않으면 일 능률을 높이지 못한다. 비료 없이 좋은 낟알 나오지 않고 소가 사람 10명보다 낫다. 국가에서 날씨 예보도 잘해줘야 한다. 다른 나라도 똑같은 날씨, 기후 조건으로 농사할 텐데 외국의 선진농법을 우리에 맞게 배워왔으면 좋겠다. 국가에서는 식량이 풀리면 우리는 부러운 것 없는 나라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식량이 풀리려면 땅만 바라보지 말고 수입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민 입장에서 새해에 가장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농촌혁명강령이 새롭게 나왔고 황해남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 당정책이다. 이를 두고 이곳에서는 농민들이 제일 힘든 때를 맞이했다고 말하고 있다. 농민들만 두들겨 잡지 말고 부침땅(경작지) 경지면적이 제한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새로운 농사법이 도입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방법이 도입돼 농장원들이 늦게 출근하고 일찍 집 들어가는 때가 오면 좋겠다.
그리고 농장원과 농장원의 자식은 영원히 농장원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공업 근로자나 도시로 나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도시와 농촌의 대대적 사람 물갈이를 시켜주길 바란다. 나는 지금 농장원이니 할 수 없지만 우리 자식 대부터라도 직업을 택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