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칼럼] 북한은 왜 한국 유명 걸그룹 노래를 표절했을까?

흥미롭고 놀랍다 해야 할까? 북한이 한국의 유명한 걸그룹 노래를 표절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1일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경축대공연이 개최되었다. 이 공연에서 정홍란이 부른 <우리를 부러워하라>는 곡은 한국 걸그룹 여자친구가 부른 <핑거팁>가 매우 유사하다. 누가 들어도 똑같은 리듬임을 알 수 있는데, 전문 음악인에게 의뢰해 분석한 두 곡의 음이름을 비교해 보면 표절임이 명확해진다.

그동안 남한 문화를 차단한다며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만들어 통제와 단속에 열을 올리던 북한정권이지 않던가. 그런데 왜 남한 노래를 표절했을까? 그것도 다름아닌 자본주의 퇴폐문화로 취급하는 걸그룹의 댄스곡을 말이다. 그 의문의 해답은 지난 2022년 9.9절 경축대공연에서 찾을 수 있다. 2022년 12월 4일자 노동신문 기사는 ‘9.9절 경축대공연’에 대해 “규모에서뿐 아니라 형식과 형상 수준에서도 완전히 새롭고 특색있다. 개성과 특색을 잘 살린 참신하면서 이채로운 편곡과 형상”이라고 언급했다. 김정은이 직접 선곡까지 했다고 선전하는 그 공연에서 대부분의 노래는 편곡되었다. 기존 북한의 고전적 명곡을 김류경이 바이브레이션 기법을 활용해 알앤비(R&B)풍 발라드 형식으로까지 불렀다. 북한의 선전곡이 아닌 마치 남한의 뮤직쇼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신년경축대공연에서도 거의 모든 곡을 리메이크했다. 정홍란이 부른 <우리를 부러워하라>는 곡은 원래 청봉악단이 불렀던 것으로 유명하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수령님, 원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부러워 하라는 내용의 곡이다. 그런 체제선전을 위한 대표곡에 한국 걸그룹 노래의 리듬을 새롭게 추가해서 부른 것이다. 무엇보다 김옥주와 정홍란이라는 신인가수들이 김옥주, 김주향 등 기존의 유명가수들이 불렀던 노래를 리메이크 하면서 새로움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눈에 띈다. 이는 분명 김정은의 음악정치가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일명 새세대들이 남한 노래에 빠져 사상과 충성도가 약해지는 현상이 발생하자 북한정권은 더욱 통제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남한 노래에 대적할 만한 주체적 변화를 강조한다. 북한 당국은 “군중은 항상 새롭고 진보적이며 혁신적인것을 지향한다. 시대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감에 따라 이러한 요구는 더욱 강렬해진다”고 주장한다. 결국 새세대들의 요구와 변화를 의식했다는 말이다. 이번 노래 표절은 단순히 표절문제가 아닌 북한 사회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새세대들의 남한 문화 수용의 속도와 범위가 광범위하며, 북한 당국이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북한의 새세대들이나 주민들이 남한 노래에 빠져드는 이유는 남한 노래가 담은 정서 때문이다. 북한 노래는 사상만 있고, 남한 노래는 사랑만 있다고 한다. 북한 노래가 군가풍의 박자에 정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내용의 가사라면, 남한 노래는 사랑을 주제로 인간의 생활상을 담고 있다. 아무리 남한 노래의 일부 리듬을 표절한다 해도 가사가 바뀌지 않는 한 새세대들의 자본주의 문화 양식을 철저히 배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 변화의 가능성이자 희망을 새세대들에게서 찾는다. 그들이 더욱 외부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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