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칼럼] 북한 인권에서 진보-보수 프레임은 이제 그만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

“인권은 보편적인 것이다. 북한 인권문제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벌어지든 공권력에 의해 발생하는 인권문제는 국제사회와 공조해서 대응해야 한다. 규범에 입각해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

며칠 전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진행한 윤석열 대통령 인터뷰에서 나온 북한인권에 대한 답변이다. 물론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실질적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원칙에 입각한 합리적 견해를 가진 것 같아 일단은 안심이다. 북한인권에 대한 질문에 앞서 북핵문제 대응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일관된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관련 문제에서 인권이든, 교류협력이든, 핵 문제든 일관된 시그널이 관건이다.

북한 이슈에서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반대의 다른 신호들을 북한당국에게 보냈다. 진보 정부는 남북대화와 교류를 위해 인권문제를 외면하고, 보수 정부는 북한당국 대상 모욕주기용 ‘채찍’으로 인권문제를 더 부각시키는 정책, 그 양쪽 극 사이를 오고 갔다. 그 결과는 과거 20여 년 이상 남북관계는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제자리걸음의 반복, 북한의 핵기술 고도화의 방조, 북한 인권에 대한 비(또는 反)인권적 대응 정책 등으로 나타났다.

심지어는 문 정부 하에서 북한당국이 한국 시민단체 활동은 물론, 국내 입법 문제까지 압력을 행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더 심각한 오점은 이로써 북한당국은 물론 주민들로부터 한국이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된 지점에 있다. 또한 이 같은 원칙 없는 한국의 대북 인권 정책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비판에 ‘공화국 모략’이라는 북한당국의 주장에 실질적 근거를 제공해 줄 뿐이었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정치색에 좌우되지 않는 국제적 규범에 근거한 북한 인권 정책을 오랜 기간 요구해 왔다. 국제적 규범에 따른다면 일관된 목소리는 당연히 나오기 마련이다. 북한은 1981년에 사회권 규약 (ICESCR –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과 자유권 규약 (ICCPR –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을 비준했고, 아동권리협약 (CRC –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1990년 9월), 여성차별철폐협약 (CEDAW –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2001년), 장애인권리협약 (CRPD –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2016년 12월)에도 비준했다. 그리고 4~5년 주기로 점검받아야 하는 유엔 보편적정례검토(UPR)의 세 차례 사이클이 진행되는 동안 2009년 1차 사이클을 제외한 2, 3차 사이클에서 적극적으로 인권 검토에 임했다. 또한 유엔 회원국으로 세계인권선언을 따를 임무까지 있으니 북한이 비준한 국제 규정과 협약에 따른 북한 인권 정책에 원칙적이고 일관된 접근에 주저할 이유는 전혀 없다.

여기에 근거해 우리 북한 인권 단체들은 5년 전 인권문제에서 국제적 규범의 원칙을 적용시킨 일관성 갖춘 정책 기풍을 진보 성향의 문재인 정부가 먼저 세울 것을 주장했다. 민주당 정부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당당하게 할 말 하며 원칙적 잣대를 적용시켰다면 새 정부가 ‘일관성’ 갖춘 인권 정책을 확립하는 게 한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향후 북한 인권문제 대응 정책은 북한 주민 생활의 실용적 개선을 위한 더 다양한 옵션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됐을지도 모른다.

이제 공은 보수 성향의 여론을 대변하는 윤석열 정부의 코트로 넘어왔다. 이 정부가 북한인권 문제에서 아무리 원칙적 접근을 하더라도, 북한당국은 물론 국제사회와 한국 여론, 진보 성향의 언론과 정치인 등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공화국 모략’을 위한 ‘채찍’으로만 바라볼 것이다.

따라서 윤 정부에게는 모든 인권문제에서 진정성을 보이는 것으로써 원칙적 인권정책의 기풍을 세우기 위한 노력이 더 요구된다. 진정성 있는 인권 기반 정책은 북한 인권만 아니라 세계 여러 인권 열악 국가의 문제에서, 특히 한국 내 인권문제에서도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해 적용돼야 한다. 이로써 인권 가치에 대한 진정성과 일관성을 확고히 보여준다면 장기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의 일관성은 이번 정권의 노력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참에 국내 인권문제는 진보의 어젠다, 북한 인권문제는 보수의 어젠다라는 터무니없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데도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일석이조다. 5년 또는 10년 뒤에 권력을 잡게 될지도 모를 진보 정권도 바꾸지 않고 기꺼이 수용할 원칙적 북한 인권 정책을 펼치길 바란다. 다음 정부가 들어섰을 때, 그제야 우리는 윤석열 정부가 대북 인권 정책의 일관성을 갖춘 기풍을 세웠는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이 늦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북한 인권 정책에서 진보 보수의 인권 프레임을 깨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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