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눈부신 4월의 봄날임은 누구나 다 느끼는 사실입니다. 핑크빛 벚꽃이 만개하고 노란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어올랐지요. 계절의 여왕, 이보다 더 아름다운 날들이 또 있을까요? 하지만 우린 아직 봄을 맞을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생업을 뺏긴 서민들에게 봄날은 더없이 잔인할 뿐입니다. 이토록 눈부신 봄날을 느낄 새도 없이 하루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의 절규가 들려오지 않던가요.
대통령,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청와대 뒤편 북악산을 54년 만에 전면 개방한다지요. 마치 선발대처럼 먼저 그곳에 등산한 당신의 모습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했습니다. “북악산 전면 개방은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 곁에 있는 ‘열린 청와대’라는 상징적 변화를 이뤄냈다”는 청와대 공식발표도 있었지요.
‘왜 하필’, ‘왜 굳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더군요. 불과 퇴임 한 달여를 앞둔 당신께서 청와대를 개방했다고 자랑할 건 또 뭡니까? 지난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당신은 “북악산, 인왕산을 전면 개방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라고 국민과 약속했었지요. 청와대 개방이 어떤 의미인지는 당연히 아실 거라 믿습니다. 그건 권위주의를 벗어나 기존의 관례와 특권을 없애고 국민들과 소통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당신은 불통의 대명사였습니다. 국민과는 유리된 독재의 광기에 사로잡혀 도무지 광장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당신께서 불과 퇴임 한 달을 앞두고 등산로 하나 개방하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운운하다니요.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며, 퇴근길에 시민들과 맥주잔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은 온데간데없습니다. “퇴근길에 맥주 한잔을 기울이는 대통령”을 상상하며 가슴 설렜던 적도 있었습니다. 진정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시민과 대통령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절절히 느낄 수 있는 말이었지요. 그런데 그 약속은 대체 지금 어디에 파묻었는지요?
그토록 국민과의 소통과 서민의 삶을 강조하시던 분께서 퇴임 이후에는 아방궁 같은 사저에 들어가 철저하게 특권을 누리겠다니 그건 또 어찌 된 영문인지 감히 묻고 싶습니다. 그저 비난을 위한 비난이라 생각지 마소서. 정녕 당신께도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대통령이라는 국가지도자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찌 그리할 수 있는지 제발 설명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북악산을 오르며 꽃놀이를 즐긴 그날은 어떤 날입니까? 바로 전날(4일) 북한 김여정은 담화문을 통해 “진짜 그야말로 미친놈의 객기이다”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또 욕보였습니다. 핵보유국인 자신들을 향해 어디 감히 <선제타격>을 운운하느냐며 “쓰레기다” “미친놈이다”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제 불과 일주일이 지나면 4월 15일입니다. 김일성 생일 110년을 맞는 이번 4월 15일에 북한은 어떤 군사적 도발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김여정에게 “삶은 소대가리”라는 모욕을 듣고도 대화와 평화를 운운하더니 급기야 “미친놈의 객기”라는 말까지 듣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더욱 엄중한 건 그들이 “핵보유국”임을 자처한다는 사실이지요. 당신이 지난 5년 동안 평화쇼를 외치면서 국민들의 눈을 가릴 때 저들은 핵무기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알면서도 속아 준 건가요, 아니면 정말 몰랐던가요. 자유와 배고픔에 주리며 독재의 칼날에 신음하는 북한주민들의 아픔은 보이지 않던가요? 한반도를 이토록 위기 상황에 빠뜨려 놓고도 꽃놀이를 즐길 마음이 정녕 들던가요. 한반도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는데 등산로에서 ‘열린 청와대’를 자랑하며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당신의 측근들이 가엾기까지 합니다. 지난 5년간 셀 수 없이 드렸던 질문이지요— 당신에게 대한민국은 대체 무엇입니까?
굳이 사족을 하나 달면, 제가 태어난 곳은 경북 봉화입니다. 경북 봉화를 말씀드린 건 다름 아닌 지금 이곳에 산불 3단계가 발령되었다는 저녁 뉴스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삼척, 울진 산불에 이어 또 봉화입니다. 대한민국에 이보다 더 큰 재앙이 몰아칠 때가 있었던가요? 그래도 아직 대한민국이 건재한 건 오늘 밤 목숨을 걸고 산불 진화 현장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할, 국민과 약속을 지켜 낼 소방관들과 같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약속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사람답게, 국민답게, 아버지답게, 아들딸답게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건재합니다.
그러니 국민이라 불리는 우리 서민들에게 제발 부끄럽지 않을 지도자로 남아 주시면 어떨런지요. 높디 높은 사저의 벽을 과감히 허물고 동네 아파트 현관에서 시장바구니 들고 인사하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마주할 수는 없겠는지요. 저희 부모님은 지금 경북 봉화에 계십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수고로이 농사지으며 살아오신 분들이시지요. 최소한 땅뙈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며 뼈가 으스러지도록 밭을 갈고 일하시는 이 시대의 서민입니다. 수고하고 땀 흘린 만큼 수확의 기쁨을 누리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여의치는 않습니다. 바람과 비와 햇살이 허락해 주는 만큼 거둘 수밖에 없기에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그저 손등이 터지고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할 뿐이지요. 하지만 일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게 어디 농사뿐이겠습니까? 민심이 천심이라 했습니다. 하늘과 같은 백성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면 평생 쌓은 정치 농사 한 줌의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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