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포커스] 김정은의 핵무력정책 법제화를 넘은 헌법화 선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2일차 회의에서 핵무력 정책과 관련한 법령을 채택했다고 9일 보도했다. 사진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시정연설, ‘억제력관련 5차례 발언

북한이 지난 공화국설립 기념일(9·9)을 앞두고 최고인민회의(제14기 제7차회의)를 개최하여 국가핵무력정책을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채택한 이후 국내 대북통일정책 주요 국책기관에서 긴급전문가토론회를 가졌다. 그런데, 발제와 논찬한 전문가 둘 다 금번 북한의 ‘핵무력 법제화’를 ‘억제력 확보’ 측면이라고 방점을 찍었다. 발제자와 논찬자 둘 다 같은 의견이라 균형감을 잃은 토론회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이들 주장처럼, ‘억제력 확보’ 차원일까. 이는 김정은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동시에 북한의 핵무장을 정당화시키는 뉘앙스까지 줄 수 있는 문제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했다.

김정은은 핵무력 정책이 최고인민회의 법령에 채택된 후 시정연설(9·8)을 했다. 연설 초반에 최고인민회의에서 중요한 ‘법적 무기들’을 마련했다고 운을 떼면서 국가핵무력 정책이 법령에 채택되었음을 천명함과 동시에 “전쟁억제력을 법적으로 가지게 되었다”라고 자평했다. ‘전쟁억제력’ 발언은 정당성 확보 차원임과 동시에 공격의 빌미를 차단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연설에서 ‘억제력’ ‘억제수단’ ‘정치군사적도발을 억제’ ‘억제할 수 있는 힘’, ‘전쟁억제력’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핵무력 법제화가 억제력 확보임을 주장했던 것이다. 국내 전문가들의 평가는 결국 김정은의 손을 들어준 격이다.

최고인민회의 법령 공포’, 김정은의 새로운 권한 행사

지난 국가핵무력정책의 법령 채택은 헌법이 아니라 최고인민회의 법령이다. 최고인민회의 법령은 2019년 8월, 헌법개정(15차) 이전만 해도 최고지도자(주석, 국방위원장, 국무위원장)의 명령보다 상위에 속했고 헌법보다는 하위법이었다. 하지만, 2019년 북한이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무위원장의 명령’이 ‘최고인민회의 법령’보다 상위를 차지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금번 최고인민회의 법령채택은 조만간 국무위원장의 명령으로 다시 하달될 것이고 이후에는 북한헌법에도 적용될 것이다(이미 헌법에 명시된 것으로 보임).

또 하나 주목할 점은 2019년 8월, 새 헌법 이후 김정은(국무위원장)에게 최고인민회의 법령을 공포하는 권한이 주어졌다. 이 권한은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는 없었던 것으로 김일성(주석)에게만 주어졌던 권한이었다. 지난 김정은의 시정연설은 최고인민회의 법령을 공포한 것으로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권한을 행사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의 시정연설을 최고인민회의 법령 채택보다 더 무게감 있게 봐야 할지도 모른다.

김정은의 시정연설, 핵무력정책 법제화를 넘은 헌법화 선언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북한의 핵무력 정책이 “법화 되었다” “법적으로까지 완전 고착시키는”이라고 표현하면서 동시에 “오늘 국법으로 명기하였습니다”라는 발언도 하였다. 전자는 최고인민회의 법령채택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후자는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최고인민회의 법령을 국법이라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앞서 기술한대로 2019년 새헌법 이후 ‘최고인민회의 법령’은 ‘국무위원장의 명령’보다 하위법에 속한다. 이 사실을 너무나 잘아는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법령을 국법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국법은 헌법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북한헌법에도 핵무력 정책이 명시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김정은도 ‘채택’이라고 하지 않고 ‘명기’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핵무력정책의 법제화를 넘어 핵무력 정책의 헌법화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 언론들은 ‘핵무력 정책의 법제화’에만 주목했다. 분명히 김정은 입으로 직접 “오늘 국법으로 명기하였습니다”라고 한 만큼 조만간 북한은 수정된 헌법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령으로 채택되는 것과 헌법에 명시(규정)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최고인민회의 법령 채택은 국무위원장의 명령으로 뒤집을 수 있지만 헌법은 국무위원장의 명령보다 상위법이기에 번복하기가 사실상 불가하다.

김정은의 연설에서 “핵무력정책을 법화해놓음으로써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국가의 지위가 불가역적인것으로 되였습니다” “만약 우리의 핵정책이 바뀌자면 세상이 변해야 하고” “절대로 먼저 핵포기란, 비핵화란 없으며 그를 위한 그 어떤 협상도 그 공정에서 서로 맞바꿀 흥정물도 없습니다”라고 못을 박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최고인민회의 법령에 채택된 북한의 핵무력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법령에 나와있는 정책이 북한헌법에도 명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국가핵무력완성일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나섰다(2018년 12월). /사진=데일리NK

김정은의 핵무력 지휘통제 법령, 이미 헌법에 명시

북한의 핵무력정책에 대한 최고인민회의 법령의 핵심 포인트는 첫째, 핵무기보유국임을 천명한 것과 둘째, 핵무력(핵무장)이 억제력 확보(전쟁방지) 측면이라는 것으로 ‘핵무력의 사명’이라는 용어까지 끌어왔다. 셋째는 핵 무력 지휘통제의 변화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그런데, 이번에 채택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의 유일적지휘에 복종한다”는 필자가 확인한 결과, 이미 2019 북한헌법에 명시된 바 있다(논문참고: 북한최고지도자 헌법적 지위·권한 변동에 관한연구(2021.12)). 김정은은 이미 핵무력 사용을 단독으로 결정,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적 권한을 부여 받았다.

이 권한은 김일성, 김정일에게도 없었던 것으로 이 둘은 참모부(중앙인민위원회/국방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전쟁과 평화에 관한 문제를 결정(제76조)의 견제를 받았었다. 그런데, 2019년 새헌법은 국무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국방관련 권한을 모두 몰수하여 국무위원장(무력총사령관)에게 그 전권을 몰아주었다. 따라서, 김정은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언제든지 핵단추를 누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권한이 이번에 최고인민회의 법령에도 채택되어 김정은의 무소불위 권력을 다시금 재확인 시켜주었다.

넷째는 국무위원회가 아닌 김정은이 직접 임명하는 ‘국가 핵무력지휘기구’ 설치이다. 핵무력 관련 김정은을 보좌하는 기구이지만 김정은이 선제타격에 노출되었다는 판단시에 임의적으로 핵 타격을 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진 것이다. 이점이 새로운 규정(핵무력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핵무기 사용조건으로 이 또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핵무력 정책변화이다.

북한의 핵 타격 시점, 김정은의 자의적 판단에 달림

문제는 핵 타격 시점을 지휘부(김정은)가 선제타격(군사적 공격, 비핵공격포함)을 받을 시가 아니라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로 규정했다는 것이 매우 위험천만하다. 여기에는 얼마든지 김정은의 자의적 판단이 작동될 수 있고 김정은이 그 상황에 대해 얼마나 위협적으로 체감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외부의 압박의 수위와는 상관없이 김정은이 얼마나 공포감을 느끼는지에 좌우되는 것으로 이것은 외부적 요인뿐만 아니라 내부적 요인도 포함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법령의 핵무기 사용원칙 규정은 김정은 권력의 공고화를 넘어 절대화시키는 데 작동될 것이다. 이번 핵무력 법령 채택은 국제사회의 강도높은 경제적 제재로 끝없는 경제침체와 더불어 코로나 사태로 인한 민심이반으로 리더십 위기를 맞은 김정은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둔 초강수로 보인다. 하지만, 자충수를 두었다. 국제사회의 압박의 강도가 더욱 세질 것이 자명하고 비정상적인 지도자라는 딱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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